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큰댁의 질녀가 전화를 해서 고맙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전에는 큰댁의 큰조카도 고맙다며 전화가 왔다고 전하는 남편은 기분이 꽤 좋은가 보다.
"돈 좀 과하게 쓰고 나니 대접이 달라지네^^"
내눈치를 보는 남편,
"그게 그렇게 좋아. 돈때문에 대접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 당신도 아나벼. 그게 당신이 말하는 가족이야?"
빈정댔더니 남편이 나를 달래는 투로
"이럴 때 사용하려고 돈 벌잖아. 당신 대우도 달라졌잖아. 당신위치를 생각해서 좀 과하게 한거야. 기분풀어. 내가 더 열심히 일할께."
내가 더 열심히 일할께... 남편의 이말에 눈물이 핑 돈다. 마음편히 쉰 날도 없으면서 일하는 게 뭐가 좋단 말인가. 20여년을 부부로 살지만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 무더운 여름날 남들가는 휴가한번 없었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취미나 놀이도 없는 사람이다. 3년전 신체적 아픔을 겪은 후, 기껏해야 내가 블로그에 올릴 소재를 핑계삼아 돌아다니려고 할 때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주는 것이 고작이다.
가끔은 남편의 착한 심성이 나를 괴롭힌다. 학창시절 선행상은 거의 내꺼다시피 했을 정도로 친구들이 인정했던 나도 누구못지 않게 착한 심성을 지닌 여자였는데, 남편과 함께 살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나쁜역할을 맡게 되고, 내가 알아서 베푼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인사를 듣게 될 정도로 남편은 천사. 나는 악마?표가 되고 말았다. 나는 단지 우리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서 좀 더 알뜰하게 생활한 것 뿐인데...
시댁을 통하여 억울한 일도 겪지만 나는 참고 누르고 남편의 칭찬에 미소를 보낼 뿐이다. 누가봐도 풍기는 첫인상은 남편이 훨씬 유리하니까. 악마표라도 상관없다. 내 건강을 위해서 빠른 체념, 포기를 했으니까^^
남편은 오늘도 찬 공기를 마시며 새벽에 운전대를 잡으러 일터로 향했다. 유난히도 새벽잠이 많은 내가 뒤척인다. 체념 체념을 해야지 포기한 부분인데 내가 왜 또 이러지... 이런 내가 너무 싫다.
형님의 말씀중에 '삼촌이 내 금고 같아서 참 고마워'라는 표현이 자꾸만 떠올라 나를 아프게 한다.
"아쉬울 때마다 삼촌밖에 생각이 안나. 자존심때문에 친정자매들한테 말하기 싫고 그저 만만한게 삼촌뿐이야. 고마워. 며칠 말미를 두고 돈 이야기를 해도 말만 떨어지면 아무 말없이 바로 빌려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삼촌이 꼭 내 금고같아서 든든해."
어 금고? 그런 말씀까지 하시면 안되는디... 금고라는 표현은 우리 모녀가 남편에게 장난겸 핀잔삼아 가끔씩 하는 표현이었는디... 형님의 이 표현에 놀라 어렵사리 용기내어 내 마음을 쬐꿈 내보였다.
"형님께서 애들아빠보고 금고라고 표현하셨으니까 드리는 말씀인데요. 안그래도 우리 모녀는 애들아빠를 금고라고 그러거든요. 형님~ 금고가 돈떨어지면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꼭 기도 많이 해주세요. 우리가 돈 떨어지면 우린 어디가서 돈 빌릴 때도 없잖아요^^"
형님 기분 상하실까봐 눈치 봐가면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웃었지만, 내 속에서는 또 다른 아픔이 떠올라 짓눌렀다.
3년전 남편의 뜻하지 않은 사고와 더불어 객혈을 하며 병원신세를 3개월간 졌어도, 물질적으로 도움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편이 이일을 겪기 전, 우리는 동서가 수술했을 때 그 병원비도 우리가 부담했고, 큰댁의 막내조카 아들이 아파서 수술했을 때도 많은 병원비를 우리가 감당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우리가정이 스스로 금고가 되어야하는 이유다.
