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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여행

소백산에서 구조차로 하산한 사연

 

 

 

최근에는 가끔이나마 주말이면 휴식을 갖게 되는 남편을 종용하여, 운동과 산책삼아 낮은 야산을 오르곤 합니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벌써 일주일 전이군요.)에는 소백산을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고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국립공원임을 강조하며 남편이 동행하기를 원했지만, 하산이 두려운 제가 자꾸만 미루다 이제서야 오르게 된 것입니다.

 

 

죽령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이용했는데, 콘크리트로 잘 닦아 놓은 도로같은 등산로가 낯설어서 좀 뜻밖이었네요. 그리고 등산객을 위해 곳곳에 전망대와 휴식처가 마련되어 편리하긴 했으나, 인공적인 내음이 물씬 풍겨 등산의 운치를 감해 아쉬웠습니다.

 

 

 

소백산 강우 레이더 관측소가 보입니다.

제가 서 있는 뒤로, 한 어린 소년이 하산길을 마구 뛰어내려 옵니다.

헉헉거리며 오르고 있던 저였던지라 이 소년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아~~~ 옛날이여~~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남편은

  "연화봉으로 갈까? 중계소로 갈까?"

갈림길에서 갈등했지만, 저는 중계소까지 갔다가 하산하기를 원했기에 중계소겸 관측소에 들렀습니다. 실내는 들어갈 수 없고 그저 건물주위만 구경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화봉으로 향하고

 

 

관측소에서 멀리 보이는 연화봉에 설치된 천문대를 바라보던 남편이,

"여보, 언제 또 다시 올 수 있겠어? 이왕에 온 김에 비로봉까지는 아니어도 연화봉까지는 갔다오자"

"난 무리야. 하산할 때 무릎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가보고 싶으면 당신은 갔다 와. 나는 여기서 좀 쉬다가 천천히 하산하고 있을께. 시간상 당신하고 하산길에서 만나게 될거야."

"당신하고 같이 가야 재밌지. 혼자 뭔 재미래. 하산이 힘들면 내가 업고 내려갈께."

하산시 따르는 무릎고통이 두려워 제가 등산을 꺼리는 바람에 우리부부 함께 등산해 본 일이 없습니다. 

 "여보, 어쩌면 우리부부 함께 등산한 기념이 될 지도 모르잖아. 그러니 함께 가자."

남편의 설득은 끈질겼고 기념될 추억이란 말에 제 마음이 약해져 연화봉으로 향했습니다.

 

 

 

백두대간으로 통하는 소백산에는

 

 

관측소 뒤 넓은 공간과 연화봉 근교에 등산객이 불상사를 당했을 때 수송수단으로 헬리콥터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여느 등산로와 달리 편한 길이긴 해도 등산로인데, 양산을 들고 가뿐하게 발걸음을 옮기시는 아주머니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스틱 두개를 짚고서 힘겹게 발걸음을 떼시는 이 분까지 본 남편이

 "당신은 양산 든 아주머니나 스틱 짚은 아주머니에 비하면 젊은이야. 그런데도 등산을 꺼려."

 "오르기만 하는 등산이면 잘하지. 하산을 못해서 높은 산엘 안가려는 거지."

체력이 문제가 아니라 통증때문임을 강조하는 내 말을 이해못하는 남편이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수시로 반기는 다양한 야생화가 제 위안이 되었네요.

쑥도 있고 고사리도 눈에 띄고...

국립공원에서의 임산물 채취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벌금형!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소백산 연화봉에서는 5월말에서 6월초에 철쭉제가 열리는데, 5월 중순경에 찾은 산에서는 철쭉은 소식이 없었고 야생화와 진달래가 먼저 등산객을 맞이합니다.

 

 

 

드디어 연화봉입니다.

 

 

 

남편은 저를 데리고 연화봉까지 왔음을 뿌듯하게 여겼으나, 저는 성취감보다는 하산할 일이 아득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막 피어오른 새싹들이 이제 소백산을 봄으로 치장하기 시작한 연화봉, 그러나 철쭉이 피지 않은 산은 약간 삭막함마저 감돌았습니다. 2주후면 철쭉이 뒤덮을 멋진 산을 그리워하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저의 하산길은 다른 사람에 비해 두배의 시간이 소용될 것을 감안하여 하산을 서둘렀고, 조심스레 걷고 있는데 산에는 해가 평지보다 먼저 짐을 강조하며 남편이 걸음을 재촉합니다.

 "당신 먼저 내려가. 난 쉬엄쉬엄 내려갈테니..."

 "당신두고 어떻게 나 먼저 가. 그건 절대로 안되지."

천천히 걷고 있는 제 모습이 못마땅했을 남편은 또 다시 종용합니다. 그 마음 이해는 되지만 전 도저히 걸음을 재촉할 수가 없었지요. 무리하다가 통증이 시작되면 주저앉을 수도 있음을 알거든요.

집중해서 조심스레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 잠깐 휘청하면서 내심 걱정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찢어지는 듯한 무릎통증이 시작된 것입니다. 참으려 애쓰는 데도 눈물이 났습니다.

울남편, 그때서야 제가 무리하면 안된다는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듯 했습니다.

 "큰일이네.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야 할텐데."

 "나도 알고 있거든. 그래서 연화봉까지는 안갈려고 했던거야."

너무 아프고 마음은 급하니 짜증이 났습니다.

 "미안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형광등같은 반응을 보이는 남편, 이럴 때는 제 남편이 아니라 그야말로 내편이 아닌 남편같습니다.

아프기도 하고 남편의 설득에 넘어간 제 자신도 싫고, 내려가야 할 일도 걱정이고... 이런 저런 상황이 속상해서 아무도 없는 숲속에 들어가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네요.

