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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가 되었다가 섬이 되기도 한다는 작은 암자를 우연히 TV에서 본 후, 신기하게 느끼고 무척 가보고 싶었던 간월암엘 지난 9월 말에 다녀왔다. 당일치기 여행이었던 탓에 이 장소에서의 유명한 서해의 낙조 풍경을 못 봄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드문 위치에 자리한 간월암을 본 것으로 뿌듯함을 맛보았다.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자리한 간월암.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고 홀연히 깨쳤다고 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주차장에서 내려다 본 간월암, 

 

 

육지 끝에 자리잡은 이곳으로 이어진 길에 바닷물이 채워지면 섬이 된단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좀 떨어진 도로에서 보았던 간월암의 모습이 더 신기했다.(카메라에 담진 못했다.)

 

 

간월암 쪽에서 육지로 향하는 길 모습.

 

사람키보다 훨씬 큰 바위 위에 층층이 쌓은 작은 돌이 품은 소원은 무엇일까?

 

 

감탄하며 보게 된 쌓기의 진정한 진수.

바위 모서리에 뾰족한 부분이 위태롭게 놓여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하게 만든다.

 

 

 

 입구에 서 있는 희한한 모양의 장승 모습

 

 

하늘로 향하는 듯한 문.

 

 

 

 

다양한 사연의 염원을 담은 기왓장으로 이룬 기와지붕. 가까이서 보노라니 이 또한 신기하다.

 

 

 

 

 

 

 

 

 

 

삼면이 바다요, 때로는 바다속에 있는 작은 섬인 간월암은, 유명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TAG 간월도, 간월암, 밀물, 뿌듯한, , 신기한, 썰물, 여행, 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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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ragonphoto.tistory.com BlogIcon 드래곤포토 2014.10.16 1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월암 풍경 잘 보고 갑니다

 

 

 '언젠가 한번 가보리라...'

맘에 담고서 그동안 내 멋대로 상상을 했던 일이 슬그머니 미안할 정도로 내 상상과는 많이 다른 느낌을 받았던 곳이자, 동화로 꾸며진 벽화를 놓치고 돌아선 곳이라 많은 아쉬움을 남긴 보수동 책방골목은 조형물이 도로변에 서 있어서 찾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차를 세워 둘 것이 마땅하지 않아서 주차료를 좀 써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미 다녀온 블로거가 올린 글과 사진을 미리 좀 볼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살짝 들었음은. 물론 나의 잘못임을 깨닫게 했다. 나는 책방골목으로 상상하기 보다는 헌책방골목으로 착각하고 상상한 부분이 컸기 때문이다.

 

 

부산은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생성된 이야기가 특히 많은 도시임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보수동 책방골목도 그 중 하나로, 부산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를 부르는 곳이다.

잘못 각인된 나의 뇌리에는 헌책방골목으로 상상되었던 탓에, 현대식 분위기로 탈바꿈 되어 가는 과정의 책방골목의 분위기가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는 게 내 솔직한 고백이다.

 

 

 

양쪽으로 서점을 둔 좁은 길이 현대식으로 잘 정비되어 있음이 낯설고

 

 

헌책과 새책의 내음이 서로 조화를 이루리라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새책 분위기가 더 강한 분위기는 내 잘못된 상상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실질적인 소비자로 책방을 찾는 이들이 예전같지 않음은, 많이 줄어 든 책방 수에서도 읽혀질 뿐만 아니라, 내가 집에서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태도를 떠올려 봄으로써 확실하게 느끼게 되는 부분이라 그야말로 관광지로 각광을 받게 되는 이유임이 좀 미안하기도 했다. 솔직히 관광차 방문하는 우리같은 타지사람이 책을 구입해서 짐을 불리는 수고를 감수하진 않을테니까 말이다. 책방주인 입장에선 어쩌면 성가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관심가지고 있는 헌책들을 찾아보는 재미는 솔솔하겠지만, 그렇다고 특유의 헌책내음은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말끔하게 정리된 모습과 또한 그닥 오래된 책내음을 맡기는 쉽지 않았던 점은 책 한권 구입하지 않는 관광객으로서의 미안한 점과 더불어 내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이다.

 

 

 

현대식 건물공사가 한창이고, 이미 들어선 곳엔 차를 마시는 카페도 이미 생겨나 있었다.

 

 

 

 

 

 

 

책방골목에도 부산 특유의 높은 지대로 향하는 계단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책방과 책, 그리고 분위기에 관심이 쏠린 탓에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볼 엄두는 전혀 내지 않고서 그 자리를 떠나왔는데... 장소를 옮긴 후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는 깨달았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동화로 연결되는 벽화가 있었다는 것을......

많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대부분의 경우 고장에 따라서 한군데(없는 곳도 많겠지만)정도 벽화마을이 조성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부산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함께 벽화마을로 조성된 곳이 한 두마을이 아니라 여러군데 아니, 어쩌면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벽화마을을 품고 있는 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연이 많은 곳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TAG 계단, 골목, 과정, 나들이, 미안, 벽화마을, 부산,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분위기, 상상, 아쉬움, 여행, 착각, , 특별한, 현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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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14.07.02 0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창시절 몇번 가본 기억이^^
    아련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2. Favicon of https://apedix.tistory.com BlogIcon 코리안블로거 2014.07.02 0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큐멘터리3일에서 본 적이 있는데 직접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잘만 뒤지면 득템 가능하겠죠? ^^ 공감 꾹!

