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말, 안부차 친정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누나 잘 지내고 있지요?"
"응 그래 너는?"
"뭐 우리도 잘 지내고 있지요. 내 조카 OO이는 군생활 잘하고 있어요?"
"그래, 가끔 전화오는데 괜찮은가봐. 너네 늦둥이는 잘 자라고 있제?"
"예, 누나~ 우리 큰딸 군입대한다."
"뭐어? 뭐라고? OO이가 왜? 여자잖아."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금년에 대학교에 입학한 남동생의 큰딸, 나한테는 친정질녀가 되는 숙녀가 입대를 한다니...
"뭔말이여? 좀 자세하게 말해봐."
"말 그대로 입대한다구... 요즘 대학졸업해도 취업이 힘들다는 거 스스로 느꼈는지... 대학졸업 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생겼는지 여군에 지원하겠다고 해서 애엄마랑 고민고민하다가 그러라고 했어."
"OO이 주변에 오빠들이 군에 가는게 멋있게 보였나... 남자들은 군에 안가려고 하는데... 말리지 그랬어. 훈련이 힘들다고..."
작년 3월에 오빠네 큰아들이 입대한 후, 이어서 우리 아들이 12월에 입대하고 금년 1월에는 오빠네 둘째가 입대해서 친정쪽으로 아들들은 국방의 의무를 마치기 위해 다 군에 간 상황... 느닷없이 동생네 큰딸인 여자애가 입대를 한다니 정말 믿기지 않아서 몇번을 되풀이해서 물었습니다만 입대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말렸지요. 그런데 우리 OO이가 하는 말이 여고시절에 장래희망란에 '여군'이라고 3년 내내 기재했다는구만요."
"뭐어? 거참 황당한 애네."
"누나~ 놀라지 마세요. 해병대지원했어요."
말문이 꽉 막히며 아이고 제 정신도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육군이 아니라 해병대@.@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말을 더듬거리며
"해 병 대 에 여 군 도 있 었 나?"
"예, 생긴지 한 5,6년쯤 되었을 걸요."
"왜 하필이면 여군이며 해병대야. 녀석들은 가기 싫어도 의무상 가는긴데..."
"여군지원하겠다는 결심을 한 OO이를 두고 우리도 많이 고민했어요. 사립대학이라 대학등록금을 투자한 만큼 취업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고 하는 딸의 결심에 고민해서 결정내렸어요. 여군지원도 예전하고 달라서 지원자가 무척이나 많았대요. 필기시험에 실기시험까지 보고 합격해서 입대를 앞두고 있어요. 해병대는 훈련이 힘들거라는 예상을 많이 하기때문에 지원율이 약할 것 같아서 한거구요."
"그럼 직업군인이 되는거네."
"예. 하지만 요즘은 지원했다고 다 장기복무가 되는게 아니고 훈련끝내고 3년 군복무후, 지원자에 한해서 성적에 따라 군에 남거나 아니면 제대를 해야한다네요. 예전에는 지원만하면 무조건 되었지만 요즘은 사회의 취업문이 좁아서 직업으로 삼으려고 군에 지원하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대요."
"만약에 3년 후에 뜻대로 장기복무자가 안되고 탈락되면 어떻게 되는데?"
"그때는 제대해야죠."
"결심하고 들어가서 어려운 훈련과정과 군복무 3년을 다 끝냈는데 탈락된다면 그것도 아쉽고... 남는다고 해도 걱정... 뭐라고 말할수가 없네."
"저도 착잡해요. 전화 하라고 할께요. 그럼 잘 지내셔."
"으으.. 그래 다시 전화하자."
이번 추석때 만난 작은올케가 휴가나온 우리아들을 보더니 무척 반가워하며 얼마전에 딸이 입대할 당시에 입고 갔던 옷이 배달되었는데 깨끗히 세탁해서 보내져 왔더라고 하는 말에 이심전심으로 짠한 그리움이 묻어났습니다.
필기시험, 실기시험, 그리고 신원조회까지 통과하여 입대했지만 며칠사이에 퇴출되는 사람도 많았다고 전하는 딸의 편지내용을 전하면서 나이도 제일 어리고 체력은 통과되었으나 체격이 약해보여서 걱정했건만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서 짠한 마음임에도 불구하고 안심되더라는 부모 마음을 전하는 올케의 촉촉해진 눈을 말없이 바라보았습니다.
동생은 딸이 장래희망난에 '여군'이라고 3년간 기재했던 사항을 위안으로 삼으려하지만 부모마음이 어찌 짠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취업의 문이 좁다고 해도 군생활보다는 사회생활이 좋을 것인데... 이왕에 입대했으니 질녀의 적성에 맞아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도 깊은 마음 한곳이 아파왔습니다.
어르신들 말씀이 '여자가 남자보다 철이 빨리 든다'고 하시더군요.
취업문이 좁음을 감지한 질녀의 선택이 후회없기를 바라며 옆에서 듣고 있던 우리아들도 장래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혼돈의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훈담긴 공연을 선보인 유치원생들의 자랑마당 (1) | 2008.09.22 |
---|---|
불에 타고 마모된 특이한 모습의 석불좌상 (2) | 2008.09.20 |
시어머니의 지나친 손자사랑에 고민하는 막내질부 (5) | 2008.09.16 |
추석연휴를 늘린 학교초등생을 둔 엄마들의 불만 (3) | 2008.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