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젊었던 시절에는, 남녀간의 선물교환이 그리 흔하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서로 주고 받는 게 어색했을 뿐만 아니라, 받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부담을 느끼기도 했기에 결혼까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남자가 내미는 선물을 쉽게 받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젊은이들은 수시로 선물이 오가지요.
사귄지 며칠 며칠... 기념일은 각각의 커플에 따라 만들기 나름이구요.
청혼시 프로포즈는 여자에게 있어 일생의 추억으로 남기 때문에, 반드시 꼭 거쳐야만 하는 필수코스가 되어 남성들의 과제로 정착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요즘엔 관심있는 이성에게 교제하고픈 뜻을 밝히는 일명 '대시'할 때도 선물을 준비해야함은, 이번에 딸이 전한 이야기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캠퍼스에서 평소에 선후배(남자 선배, 여자 후배)로 잘 지내던 친구가 있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워낙 친하게 보여 사귀는 사이로 오해할 정도였으나, 둘은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답니다.
최근에, 남자선배가 여자후배에게 진지하게 사귀면 어떻겠냐고 물어왔답니다.
"난 너에게 관심이 있다. 넌 내게 관심이 없느냐......"
요지는 위와 같이 간단했던 거 같은데, 선배의 고백은 길면서도 진지해서 오히려 지루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딸이
"무슨 내용이길래 길었냐?"
고 물었더니
"그 선배가 알면 미안한 일이지만, 생각나는 게 별로 없어."
"그래도 생각해봐."
친구는 딸의 성화에 애써 기억을 더듬더니
"결론은 신입시절부터 지금까지(2학년) 쭉 지켜봤다는 거야. 사귀자고 하고 싶었으나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겁이 나서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제 입을 열게 되었노라...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거 같아."
"고백 받아줄거야?"
하고 딸이 묻자,
"뭐 나도 괜찮은 선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막상 사귀자고 하니까 좀 당황스럽긴 했어."
"네 생각은?"
"하는 거 봐서.^^"
"뭘 하는 거 봐서?"
"ㅎㅎ 실은, 내가 왜 선배가 한 말을 다 기억못하는가 하면 말이야."
잠시 말을 끊었던 친구가 다시 말하기를,
"어느 순간, 나는 선배가 나한테 뭘 주나? 하는 생각에 빠져서 그래."
"그래 뭐 받았어?"
"빈손^^"
"정말?"
"응, 그러니 생각 좀 해봐야겠다는 거야. 고백하는 남자가 빈손이라니 이해되니?"
"센스없네. 그 선배"
"그렇지. 네가 생각해도 웃기지. 그래서 생각중이야."
딸과 딸의 친구는 빈손으로 고백하는 남자선배에게 실망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저는 세대차이를 느꼈습니다.
"사귀자고 고백할 때도 선물 준비해야하니?"
"당연하죠."
"뭐가 당연해. 고백했는데 거절당하면 얼마나 민망하니? 그러니 허락받아놓고 준비할 수도 있고, 또 뭐 선물없으면 어떠니? 요새 애들 선물 너무 밝히는 거 아니니?"
"다들 그렇게 해. 우리가 이상한 거 아닌데. 여자가 고백하며 사귀자고 해도 선물 준비하거든. 엄마는 남자만 선물하는 걸로 오해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아니, 그럼 여자가 먼저 대시하기도 한다는거야?"
"에구 참, 엄마가 신세대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도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세대차이가 느껴져^^"
"......"
남자선배는 진지했으나, 여자후배는 참 단순했네요.
이 선배가 나한테 어떤 선물을 줄까?
하는 기대감에 빠져있었다니...
결국엔 그 흔한 꽃다발도 없더라는 실망감이 한숨으로 묻어났답니다.
마음보단 물질이 먼저 눈으로 확인되는 세대를 보며, 남녀관계만 '화성에게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의 세대차이에서도 '화성과 금성'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꼈습니다. 진지했던 남자선배의 고백이 안쓰럽게 느껴졌음은, 빈손이란 센스없는 행동으로 인해 여자후배를 실망시킨 일이 남의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게도 이 남자선배처럼 센스없는 아들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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