  3. 학창시절 2015.12.13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지인에겐 학창시절 가격 후려치던 기억이 가장 많이 나네요. 뭐랄까 애증이랄까...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 감탄과 함께 사진으로만 접한 그리스의 산토리니 광경이 떠올랐다. 집모양이나 색채가 주는 느낌은 대조적으로 달랐지만, 가파른 비탈에 쭉 들어선 건축물이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이곳이 감천문화마을 입구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애도하는 리본이 걸려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하게 만든다.

반대방향에서 이 마을을 돌아보는 코스로 잡으면, 매우 비탈진 언덕길을 올라야 하는 더 힘든 코스가 됨을 내려가면서 알았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데 정류장이 마을의 중간지점이라 되돌이하며 마을을 둘러봐야하는 예매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일행은 지인의 안내로 입구를 제대로 찾아 수월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상가와 가게가 있는 큰 길을 중심으로 쉬운 코스를 택하였으며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길은 자제했는데, 주민들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글귀가 곳곳에 붙은 까닭을 이해함과 동시에 마주침이 우리 스스로 미안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감천마을 작은 박물관인 이곳에서 이 마을의 사연을 전시하고 있다. 옮겨보면,

감천 2동은 1950년대 태극을 받들며 도를 닦는 신흥종교인 전국의 태극도 신도들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산 보수동 등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중, 1955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이곳으로 집단 이주하여 천마산과 옥녀봉 사이 해발 200~300m 지점의 비탈면에 판잣집 1천여 가구를 지어 거주하면서 생성되었으며, 이에 태극도 마을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하였다.

처음 건립된 판잣집들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판잣집의 골격은 그대로 둔 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고, 이어 1980년대에는 판넬 및 슬라브 형태로 개량되면서 변화를 겪었다. 당시 판잣집은 화재에 취약하여 방화선 역할을 하도록 폭 6m 정도의 수직 계단을 3개소 설치하였다. 마을 특유의 골목길과 지금 다소 좁아진 계단들은 상당부분 초기의 형태로 남아있어 근대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모습을 띠고 있다.

 

산자락을 따라 질서 정연하게 전통적 가로경관으로 늘어선 계단식 집단 주거 형태와 모든 길이 통하는 미로골목길의 경관이 특이하며, 파스텔 톤의 색채는 많은 사람들을 찾아오게 하는 매력을 품고 있었다.

 

 

 

벽화와 다양한 작품들이 마을의 매력에 한층 더 활력을 불어넣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주차장 한쪽 벽면을 차지한 커다란 작품인 거대한 물고기앞은 관광객들로 붐비므로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꽤 많다. 도로를 따라 자원봉사자들이 거닐며 깨끗함을 유지코자 애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산의 명물 중 하나인 '씨앗호떡'을 파는 가게가 이 마을에도 몇 군데 있음. 

 '지나치면 관광객이 아니며 주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씹히는 맛이 고소해서 유명해졌나? 특이해서 유명해졌나? ㅋㅋ 이승기가 먹으며 방송을 타서 유명해진걸거야.'

유명해지면 금새 전국구가 되는 바람에 이 호떡을 서울에서도 팔고 있음을 덕수궁 앞에서 보았다.

 

 

감천문화마을 전망대에 올라서면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감천마을의 미와 감천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통령 다녀가시고 살림살이 좀 나아졌을까? 매우 궁금하다. 나 비록 이곳에서 씨앗호떡 밖에 못 사먹었지만.

 

 

 

감천문화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가로로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 듯한 집들이 모두 비슷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각각 다른 모습의 다양성 속에 조화로운 통일성을 느끼며 감동을 주고 있음이다. 그러한 집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관광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많은 방문자 중에는 '감천마을'을 '파란물통 마을'이라고 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특징적인 모습을 연출하며 시선을 끌고, 또 한편으로는 알록달록하면서도 조화롭게 통일감을 주는 멋도 느낄 수 있다.

전문가의 조언이라도 참고했을까? 의문이 들었으나 사실은 주민들 각자 알아서 손수 페인트로 발랐다고 한다. 외지에서 관광차 방문하는 우리들의 생각이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이 풍경을 통해 애환을 느끼며 결코 편안한 발걸음으로 감상할 수 만은 없었던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작품설명은

 '별을 떠나 지구로 온 어린왕자는 사막여우를 만나 긴 여행을 하다가 공간을 뛰어 넘어 감천태극마을로 왔는데 여행 중 잠시 난간에 걸터앉아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다.'

나는 이 글귀를 읽으며 갑자기 울컥했다. 어린왕자 눈에 이 마을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겉모습만 보며 아름답다 예쁘다로 표현하며 그야말로 관광객 행세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미안하기도 해서이다.

