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기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딸, 객지생활 중에 가장 많이 생각났던 것이 아빠가 끓여준 된장찌개였다는 말에 울남편 바쁜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딸을 위해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저한테 배워서 가르친 저보다 더 맛있게 끓인다는 평가를 받은 후부터 우리집 된장찌개는 딸에 의해 자연스레 남편담당이 되었고, 이후 '아빠표 된장찌개'는 우리집에서는 귀한 음식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때나 먹고 싶다고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남편이 한가한 때라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딸은 된장찌개가 먹고 싶을 때면 아빠가 끓여주기를 바람으로써, 제 자존심은 쪼끔 상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덕분에 제가 편해졌지요.
남편은 된장찌개를 끓일 때, 나름 비율의 중요성을 따집니다. 저도 좀 따지긴 하지만요.
집된장에서의 부족한 맛을 보충하기 위해 남편이 고추장과의 배합비율에 무척 신경을 쓰면서 완성시키는 우리집 아빠표 된장찌개를 소개합니다.(훗날 울딸에게 도움이 되겠지요^^)
된장:고추장을 5;1의 비율로 맞춥니다. 이 배합이 참 중요하다고 남편이 몇번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물을 붓지 않은 상태에서 살짝 볶은 후(요것도 중요하다네요. 아닌게 아니라 요건 저랑 좀 달랐어요), 물을 조금 붓습니다.
짜글짜글 끓으면 물을 뚝배기에 반정도 채운 후, 멸치를 넣고 끓을 동안,
부재료를 준비합니다. 호박말린 것(요거 울집 부녀가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가을에 꼭 말려놓습니다.)은 물에 넣어 살짝 불려놓고, 청량고추 그리고 두부를 알맞은 크기로 썰어 놓습니다.(남편손이 노출되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썼습니다. 손모델료 청구하겠다고 엄포를 놔서리^^)
말린 호박 불린 것을 끓기 시작한 된장에 먼저 넣고, 조금 있다가 고추와 양파, 그리고 두부를 차례대로 넣고 끓입니다.
완성되자, 울딸은 아빠가 끓여준 된장찌개만으로 식사를 하겠노라며 다른 반찬은 차리지 말라며 거부했습니다. 다른 반찬이 차려지면 아무래도 한두개쯤 먹게 되고 그러면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는 둥... 뚱딴지같은 이론을 펼치며 한술 뜨더니
"음... 바로 이맛이야. 이맛이 내겐 그리움이었어. 아빠 고마워요."
밥 한공기를 순식간에 뚝딱 비운 딸, 뚝배기 바닥에 조금 남은 된장찌개가 아깝다며 밥을 보충
하더니 쓱쓱 비빈 후 뚝배기 바닥을 드러내며
"야~~ 이제 제대로 먹은 거 같다. 내가 이 맛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꿈에서까지 된장찌개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을라구..."
"아빠 엄마는 하나도 안그리웠고 된장찌개가 그리웠단 말이지^^"
"ㅎㅎㅎ 그렇게 되나. 그건 아니지. 된장찌개 하면 아빠고 아빠하면 된장찌개라서 같은 맥락이지 않나^^"
"아빠가 된장찌개라... ㅎㅎㅎ 그건 좀 그러네."
"ㅎㅎㅎ 아빠 실수. 그만큼 아빠가 끓인 된장찌개 맛이 좋다는 거얌."
"나중에 제대로 배워서 아빠한테 네가 끓여줘."
"예."
그럼 엄마는?"
"자주 통화하는데 뭘... 질투하는 거야?"
과식하며 너무나 맛있게 먹는 딸의 모습이 술이 아닌 된장찌개에 취한 듯해서 놀랍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그리움같은 고향의 맛이 울딸에게는 엄마가 아닌, 아빠표 된장찌개로 각인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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