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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생각

아가씨라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게 된 나

아가씨를 보고 '아가씨~'라 부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아줌마를 보고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당연한 호칭을 낯설어하며 거북해하거나, 듣기 싫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 나이 삼십대에^^
아이 둘을 낳은 엄마로써 아줌마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아줌마란 호칭이 왜그리 거북하게 들렸던지... 차라리 OO씨 라던가 OO엄마가 편했던 시절엔, 누군가가 뒤에서
 "아가씨~~"
라고 부르면 자동으로 뒤돌아봤습니다. 그렇게 불렀던 상대방을 살펴볼 생각도 안하고 당연한 듯이 여기며, 길을 묻거나 말을 걸면 대답해주었습니다. 삼십대엔 착각이 아니고 그게 편했던 거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 사십대가 되었고 중반을 향해갈 때쯤, 친구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친구는 엄청 멋쟁이며 자기관리가 철저한 친구입니다. 어느날 뒤에서
 "아가씨~"
라고 부르길래 뒤돌아보았더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두명이 자신을 보자마자
 "AC~ 아니잖아."
불쾌감을 드러내며 지나치더랍니다. 이때 제친구 기분이 싸아해지면서
 '저 젊은이가 나를 보고 실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스레 미안해지더랍니다. 이런 일을 겪은 후로
 "아가씨~"
라고 부르면 겁이 나서 뒤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친구는 아줌마라고 불러도, 아가씨라 불러도,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학생같은 젊은이가 제 뒷모습을 보고
"아가씨"
라고 불렀던 적은 아줌마된 이후로는 없었습니다. 결혼전에는 있었지만.^^
돌아보면 아저씨나 아줌마가 길을 묻기 위한 부름이었기에, 제 친구경험처럼 상대방이 저를 보고 딱히 실망할 상황도 아니었겠지만, 상대방이 표현을 하지 않았으니 저를 보고 실망했는지, 안했는지 잘 모르니 오히려 편했던 거 같습니다. 이렇게 중반을 훌쩍 넘기고도 뻔뻔하게(?) 아가씨라 불러도 주저함없이 뒤돌아봤던 저였는데...
며칠전, 길을 걷는데 어디선가
"아가씨~~이~~"
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또다시
"아가씨~이~"
'도대체 누구야 대답 좀 해주지.'
생각하면서 주변을 살폈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잖아.'
또다시
 "아가씨~!!"
라고 부르는데 가까이서 들립니다.
 '아무도 없는데 도대체 누가 누구를 부르는거야?'
하면서 고개를 돌리는데, 제 옆에 차 한대가 스스로 와서 멈추면서
 "아가씨!"
라고 부른 것이... 저를 불렀던 것이었습니다.
 "아가씨 그렇게 불러도 참 무심하게 가시네. 길좀 물으려고 애타게 불렀건만^^"
 "ㅎㅎㅎ 저요? 저 아가씨 아니거든요."
 "ㅎㅎㅎ 뒤에서 보니까 아가씨처럼 보이길래... 실례했습니다."
그리고는 길을 물었고, 저는 가르쳐줬으며, 차는 떠났습니다. 속으로 웃음이 났습니다.
뒷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른 착각일 뿐이고, 앞모습은 그 누구도 착각할 수 없는 아줌마임을 스스로 인정하기에, 기분좋게 하려고 그렇게 불렀다는 것쯤은 이제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비록 제 뒷모습을 보고 그렇게 불렀다고 해서 기분좋아라 하면서 착각할 나이도 아닙니다. 그냥 듣기 좋은 예의상의 립서비스라는 것쯤은 저도 압니다. 저도 상대방을 기분좋게 하는 립서비스를 잘하는 편이라서요.^^

아줌마임에도 불구하고 아줌마 호칭이 그리도 낯설게 느껴졌던 저였는데, 언젠가부터 아가씨보다는 아줌마호칭이 더 편하고 친숙하게 느껴졌을까요? 더불어 이제는 아가씨라고 불러도 저랑 상관없는 호칭으로 여기며 무관심하게 되었는지 길을 걸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이는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세월따라 늘어났고, 주름도 늘어났으며, 더불어 허리디스크로 운동을 쉬면서는 중부지방도 두꺼워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 스스로를 기특하게도(?) 억울하게 여기지 않고(?) 중년의 아낙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부터?
말년휴가를 앞둔 군에 있는 아들과의 통화내용이 있었던 후에 확실히 제 자신을 착각에서 건져내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아들과의 안부통화에서
 "아들~ 제대하면 아빠의 힘이 되는 아들이 되어주면 좋겠어. 이제 아빠도 많이 늙었거든."
 "예 알아요. 열심히 살거예요."
 "그래 울아들 수고했다. 무사히 마치게 되어서... 고마워."
제 말을 듣고 있던 아들이
 "엄마, 엄마눈에는 아빠가 늙어보이세요?"
하고 묻더군요.
 "아니, 아빠가 늙긴 해도 아빠또래보다는 훨씬 젊어보인다고 생각해.^^"
 "맞아요. 아빠는 늘 그대로신거 같아요."
 "그럼 엄마는?"
괜히 물었습니다.^^
 "엄마는 신세대 사고를 해서 그런지 이미지는 참 젊어요. 아마 엄마도 엄마또래보다는 훨씬 젊으실걸요?"
 "그럼 당연하지^^"
 "그렇지만 엄마..."
 "뭔데? 왜 말을 하려다 접냐?"
 "솔직해도 돼요?"
 "그럼 당연히."
 "엄마는 솔직한 거 좋아하시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저 군대간 후 가끔 휴가가서 보면 아빠는 언제나 그대로신데 엄마만 늙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 공부방아이들이 엄마보고 연상이라고 하는데 뭐^^. 네가 뭐 죄송할게 뭐냐. 세월따라 늙지 않는 아빠가 죄송해야지. 크크^^ 몇년전부터 주변사람들이 다들 그러네. 아빠는 늘 그대로라구... 그래서 확실하게 깨닫고 받아들였어. 면역이 되어 이제 괜찮아. 크흐흐흐"
 "엄마, 요즘도 엄마뒤에서 아가씨라고 부르는 사람 있어요?"
 "아니 왜?"
 "예전에는 엄마보고 아가씨~ 라고 부르면 뒤돌아 보는게 당연하다고 하셨던 말이 생각나서요."
 "글쎄... 이제는 나보고 아가씨~ 라고 불러도 내가 안돌아볼낀데.ㅎㅎㅎ"

정말 안돌아보게 되더군요. 나이들어가면서 외모는 성품따라 가는 거라구 늘 울남편이 저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다독거린 말입니다. 이에 충실했던 울남편은 자신의 또래보다 확실히 젊어보이는게 사실입니다. 남편에 비해 저는 엄청 젊은 이미지로 주변에서도 저를 젊게 봤습니다만, 언젠가부터 그간의 젊게 본 세월을 한꺼번에 극복이라도 하듯이 속도를 내며 늙어가고 있음을 제 스스로 느끼며, 제 나이를 끌어안게 되면서부터... 아줌만줄 알면서도 "아가씨~"라고 불러준다고 해서 기분 나쁜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제가 미안한 마음에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울딸이 저 모르게 40대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

내년이면 신세대가 아니라 쉰세대가 되는 제가, 오른쪽 사진속의 저 카고바지(큰 주머니가 여러개 달린 바지)를 입을 용기가 있을지... 있다고 해도 절대로 '아가씨~ '라는 호칭에 뒤돌아보지 않는, 아줌마호칭에 더 친숙해져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