이 마을 사람들의 실생활과 속내도 예쁘고 아름다운 사연들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재밌는 간판에 잠깐 속았다.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메뉴판이 눈에 띈다.

 

 

 

 

 

 

이 계단을 오르면 또 뭔가를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입구에서 보는 걸로 만족하고 패스했다. 입구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그날엔 공교롭게도 이곳 포토존엔 부르카를 쓴 이슬람계 여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또 다른 정취를 선사했다. 

 

 

 

정지용시인의 시 '향수'를 시각화하여 형상화한  (박은생) 작품

 

 

항구도시인 부산에서 물고기가 길안내를 맡고, 작품이 되기도 함.

 

 

개인적으로 이 연출작품이 참 맘에 들었다.

 

 

 

 

 

내고향 대구와 더불어 부산에는 겨울철에 좀처럼 눈을 보기 힘들다. 몇 년에 한번 겨우 내리는 눈을 보고 축복이라고 여길만큼 귀하므로 겨울철 내리는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환경이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제천과 비교해 볼 때 그렇다. 제천엔 겨울이 되면 무조건적으로 도로나 골목 인도 주변에 모래주머니가 착착 놓여지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뜻하지 않게 눈이 부산에도 많이 내렸다는 소식과 함께 휴교령이 내려진 까닭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파른 언덕에 촘촘히 지어진 집들과 수많은 좁은 계단을 보노라니 숨이 헉 막혔다. 아름다운 마을을 조성하고자 노력한 흔적과 더불어 이로 인해 시도때도 없이 찾아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어수선함과 불편함을 견뎌야 하는 주민들의 삶이 녹녹하지 않음과 애환이 느껴졌다. 비록 한순간의 감상이긴 했으나 여느 벽화마을을 둘러 본 느낌과는 다른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은 마을이었다.

 

끝으로 태극도 본부가 기와식으로 크게 지어져 있음을 보았다. 이 마을 사람들의 평안과 안녕을 진심으로 빌었다.

 

TAG 감상, 계기, 나들이, 다양성, 벽화, 부산, 부산감천문화마을, 사치, 애환, 여운, 여행, 이해, 조형물, 조화, 통일성, 한국의 산토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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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ㅇㅇㅇ 2014.06.29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토리니와 비교라... 너무 나간거 같다. 그냥 정직하게 문화감성마을 정도로 하자.

정신없이 달려온 만학도의 대학생활에서 잠깐의 여유로움이지만 제대로 만끽하고자 기말고사(지난주)를 마치는 날, 강의실을 나서면서 약 6시간 이상을 열심히 달려 찾았던 청산도. 

그동안 다녀왔던 지인들의 추천으로 막연하게 꿈꾸었던 청산도에 대한 그림이 현실과는 동떨어짐에 약간의 실망과 더불어, 육지와 섬을 잇는 교통인 점을 감안할 때 우리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음을 경험하며 아쉬움을 남기고만 청산도에 대한 소감을 풀어본다.

 

 

느림과 여유로움으로 삶의 쉼표자가 되는 섬이자, 또한 에너지가 넘치는 신비의 섬으로 소개하는 청산도

 

 

하루 중 마지막 배를 타고 청산도에 들어갔으니 저녁이자 밤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맑은 날이었으면 밤하늘의 별이 그리도 맑게 총총히 빛남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인이 준 기대와는 달리, 그야말로 별볼일 없는 밤임을 아쉬워하며 다음날에 대한 기대를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밖을 보니 안개가 잔뜩 끼어 있어 맑은 날을 기대했건만... 아니 맑게 변하고 있어 안심하며 일정대로 움직일 수 있으리라는 설렘은 금방 사그라졌다. 팬션 사장님께서 날씨 때문에 배가 계획대로 다 운행되지 않을 수 있으니 서둘러라는 문자가 왔다며 알려줬기 때문이다.

 

 

 

 11개코스길에 17개 길이 있다고는 하나, 다 걸어보리라는 꿈은 꾸지 않았건만 쉽고 이쁜 길은 골라서 너댓개쯤 만끽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다.

하루 더 이곳에서 머물거라면... 아니 그보다는 다음날의 배편도 날씨에 따라 갑자기 어떻게 변할지 모르므로 실망과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이 청산도를 떠날 준비로 서둘렀다. 다행스러웠다면 그나마도 배시간이 좀 남아있었다는 게 위안이 되어, 느림의 미학에 빠져들진 못했으나 차로 지나치며 대충이나마 시간에 맞춰 쭈욱~ 감상하는 정도로 만족했다.

 

 

제일먼저 찾은 곳이 범바위

호랑이가 바위를 향해 포효한 소리가 자신의 소리보다 크게 울리자 이곳에 더 큰 호랑이가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놀라, 섬 밖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범바위라 불리게 된 바위의 또 다른 이야기로는, 강한 자성으로 범바위 부근에서는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아 신비의 바위라고도 불려진다.

 

 

 

청산도에 대해 안내하는 글을 인용하면, 이곳 슬로길은 전체 11코스 17개의 길로 이루어져 있으며 100리인 42.195km 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주민들의 마을간 이동로로 이용되던 길로서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하여 '슬로길'이라 붙여졌으며, 2011년 국제슬로시티연맹 공식인증 '세계슬로길 제 1호'로 지정되어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았다.

