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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생각

시외버스 막차타고 오면서 불안했던 귀갓길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뜻하지 않은 불안이나 위험을 염려하여 되도록이면 막차를 타지 않는 편인데... 지난달 강릉을 다녀오면서 차시간을 잘못 기억하여 10분 늦께 터미널에 도착하는 바람에 타고자했던 차를 놓치고 어쩔 수 없이 막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지금 쓰고자 하는 글을 쓰면 혹시라도 운전기사분에게 피해가 갈까봐서 염려되어 달이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이제사 이 경험을 공개합니다.^^

강원도와 인접한 이곳이지만 강릉을 왕복하며 버스안에서 강원도 지역의 도로를 내다보노라면 해발 300m라는 팻말이 보이고 어느지역에서는 더 높은 400m, 500m이라고 적힌 팻말도 보입니다. 이런 구간탓에 달리는 버스는 굽어진 도로를 왼쪽 오른쪽으로 수없이 핸들을 돌리고 승객들의 몸도 따라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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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지만 주말인 탓에 차가 많이 밀렸습니다. 제가 탄 시외버스는 무정차가 아니었기에 운전대를 잡으신 기사님이 정해진 시간안에 거쳐야 할 정류장에 도착하지 못할까봐서 염려를 많이 하셨고... 염려대로 조금씩 연착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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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점점 산뒤로 모습을 감추고 어둠이 도로를 점령하면서 그토록 밀리던 승용차 대열과 함께 버스안의 승객들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시외버스는 규정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교통체증속에 몇군데의 정류장을 거치면서 이미 늦어버린 버스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이어지는 다음 정류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약속된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그즈음... 버스에 실린 물건을 받아야 할 수신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하면서 운전기사님의 마음은 더 바빠지는 듯 느껴졌고, 이 길을 달리면서 승객들에게 질문하는 내용으로 보아 익숙한 구간이 아님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혹시 승객님 중에 OO삼거리가 어딘 줄 아시는 분 계십니까?"
혹은
 "OO정류장으로 가려면 어느쪽 도로를 이용하는 게 좋습니까?"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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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은 더 짙어진 어둠으로 말미암아 이정표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 승객들도 몇 남지 않았습니다. 불안했습니다.
 '기사님의 질문에 대답할 사람이 없으면 어떡하나....'
다행스럽게도 이 구간을 이용하시면서 비즈니스를 하시는 아저씨가 계셔서 이 길이 서툰 운전기사님의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을 해주시고 또한 자신이 내리고 난 뒤에라도 혹시 망설여지는 곳이 있다면 어떤 길을 이용하라고 일러주신 자상한 분이 계셔서 참 고맙고 든든했습니다.
밤은 점점 더 깊어지는데 길을 잘 아시던 아저씨마저 내리시고 나니 제천까지 돌아오는 승객으로는 저보다 연세가 조금 더 있으신 아주머니 한분과 저뿐이었습니다. 저... 속으로 또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오늘 중에 제천에 도착할 수 있을까?'

조용해진 버스안의 공기를 타고 기사님의 심정이 전달됩니다.
 "아주머니, 많이 불안하시지요. 이제부터는 확실히 아는 길이오니 걱정하지 마십시요^^"
아주머니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기사님~ 이 길이 초행길이십니까?"
 "아닙니다. 10여년 전에 한번 운행해본 경험이 있던 길입니다. 밤이라서 이정표가 잘 보이지 않아서..."
 "아이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초행길이나 다름없네요. 그런데 어떻게 이코스를, 더구나 막차를 운행하게 되었어요?"
 "회사에 사정이 있어서..."
 "......"

저는 타시도에 가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면 정해진 좌석이 따로 있지 않을 경우에는 앞자리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키미테를 붙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차멀미를 하게 될까봐서 염려하는 마음에... 그리고 앞자리를 선호하다가 생긴 버릇인데 간혹 기사님을 뚫어지게 봅니다. 왜냐구요? 혹시라도 졸음운전을 하실까봐서요.ㅎㅎㅎ 표정에서 졸음이나 피곤함이 느껴지면 질문을 던져서 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무슨 책임감처럼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이 버스기사님은 승객인 우리들만큼이나 긴장된 표정이었기에 불안감 속에서도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저씨 연착해도 괜찮으니 서둘지 마세요^^"
 "예, 감사합니다. 이제는 괜찮지만 중간 중간 정류장에서 혹시라도 불만을 가진 승객이 있어 회사에 전화라도 하게 될까봐서 마음이 쓰입니다."
 "교통체증으로 인한 것인데... 승객의 불편사항을 듣더라도 회사에서 이해하시겠지요."
 "요즘 세상이 안그렇습니다. 과장되게 부풀려서 기사들 골탕먹이는 승객이 가끔 있어서 오늘 이구간을 운행하면서 혹시 실수라도 한게 없는지 되짚어 보게 되네요."

까맣게 물든 밤에 고불고불 굽은 도로를 익숙치 않은 기사님이 운행을 한 시외버스를 타본 경험으로 말미암아, 정류장마다 다 정차하는 시외버스인 경우, 막차를 이용하지 말라던 남편의 뜻을 제대로 이해한 날이었습니다.ㅎㅎ

지금은 그 기사님에게 익숙해진 길이 되어 이정표없이도 잘 달리고 계실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