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다한생각

모임의 회비를 맡은 총무가 부담스런 아낙

원래 성격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저의 우유부단함이 너무 싫어지는 날입니다. 요즘 한창 떠드는 귀족계도 아닌데...

혼인계 형식을 띠고 있지만 적은 회비를 모아 자녀 혼인이 있는 회원에게 지원하는 것이라 별로 부담되지 않는 모임이긴 하지만, 회비로 모은 돈이 목돈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비해 비슷한 또래가 아니라 층층을 이룬 회원들의 집합이라 지출되는 상황은 드물고 목돈을 관리해야하는 저는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리고 또 말못할 사정이 겹치는 바람에 모임회비로 거둔 목돈을 관리하는게 부담스럽게 여겨진 저는 똑같은 금액으로 다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안건에 부쳤지요.

회의 결과
첫째, 친목을 위해서 여행을 가자는 의견
둘째, 집집마다 주부들 사정을 고려하다보면 100%참석으로 여행에 동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동일한 금액으로 나눠갖자는 의견
셋째, 축의금을 올려서 더 많이 태워주자는 의견으로 나뉘어졌습니다.
회원 1명이 불참한 가운데 많은 동의를 얻은 것이 둘째의견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타지 못한 회원들에게 나눠주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단, 정기예금 기간이 끝나는 다음달에.
내돈이라면 모를까 한푼두푼 모임의 회비를 받아 목돈이 된 회비를 쥐고 있는 제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홀가분해졌는데...

어제...
한회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차피 다음달이면 받을 회비니까 정기예금으로 묶여있는 회비외에 여유가 있는 회비에서 미리 좀 돌려줄 수 있으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즉, 갑작스럽게 세일품목으로 나온 여행사의 해외여행에 가족여행으로 동참하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흔쾌히 긍정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회장에게 알렸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다음달이면 다 나누게 될 것이니 한달 먼저 미리 좀 줘도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었건만... 다른 회원들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한사람의 사정을 들어주면 다른 회원들도 비슷한 사정을 다 들어줘야 하고... 그리하여 안된다는 결론이 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주겠다고 했습니다. 제 대답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으므로 회원들이 말리는 상황이면 저 개인적으로라도...
한달 먼저 줬다고 해서 다른 회원이 뭐라고 하면 제가 다 감당할 생각을 하고 흔쾌히 대답했던 저의 생각대로 하겠다고 결론을 내긴 했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부탁했던 회원과 다른 회원들간의 감정충돌로 인해 오해가 생긴 것 같아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어제 부탁했던 회원에게 입금시켜주려고 집을 나서려는데 문자메세지가 들어옵니다.
'돈 해결되었으니 보내지 마세요.'
현기증이 났습니다. 어제 다른 회원들간의 의견은 회장에게 맡기고 저는 오후내내 일을 했기에 직접 통화하지 못하고 회장에게서 간간히 사정을 들었던 내용을 떠올리며, 아마도 자존심의 문제로 속많이 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통화하려고 시도했건만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간되면 문자를 주십사고 문자메세지를 넣고 기다렸건만... 전화는 오지 않고... 돈을 보낼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보내자니 제가 불편하고... 몇차례 통화를 시도하던 중 연결이 되었습니다.
김장준비하느라고 핸드폰을 아무데나 뒀다는 것입니다. 아 다행.
저는 일부러 제 전화를 피하는 줄 오해했거든요.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노라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무리 회원들간의 의견이 다르다고 하지만 함께한 세월이 1.2년도 아니고 7,8년이란 세월이 허무하게 느껴지면서 회원들 의견을 다 들어보겠다는 회장에게 제 생각을 단호하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밀려들었고, 그 회원에게 미안해졌습니다.
함께한 세월을 믿음과 인정으로 회원의 편리를 봐줘도 될 상황이라고 믿었던 저와는 다른 의견들을 접하면서 모임의 규칙을 엄격한 잣대로만 맞추고자 하는 회원들의 생각이 내내 저를 짓눌렀습니다. 많은 시간도 아니고 한달인데... 제가 냉정하지 못한 탓일까요.

초창기때에 몇해를 함께한 총무가 필리핀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어 떠나갈 때도 회원들간의 의견이 맞지 않은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서 모임에서 뭣하나 챙겨주지 못한 아쉬움과 아픔을 경험한 후, 제가 모임에서 제일 젊다는 이유로 총무를 맡긴 했으나 그 일이 잊혀지지 않고 있어서 인생의 선배님을 모신 모임이 늘 조심스럽게 여겨지는 가운데 어제와 같은 일을 겪고 보니 마음이 착잡합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만난 이해타산적인 모임이라고 해도 믿음과 의리는 조금 있었으면 하는 제 바람이 쓸쓸한 가을바람에 날아갑니다.

사정상 한달 먼저 타겠다고 부탁한 회원이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도 아니고 편리를 좀 봐주기를 바랐던 작은 바람을 담고 단지 여행사에 빠른 입금을 위해서 부탁했던 것이었는데... 회원들간의 의견차이로 자존심이 무척 상해진 회원은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의 돈을 융통하여 여행사에 냈다면서 보내지 말라고 하는 음성을 들으며 회원의 자존심을 제가 건드린 것 같아서 정말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입니다.

소수의 의견이라도 경청하고자 하는 저의 배려가 때로는 우유부단함으로 인해서 회원들간에 너무 자유로운 의견을 속출시키며 오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대하면서 제 성격하고는 정말 다르게 표현되는 이 모임에서 왜 총무를 맡고 있는지 회의가 드는 날입니다.
총무의 재량을 포기한 채 융통성없이 일을 처리하는 바람에 회원들간에 기분 상한 일이 생기게 한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모임의 목돈이라봐야 천만원도 안되지만 이 모두 남의 돈이다 보니 부담스럽다는 제말에 얼마되지 않는데 왜그리 부담을 느끼냐고 의아해하는 회원도 있지만... 저는 남의 돈을 맡고 있다는 것이 꽤 부담스럽습니다.

내는 총무안하고 싶데이. 제발 좀 시키지 말거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