 

 

옹기종이 모여있는 집들의 지붕이 소담스럽다. 도로변 집이 아니면 대부분의 경우 대문이 없었고,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담이 참 인상적이며

 

 

또한 담쟁이덩쿨이 돌담을 감싼 점도 참 아름답다.

 

 

 

 

 

돌담길과 옛담장

바람이 많은 섬 지방의 특성 때문에 청산도 슬로길을 걷다보면 돌담이 둘러친 집들을 많이 만나므로, 마을전체가 돌담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연이 아닐 만큼 눈만 돌려도 한가득 들어오는 청산도 돌담.

특히 상서리와 동촌리를 지나는 길은 원형 그대로 보존된 돌담이 많아 돌담길로 조성되어 있다.

 

 

 

 

 

영화 '서편제'로 유명해진 길.

 

 

서편제길

영화 '서편제'의 명장면으로, 주인공 세 사람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걷는 장면이 촬영된 길로, 봄에는 유채꽃과 청보리,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길에 수놓아지며 언덕위에는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이 한폭의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 길을 잠깐 거닐며 청보리밭과 유채밭을 꿈꾸어 보았다. 청보리와 유채꽃과 맞지 않은 계절에 찾은 청산도에서 지인이 흠뻑 취했다며 들려준 절경의 호사를 누리지 못함은 아쉬웠으나 낯선 곳의 방문은 그 자체만으로 즐거움이 되었다.

 

 

 

영화 '서편제' 에 등장했던 주막이자 주말이면 실제로 장사를 한다는 데...  세월호 참사 후 방문객이 줄어서 언제 또 다시 개장을 할지 미지수...

 

 

  

 

 

 

 

 

구들장논

청산도에서 볼 수 있는 구들장논은, 논바닥에 돌을 구들처럼 깔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만든 논으로 자투리땅도 놀리지 않았던 섬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2013년 1월에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국가중요농업유산 제 1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구들장길은 구들장논이 펼쳐진 논길을 따라 걷는 길로, 농토와 물이 부족했던 척박한 땅을 논으로 일군 섬사람들의 애환과 삶에 대한 열정을 동시에 느끼며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보며 숙연해진다.

 

 

 

다랭이길은 청산도 곡창지대라 불리는 너른 들판을 지나는 길로, 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하여 층층이 만든 다랭이논을 볼 수 있다.

 

 

 

단풍길

진산리에서 지리까지 단풍나무와 함께 걸을 수 있어 단풍길이라 한다. 지금은 여름이라 푸른 빛을 발하고 있지만 가을날 붉게 물든 양옆의 단풍이 그리도 아름답다는데,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있어 선명한 색의 대비에 흠뻑 취할 수 있어 눈을 떼지 못하는 길이다.

 

 

 

우리는 승용차로 바삐 움직이긴 했지만, 요즈음 어디를 가나 관광객을 위한 투어버스가 있어 참 편리한 것 같다.

 

세월호 참사 후 무척이나 한산해진 방문자센터(청산도터미널)임을 주민들이 삶과 연결지어 걱정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활기를 찾을 때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마음을 내비췄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됨은, 우리 또한 여행계획을 세우며 염려했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또 하나 인상깊었던 것은, 도로변이나 마을에서 비석이 세워진 무덤을 흔히 볼 수 있었던 점이다.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과, 바쁜 삶의 쉼표를 어떻게 찍으며 조화를 잘 이룰 것인지 청산도가 던지는 슬로길의 의미를 꼽씹어 본 모처럼의 나들이였다.

 

 

TAG 구들장논, 나들이, 다랭이논, 단풍길, 돌담, 돌담길, 범바위, 서편제 촬영장소, 슬로길, 여행, 청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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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를 마치면 곧바로 방학으로 이어지는 대학생활이지만, 지난해 겨울방학에 이어 이번 여름방학에도 실습일정이 잡혀 있어서 그다지 자유롭거나 편안히 보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의 방학이 아닐 것을 예감하며 떠날 계획을 세우긴 했으나 사실은 무척 망설였다. 왜냐하면 세월호 참사라는 아픔이 마음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론은 떠나기로 했다.

우리네 삶이 오묘해서 누군가의 슬픔과 또 다른 누군가의 기쁨이 어우러져서 삶이란 도화지 위에 다양한 모습을 펼치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함으로써, 또 다른 이의 근심어린 사연도 외면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잔뜩 흐린 날이었기에 비라도 오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날씨는 우리 만학도의 여행을 방해하지 않았다. 참 감사했다.

열심히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완도. 초등생 교과서에 등장하는 해신 장보고의 흔적이 있는 섬으로 알고 있었지만 육지와 잇는 다리가 놓임으로써 섬같지 않은 육지로 변해있었다. 완도의 여객터미널에서 여행지로 꼽았던 청산도행 표를 구입했다.