 "아파서 쩔쩔매는 나랑 맞출 생각말고 당신 먼저 내려가서 기다려. 밤이 되던 말던 오늘 중으로야 내려가겠지."

화도 났습니다. 남편은 심각해지고... 

 "내가 먼저 내려가서 사정이야기하고 차를 갖고 올테니 당신은 차세우기 좋을 만한 곳까지 와서 기다려. 무리하지 말고"

이 말을 남기곤 남편은 멀어졌습니다.

 

남편이 떠나고 홀로 남은 저는 이를 악물고 절뚝거리며 걷다 쉬었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동안 연화봉에서 봤던 등산객들은 안타까운 눈빛을 던지며 하나 둘 저를 앞질러 내려가고 정말로 이 산에 저만 남으면 어쩌나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앞서간 남편한테서는 전화도 없고...

남편이 관리사무소에 도착하기 전에, 직원이 퇴근이라도 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순간,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아파도 참고 내 스스로 내려가야 한다. 할 수 있다.'

뒤로 걷다가 옆으로 걷다가 앉아서 쉬다가 다리운동을 했다가.. 그야말로 혼자서 쌩쇼를 다하며 걷고 있는데 공사차량 같은 게 보입니다. 너무 반가워서 소리 질러 차를 세웠습니다.

 "아저씨 저 좀 태워줄 수 있나요? 아파서 잘 못 걸어요."

 "여긴 태울 수 없고요. 구조차량 올라오라고 전화드릴게요."

실망스러웠습니다.

 "남편이 차를 가져 올 수 있는지 허락받을려고 먼저 내려갔어요."

 "그럼 기다리세요. 무리하시지 말고."

그 차가 떠나자, 제 실수가 생각났습니다. 남편이 관리사무소에 도착하는 시간보다는 전화가 빠르다는 것을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남편이 제게 몇차례 전화를 했답니다. 그런데 제 전화기는 벨을 울리지 않았고 저는 소식없는 남편만 기다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려갔지요. 통증은 점점 더 심해지고... 저는 입고 있던 잠바를 얼굴에 감싸고 굴러볼까? 어떻게 될까? 궁리 중인데, '삐오삐오' 싸이렌 소리가 들립니다.

 '나 말고 더 높은 곳에 심각한 등산객이 발생해서 구조하러 가나보다.'

생각하며 차량을 비켜서는데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 차가 올라가서 구조한 후 내려올 때 나도 좀 태워달라고 해야겠다'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차가 속도를 늦추더니 남편목소리가 들립니다.

 "차 돌려서 내려올테니 거기 서 있어."

남편이 못오는가 보다고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오게 되면 남편이 우리차를 끌고 올 줄 알았기 때문에 무척 놀랐습니다. '삐오삐오'의 싸이렌을 울리는 차를 타게 될줄이야...

죄송하고 감사하고 창피하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왜 남편차가 안오고 구조차가 왔는지, 그리고 더 높은 곳에서 하산하던 공사차량을 보고 태워달라고 했던 일을 전하니, 산에서는 정해진 구조차만 구조자를 태울 수 있도록 정해져 있다고 설명해 줬습니다. 남편도 싸이렌소리 울리는 구조차를 동원시키려던 것이 아니었기에 무척 죄송했답니다.

 

 

찰과상으로 피가 나는 것도 아니고, 다리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퉁퉁 부은 부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보기에는 흠잡을 데 없이 멀쩡하기만 한데 저는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니 타인이 오해하고 보면, 제가 꾀병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 같아 참 민망하기 그지 없더군요.

더구나 남편차에 실려 온 것도 아니고, 비록 1톤트럭 형태긴 해도 응급싸이렌 소리를 울리는 국립공원의 공식적인 구조차량이었기에 몸둘바를 모르겠더군요.

주말과 겨울철이면 저와 비슷한 등산객이나, 병원으로 바로 실려가야 할 정도의 심각한 환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군요. 때론 헬리콥터가 동원되기도 한답니다.

만약에 남편이 직원들이 다 퇴근하고 난 후에 도착했더라면 더 민망한 일이 벌어질 뻔 했습니다.

남편차를 통과시켜 주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우리였기에, 혹시라도 사무실문에 적어놓은 긴급전화를 남편이 하게 되면 119구조대가 출동을 한다니 말입니다. 

응급조치로 파스를 무릎에 뿌려 주었습니다. 친절하신 그분들께 감사드리고 무리하면 안됨을 알면서도 산행을 감행한 저의 잘못을 반성하며 죄송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며칠간 물리치료를 받으려 병원엘 다녔습니다. 이제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뜻하지 않게 저는 생애 처음으로 구조차로 하산을 했습니다. 차가 다니는 등산로였기에 망정이지 일반적인 등산로였다면 저는 통증때문에 더 심하게 눈물범벅이 되어 어둑한 시간에 씩씩거리며 하산을 마쳤을 것을 상상하니 아찔하네요. 그리고 인공적이어서 운치가 덜하다고 느꼈던 도로같은 등산로 덕을 제가 톡톡히 보았네요.

 

본의 아니게 생애 처음으로 구조차로 하산을 했습니다. 제가 겪는 무릎통증을 이해한 남편은 더 이상 무리한 산행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저는 저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할 것입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남편에겐 우리부부 함께 등산한 기념을 뿌듯함으로, 제겐 싸이렌 울리는 구조차를 이용해서 하산한 일이 창피함으로 추억될 것입니다.

 

 


소백산 / 산

주소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산 86-1번지
전화
054-638-6196
설명
소백산맥의 어깨격인 영주 분지를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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