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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생각

택시기사가 털어놓은 최악의 꼴불견 스토리

 

 

결혼과 더불어 살게 된 지역이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바뀐 세월이 2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경상도 억양은 어쩌면 끝내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하여 저는 아직도 우리 고장 택시 기사분에게 타지에서 잠깐 다니러 온 방문객으로 오해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어디까지 가십니까?"

 "OOOOOO에 세워주세요."

단어를 방언으로 사용하던 것은 많이 고쳐졌지만(급할 때는 사투리가 먼저 나옴^^), 경상도 특유의 억양은 제 노력이 부족한 탓인지 동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곳 분이 아니신가 봐요?"

 "여기 살아요. 억양을 못 고쳐서..."

 "아~ 예 그러신가요. 고향이 어디세요?"

 "대굽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시게 되셨어요?"

 "남편이 이 고장 사람이예요."

 "경상도 남자는 아무래도 충청도 남자보단 무뚝뚝하지요."

 "예"

 "남편분과 결혼 잘 하신 거 같으세요?"

 "예."

기사분이 먼저 인사를 건네며 간단한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저는 이 분이 친절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쯤에서 대화가 마무리될 것으로 여겼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간단하게 끝이 나니까요.

그런데 이분은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는지 작정한 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웬만하면 걸어다니는 제가 그날 택시를 탄 이유는 좀 피곤했기 때문이었는데요. 제 컨디션이 안좋다고 해서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고 해서 가만히 있었더니 기사분이 들뜬 목소리로 떠든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타지에서 온 한 여성승객을 태웠는데 이런 제안을 하더랍니다.

남편과 싸우고 기분이 우울해서 바람쐬러 달리다 보니 이곳까지 왔는데, 그날 하루 자신과 함께 보내주면 회사에 입금할 금액은 물론 수고비를 넉넉하게 주겠다고 하더랍니다.

뜻밖의 제안에 어리둥절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받아들였답니다. 여성승객을 태우고 고장의 유명관광지를 안내했고, 식사며 기타경비 또한 여성승객이 다 부담했답니다.

이야기가 대충 이렇게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그날의 일이 무슨 무용담이라도 되는 듯이 자랑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풍겼고, 또 다시 이런류의 여성승객을 태우고 싶다는 마음까지 비치는 바람에 저는 거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태워야 함도 힘들고, 회사에 입금할 금액을 맞추고 몇푼이라도 남기려면 하루종일 종종 거려야 하는 일반적인 날에 비해, 그 승객이 원하는 대로 데려다 주고 놀아주고 재미보고 돈까지 넉넉하게 받았으니 무슨 횡재한 날 같았던 그런 날이 자주 생겼으면 좋겠다는 기사분의 힘든상황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나, 승객과의 일탈을 또 다른 승객에게 자랑하듯이 열거함이 언짢았고 이해하기 싫었습니다.

 '뭐 이런 사람이 있나? 뭐 좋은 일이라고...'

더구나 기사분은 그날 이후, 타지에서 온 여성승객을 대할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먼저 여성승객의 심리상태가 어떤지 떠보게 되었으며, 이런 일탈은 하루로 끝나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아 좋더라며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묻는 것이었습니다.

'으이그 내가 너무 참았나. 이 아저씨 날 뭘로 보고... 참내 기가 차서...'

 "뭐 좋은 일이라고 아저씨는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손님에 따라선 불쾌감을 드러낼 수도 있겠는데요. 세상에 모든 유부녀가 그 여성승객처럼 행동하지 않거든요."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남편때문에 기분이 우울할 때 확 바람피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럴 경우 그 여성승객처럼 하루 일탈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거죠."

 "아저씨, 그러면 아저씨 아내가 그 여성승객처럼 처신하면 아저씨 기분은 어떨 거 같아요?"

 "ㅎㅎㅎ 제 아내는 저만 보면 돈 돈 돈 그러는데 돈이 없어서 그런 짓 못해요."

 "아저씨, 이 이야기를 아내분한테도 했나요?

 "아뇨. 절대 못하죠."

 "앞으론 승객들한테도 안하는 게 좋겠어요. 듣기 좀 거북했네요."

 "아~~ 예 예. 거북하셨다니 잊어버리세요. 미안합니다."

 

 '에이 진작에 말을 끊을 걸'

후회했습니다.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들린 이야기는 농도가 더 진했고, 대충 옮긴 것입니다.

비록 건성이긴 하나 들었으니 질문에 짜증섞인 핀잔이자 충고로 답을 했고, 미소같지만 썩소도 날렸습니다. 택시에서 내려서도 오래도록 불쾌감이 사라지지 않았음은, 기사분이 나의 마음을 떠보려한 것은 아닌가? 하는 뒤늦은 생각이 스쳤기 때문입니다. 

 

택시기사분 입장에서도 별별 희한하고 다양한 승객을 경험하겠지만, (승객입장에선 어떤 택시기사님이 좋을까요?승객입장에서도 다양한 택시기사분을 접하게 됩니다.

여성승객과 나눈 은밀한 거래를 자랑삼아 떠드는 택시기사 덕분에(?)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고, 최악의 꼴불견 스토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