 

 

배를 자주 이용한 경험이 없었기에 세월호 참사 이후 어떤 점이 달라지고 강화되었는지 비교할 수 없었지만 나름 느꼈던 점을 올려보면, 몇 년전 남편과 보길도 방문시 표를 구입할 때 일일이 신분증 검사를 한 것은 아니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신분증과 함께 당사자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는 점과,

 

 

둘째, 차량상선에 있어서는 각 바퀴마다 버팀목을 일일이 고여 고정시키려는 노력을 보인 점이다.

  

 

완도에서 청산도까지 대략 4,50분 걸리는 거리로 파도가 잔잔했다. 뉴스에서 보면 줄로 일일이 차량을 매어서 고정시켜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일일이 사람 손으로 버팀목을 고이고, 도착해서는 또 일일이 빼야 하는 번거로움이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자세가 몸에 익숙치 않으면 귀찮아하면서 슬그머니 편한 쪽으로 기울수 밖에 없는 상황을 엿보노라니, 너나할 것없이 원칙대로 임하는 성실함과 책임감 있는 태도를 칭찬하고 높여주는 사회가 됨으로써 융통성이란 가면으로 야금야금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교묘한 술수가 도리어 부끄러워지는 사회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시간이다. 그리고 이 같은 버팀목이 어느정도 안전한지는 모르겠지만. 

 

 

말로도 글로도 표현하지 못할 만큼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

 

 

주말은 이 곳 청산도를 찾는 사람들이 꽤 많아야 하지만 금년의 세월호 참사로 인해 한산해진 풍경은 이곳 사람들의 한숨소리로 이어짐을 느끼며 착잡했다. 떠날 때는 미안함에 망설였고, 도착해서는 이도 저도 아닌 예매한 감정에 사로잡혔던 날이었다.

 

 

TAG 규칙, 망설임, , 버팀목, 비교, 여행, 착잡한, 청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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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서 지난 여름부터 정해놓았던 일정에 맞춰, 무르익은 가을을 맞아 휴일날 단풍놀이를 다녀왔다. 붐빌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세상에 이 정도 일줄은 미처 몰랐기에 무척 충격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을날 휴일에 단풍보겠노라고 나섰던 경험이 별로 없었던 나를 되돌아 본 계기가 되었다.

강원도로 향하는 고속도로나 휴게소마다 관광버스와 더불어, 알록달록 곱게 차려입은 행락객들이 어찌나 붐비던지 적잖이 놀랐던 풍경을 담아보았다.

 

ㅣ. 관광버스 행렬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은 물론, 주차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차량들이 도로까지 점령해 있었다.

 

 

 

▲ 휴게소 주차장에 서 있는 수십대의 관광버스를 보고도 놀랐는데, 우리일행이 탄 버스가 출발하며 보게 된 이 차량들은 도로를 주차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차량이 달리다 멈추거나 속도가 줄어들면, 어김없이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주범은 행락객을 실은 수많은 관광버스임을 알 수 있었다.

 

ㅣ. 화장실 앞의 긴 줄

관광버스 운전기사는 좀 덜 붐비는 휴게소를 선택하려 노력하지만, 좀처럼 그런 곳은 눈에 띄지 않았고 오히려 여자화장실에 만들어진 긴 줄만 보게 될 뿐이었다.

 

 

지나치며 보게 된 여자화장실 앞의 긴 줄...

 

▲ 각 휴게소마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특히나 여자화장실 앞에 늘어선 긴 줄은 여간해서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 풍경을 자아낸다.

 

ㅣ. 거리에서 식사하는 모습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선 사람들이 아침식사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주말마다 산행을 다니는 회원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라지만, 워낙 이런 무리들이 많아서... 내 눈엔 신기했다. 

 

 

 

ㅣ. 사람에 떠밀려 내딛는 발걸음

차에서 내려 설악 오색약수터로 향하는 주전골을 트래킹코스로 잡은 일행에 어울려 한참을 걷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 오신 어느 아저씨 한분이 투덜거린다.

 "이건 뭐 단풍구경을 온 건지, 사람구경을 온 건지 내내 바닥만 보고 걷고 있잖아."

전적으로 동감이다. 사람에 밀려서 행진하기 바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이어서 행군(?)을 하고 있었음을 그 순간 깨달았다.

 

 

▲ 뒤엉켜버린 일행을 놓칠까봐 여유를 가질 수 없었던 난, 그 아저씨의 푸념에 정신을 차리고 단풍을 감상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여유를 가지려 노력했다.

 

 

▲ 내가 가을단풍 구경하기 위해 휴일날 명소로 나들이를 해보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단풍놀이는 난생 처음이었다.

우리가 간 곳은 오색약수로 유명한 오색계곡 주전골이었다. 이곳은 설악산 3대 단풍여행지로 유명한 곳이란다. 그러니 휴일을 맞아 얼마나 많은 행락객들이 찾았겠는가. 하물며 가을이라고 단풍놀이를 따로 하지 않던 나까지도 동참했으니...^^

끊이지 않는 사람들의 행렬은, 반대방향에서 오는 사람들과 스치며 지나치기에 여유로운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부딪힘이 많았다.