이런 환경이 우리부부를 더 강하게! 알뜰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슬프다. 긴장하고 살아야하는 것이 너무 싫다. 도움받는 것보다는 도움주는 위치가 좋다며 감사하고 행복해하면서도, 아주 가끔은 나도 내 자식에게 유명메이커 옷과 신발을 사주고 싶다. 그리고 나도 남편도... 그러나 나는 이런 뜻하지 않은 일을 만날 때라야 홧김에 우리 애들한테 겨우 선심쓰듯 질러버린다. 그리곤 후회한다. 나까지 이러면 울남편 너무 불쌍하다고...
남편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우리보다 생활면에서는 윤택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정말 속에서 화가 난다. 우리는 허리띠 졸라매야한다면, 애들조차도 우리집에서 줄일 것은 먹거리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검소하게 사는데 말이다.
어렵다고 하소연하면 목돈을 내놓는 물주가 되어야 함이 남편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비워진 만큼 채우려고 남편은 더 악착같이 일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사하다. 비워지고 나면 곧 바닥이 보일 것 같지만 지금까지 그런 적은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번에도 채워지지라 믿는다. 더구나 형님께 기도부탁까지 했으니까 든든하다.
남편의 통장에 돈이 마르지 않는 금고가 되어야함은, 가까운 친척들 중에 아쉬울 때 돈을 차용할 만한 집은 우리가정밖에 없다는 것이, 내남편의 육체를 힘들게 하고 남편을 바라보는 내마음을 힘들게 한다.
나는 마음이 힘들고, 남편은 몸이 힘들고... 옆에서 이런 우리부부를 지켜보는 딸이 가끔씩 답답해한다. 그럴때면 또 우리부부는 딸을 나무란다. 도움주는 쪽이 훨씬 좋은 거라고... 우리 딸도 많이 헷갈린다. 우리아빠가 얼마나 돈이 많길래 주고도 또 줄게 있단 말인가?
사실은 그게 아니다. 쌓일만 하면 빌려가거나 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받을 기약이 없으니, 또 남편은 열심히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것이다.
이러면 안되는디 최근들어서는 너무 긴장하고 살아온 나날로 인해, 알뜰하게 사는 것에 지쳐가고 있는 나 자신을 가끔 느끼곤 한다. 그러면서 남편의 지쳐있는 모습을 훔쳐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더 속상하고 서운한 것은 따로 있다.
돈 빌리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그리고 돈 빌려주면서 유세뜨는 것 같아서 남편도 상대방 입장생각해서 군소리 하지 않는다. 그런데 울형님 끝에 그 말씀은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내가 시집와서 삼촌 둘을 어떻게 키웠는데 이 정도 도움은 받아도 되지 않겠어."
형님의 이같은 표현에 나는 으악하고, 남편은 평생의 빚쟁이가 된 기분이 되고 만다. 나는 몹시 불만스럽지만 한마디도 못하고 끙끙 앓는다. 조실부모한 복도 없는 운명속에 자란 남편과 삼촌이지만, 제일 혜택을 못받은 사람이 울 남편인데 집안에 돈과 관계된 몫을 맡고 있으니 금고가 된 울남편의 통장이 마르면 안되는 것이다.
재산이 좀 있을 때는 우리가 혹시라도 기댈까봐서 염려했는지 상처되는 멘트를 날리며 연막전을 치시던 형님이셨다. 자식처럼 똑같이 키웠고 늘 그런 마음이라고 하시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 큰아들한테 사업자금으로 다 대주고 이제는 남편한테 도움을 받으면서도 절대로 굽힐수 없는 울형님의 자존심 "내가 삼촌을 키웠다."
대접받았다고 좋아하는 남편의 마음이 어린애처럼 순수해서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도 남편처럼 단순해지고 싶다. 결혼시켜 놓고 남편한테 아무것도 없었을 때 얼마나 우리를 무시했던가. 그 무시가 오늘날의 우리가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되었기에 형님께 감사드려야 할 부분임을 고백한다.
기름값이 내렸다고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일거리가 줄어들어 공회전을 할수 없는 처지가 된 남편은 차안에서 잠을 청한다며 알려왔다. 비워진 통장을 채울 궁리로 피곤한 줄 모르고 지치도록 일에 빠질 남편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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