 

 

▲ 계곡의 마른 물은 안타깝지만, 오색찬란한 단풍과 기암괴석이 내뿜는 비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야만 했다. 왜냐하면 우리일행의 진행방향이 오색약수터에서 시작한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방향이었기에 뒤돌아보는 수고로움이 더 멋진 광경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비경과 함께, 계곡을 따라 산책로가 평탄하게 조성되어 있어 트래킹 코스로 무리가 없어 인기가 더 높다고 한다.

알록달록한 형형색색의 행락객 옷차림이 단풍과 너무나 닮아있어 멀리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ㅣ. 아슬아슬했던 넓은 난간폭

폭이 좁은 난간과 폭이 넓은 난간이 반복적으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공간이 넓은 난간을 지나칠 때면 두렵기까지 했다. 실수로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바위로 된 계곡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ㅣ. 물마른 계곡 곳곳을 차지한 사람들

계곡에 있는 바위위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ㅣ. 약수를 마시려는 사람들

오색약수터는 두어군데 있었는데, 기다리는 사람들 줄이 길어서 감히 그 약수맛을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 제 2 오색약수터

 

천연기념물 제 529호인 오색약수는, 조선 중기 1500년 무렵 오색석사(현 성국사)라는 절의 스님이 반석위로 솟는 물을 우연히 마셔 보고 처음 발견했다고 하며, 약수에서 5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오색약수라 불렀다고도 한다.

다른 약수에 비해 나트륨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아 특이한 맛과 색을 지니고 있으며, 위장병, 신경통, 피부병, 빈혈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곳엔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너럭바위에서 샘솟는 오색약수를 보기 위해 일행들의 양해를 구하고 가까이 가보았다. 

물이 말라 작은 바가지에 차지도 않을 양이 솟고 있었다. 기다리는 줄은 길고 물은 적고 어떤 맛일지 궁금했지만 아쉬움을 뒤고 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ㅣ. 주차장에서 쫓겨나는 관광버스들

1시간~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트래킹 시간을 감안하여 주차시켜 놓은 관광버스들이 곤혹을 치른다. 그 예상시간을 초과하니 주차요원이 얼른 차를 빼라고 아우성이다. 우리 일행은 차를 향해 뛰어야만 했다.

 

 

주전골 삼거리에서 용소폭포를 거쳐 금강문-선녀탕-제2약수터-독주암-성국사-오색약수터로 잇는 길은 트래킹코스로 안성맞춤이다.

한쪽은 끊이지 않는 계곡을 두고, 절벽에 아슬하게 만들어 놓은 나무테크와 좁은 산길을 지나면서 보게 되는 계곡의 기암괴석과 청아한 물빛, 그리고 울긋불긋 오색단풍은 참으로 멋스러웠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설치된 안내판을 만날때면 그곳을 제대로 찾아 감상하지 못할 정도로 사람에 밀렸던 구간이 있어서 아쉬움을 맛보기도 했다.

 

▲ 독주암

정상에 겨우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독주암.

 

▲ 쥐아파트

계곡에서 만난 특이한 풍경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야생쥐들의 아파트다.

천적을 피해 절벽 중간 부분에 구멍을 숭숭 뚫어 산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림길을 만났을 때 나는 성국사로 향했다.

 

▲ 오색석사(성국사)

여느 사찰과는 달리 단청없는 건물이 소박할 뿐만 아니라, 한 채라서 암자처럼 보였던 성국사.

 

▲ 사람들 행렬에 떠밀렸던 구간에선 볼거리를 놓친 게 제법 많았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용소폭포, 주전바위, 선녀탕, 금강문 등... 아마도 보긴 봤을 법도 한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물론 사진도 없다.

 

 

▲ 길옆에 이런 안내판을 보고서 어디를 가리키는 지 찾아보게 되지만, 뒤따라 오는 행렬에 밀려서 미처 찾아볼 수 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고운 단풍 보려고 나섰던 길에서, 단풍보다는 관광버스와 행락객 행렬에 더 놀라고 취했던 일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TAG 가을, 관광버스, 나들이, 놀란, 단풍, 여행, 오색약수터, 주차, , 추억, 충격, 행락객, 화장실,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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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31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Favicon of https://hititler.tistory.com BlogIcon 히티틀러 2012.10.31 2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수기 때 여행을 다니면 정말 구경하기 보다는 사람에 치이느라 정신이 다 빠지는 것 같아요 ㅎㅎ

 

 

학창시절 추억이 서린 강릉 경포대와 오죽헌엘 몇 해전에 다녀오면서, 시간에 쫓겨 선교장 방문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어 둘러볼 수 있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왔을 때도 버스로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라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음은, 말로만 듣던 99칸의 한옥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의 멋진 풍광을 고스란히 품은 선교장 터는 하늘이 족제비 떼를 통하여 점지했다는 명당임을 증명하듯, 선교장을 병풍처럼 감싼 노송들이 기품을 더한다. 이 멋진 전경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왜 택호를 선교장이라 명명했을까?

예전에는 강릉 경포호가 선교장 아래까지 닿았다고 한다. 선교장 왕래를 위해서 경포호를 가로질러 배와 배를 붙인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하여 배선(船) 다리교(橋) '선교장'이라 불리게 되었다. 경포호의 물길따라 집 앞까지 배가 드나들었고 출렁이는 물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위치의 집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멋진 경관이 떠올라 감탄하게 된다.

 

선교장은 누가 지었나?

선교장은 조선시대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의 형이었던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번'에 의해 처음 지어진 건물로, 10대에 이르도록 증축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선교장의 주인은 강릉 고을의 만석꾼이었고 인심이 후해서, 흉년이 들면 곡식을 내어 백성들을 살렸고, 강릉을 찾는 선비들을 위해서는 숙식을 무료로 제공했다고 한다. 선교장 신세를 진 문인들은 감사의 표시로 좋은 글귀나 그림 등을 남겼고, 그들이 남긴 다양한 분야의 예술품은 선교장에 보관되어 있다.

 

99칸 전통한옥의 진수를 품은 선교장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위치한 선교장은 사대부의 상류 주택으로서, 99칸이라는 규모만으로도 놀라운데 화려하지 않은 전통한옥의 아름다움이 소박하게 녹아있다. 선교장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택으로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개인소유의 국가 문화재란 점과 사유재산인 집이 관광상품이 된 점이 참 특이하다.

개인 소유인 탓인지 입장료가 좀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른 3,000원.

안채, 사랑채, 별당, 가묘와 집 앞의 정자까지 옛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선교장은, 개방적인 남방형 가옥과, 추위를 막는 북방형 가옥의 특성을 고루 갖춘 특별한 모습으로 조선시대 민간가옥 연구에 중요한 곳이다.

 

선교장의 구조

길게 이어지는 행랑채 중간엔 ‘선교유거’라는 현판을 두른 솟을대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안채가 있다. 별당 건물과 함께 그 모습을 단단히 감추듯 ‘ㅁ’자 형태로 지어졌으며, 왼편에는 이색적인 차양을 두른 사랑채 건물인 열화당이 자리하고 있다.

 

 

규모가 큰 선교장엔 대문도 많은데 그 중에서 첫번째 대문인 선교장으로 들어가는 월하문.

대문 기둥에 붙어있는 현판의 글귀에는, '새는 연못과 나무에서 잠자고, 나그네는 월하문을 두드린다.'- 강릉을 찾은 선비들은 누구나 이 문을 두드리면 숙식을 제공 받을 수 있었다고 하니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이 존경스럽다.

대문안에 돌의자 같은 게 두개 보인다. 이름하여 하마석.

선비가 말에서 내릴 때 디뎠던 디딤돌을 일컫는다. 선교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많아서 넓은 하마석이 2개씩 필요했단다.

 

 

활래정

선교장에 들어서면, 연못과 땅을 반반씩 차지하고 지어진 누각을 보게 된다.

겨울에도 숙식이 가능할 수 있도록 온돌을 설치해 군불을 넣을 수 있게 지어졌다고 한다. 연못 중앙에 작은 섬위에 자라는 소나무도 일부러 분재한 것처럼 참 멋지다.

1916년에 건립한 활래정은 언제나 살아 있는 새로운 기운이 들어와서 선교장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어졌다고 한다. 물 위에 떠 있는 누마루와 온돌방, 다실이 있어서 근대 한국 특유의 건축양식과 조경미를 맘껏 뽐내는 활래정은 한국 민가정원 정자의 극치를 이루는 곳이다.

 

 

물이 끊임없이 흘러온다는 뜻으로 지어진 활래정(活來亭).

그래서일까? 관동팔경을 지나는 많은 풍류객들이 이곳을 찾았고 또한 많은 시문을 남겼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방문객들의 다도체험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랑채로 통하는 솟을대문

일자형으로 길게 지어진 건물 정면에는 사랑채로 통하는 대문과 안채로 통하는 대문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 사랑채는 남자들만의 공간이니 그 시절엔 마땅히 남자들만 드나드는 문이었다. 입구바닥이 계단이 아니라 돌로 만들어진 경사로 되어 있음이 특이하다. 옛시절에 장애인을 위한 배려차원은 아니었을 테고... 다른 이유가 있었다.

말을 탄 채로 사랑채 안으로 들어오는 선비를 위해 만든 경사면이라고 한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 앞에 있는 우물.

이 우물은 집안에 큰 잔치가 있을 때 사용하였고, 평소에 쓰는 우물은 건물 안에 있었다고 한다. 비가 오면 물이 늘었고 가물면 물도 줄었다고 한다.  

 

 

사랑채 대문 옆에는 안채로 통하는 여자들만의 안채 대문이 따로 있다.

사랑채 입구 바닥이 경사면이었던 것과는 달리, 안채 대문 입구는 계단으로 되어 있다.

 

 

안채 대문 옆 오른쪽 건물은 분리된 듯 또 다른 대문이 보이는 외별당이다.

외별당은 맏아들의 신혼살림 집으로, 혹은 작은 아들의 분가 이전의 거처로, 혹은 손자들 거처로 사용되던 곳이다.

 

 

 

현재는 후손들이 내실로 사용하고 있는 외별당 마당에는, 반들반들 윤이 나는 장독들이 질서있게 놓여있어 인상적이다.

 

 

밖에서 보면 긴 일자형 건물이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다양한 건물이 남녀공간을 달리하여 구분지어 놓을 것을 볼 수 있다. 99칸의 한옥에는 크고 작은 12대문이 있다.

유교사상을 철저하게 따랐던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통해 남녀구별짓기를 매우 철저하게 했음을 엿볼 수 있는데, 출입하는 대문과 더불어 대문의 방향까지도 엄격하게 구분했다는 설명을 듣노라니 소름이 끼쳤다. 여성보호차원으로 여겨지기보다는 남성들의 권위의식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교장에서는 남녀가 사용하는 대문은 따로 정해 놓았으나, 방향은 동일하게 한 점이 특별하다. 좋게 해석하면 이곳의 여성들은 조금이나마 존중받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지면에서 떨어진 특이한 문지방

사랑채로 통하는 대문 안채의 문턱은 대부분 초승달 혹은 그믐달 모양처럼 생겼고, 지면에서 떨어져 있다. 이는 해가 지면 안채의 대문을 일찍 잠가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므로써 밖에 나가 있던 개나 고양이같은 짐승이 문지방 아래로 드나들 수 있게 한 이유라고 한다.

옛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녀 성별과 신분을 엄격하게 구분짓던 조선 사회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어쩔 수없는 차선책으로 여겨져 씁쓸하기도 했다.

 

 

안채 주옥

안방마님과 여인들의 거처로 선교장 300년 최초로 지은 건물이다.

 

 

서별당

이씨가의 서고겸 공부방으로 사용되었고, 살림을 맏며느리에게 물려준 할머니의 거처로도 사용되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집안의 안채 노마님을 위해 돌을 쌓아 경사면을 만들어 놓은 길을 대할 때는 또 다시 지혜와 멋을 느끼게 된다.

 

 

연지당

서별당 전면의 건물로 집안 일을 도와주던 여인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앞 마당은 안채로 들어가는 곡물과 재물 등을 확인하며 받을 때 사용하던 곳으로 받재마당이라고 한다.

 

 

동별당

안채 동쪽의 별채로 안채 부속 건물이다. 이곳은 집안 잔치나 손님맞이에 집안 손님들의 거처로 사용하던 곳이다.

계단 위 건물 가운데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군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가 있다고 한다. 이 작은 문을 통해 하인이 들어가 군불을 지폈다고 하는데, 연기에 코가 매웠을 하인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처사라고 생각된다.

문지방을 만들 때는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고려한 듯 인정을 베풀었으나, 같은 사람인 하인에 대한 배려는 외면한 듯한 처사가, 신분 사회를 내세운 사대부의 위선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좌측에 즐비한 창문이 많은 건물은 행랑채로, 선교장 모든 건물의 전면에서 통일된 질서감을 느끼게 한다. 지나던 선비와 풍류객들이 이곳에서 머물렀고 지금은 체험객의 숙박이 가능한 곳으로써 1박2일 팀이 머문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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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사랑은 현재 체험객의 숙소로 활용하고 있다.

 

 

열화당

큰 사랑채로써 이곳은 선교장의 주인 남자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집이라는 뜻의 의미가 매우 좋다.

1815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덧붙여진 차양막이 특이해서 이국적으로 보이는 데, 구한말 러시아 공사관이 한 때 이곳을 찾았을 때 후한 대접을 받은 후 답례로 준 건물이라고 한다. 한옥과 어울리지 못해 어색한 면도 있으나 역사적인 의미가 있어 그냥 두었다고 하는데, 한옥스타일 속에 러시아스타일이 존재하는 덕수궁에서 본 정관헌과 비슷한 느낌을 풍긴다.

 

그리고 집 밖으로 여러 부속건물들이 있다.

 

 

곳간채

만석꾼 선교장의 곳간이었으며, 1908년 영동지방 최초의 사립학교인 동진학교로 개조하여 신학문으로 지역 인재를 양성하던 곳으로 사용되었다. 여운형 선생이 설립했다.

현재는 곡식 창고로 쓰던 건물로 복원되어 있다.

 

 

 

최근에는 기왓집과 초가집을 이용한 숙박체험도 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고 한다.

관람객이 퇴장하고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노을을 감상하는 여유도 참 멋질 것 같다. 언젠가 기회가 올 것으로 여기며 선교장을 나섰다.

 

 

 

 

드라마로는 궁, 황진이, 바람의 화원, 공주의 남자 등

영화 : 물레야 물레야, 식객, 대원군 외

방송 : 1박 2일, 외국인 근로자 가족상봉

 

옹기종기 구분지어진 집 구조에서 화려하지 않은 소박함과 더불어 기품을 맛보았다.

 

 

TAG 개인소유, 구분, 기품, 대문, 명당, 받재마당, 별당, 사랑채, 선교장, 소박한, 안채, 여행, 열두대문, 열화당, 월하문, 전통한옥, 하마석, 한옥, 활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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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minhk.tistory.com BlogIcon corry 2012.10.16 14: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원도는 참 좋은곳이 많은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