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혼돈의교육

친척간 촌수호칭, 불편했던 적 없으셨나요?




연세로 보나 역할로 보나 조실부모한 남편과 서방님(시동생)에게는, 큰댁의 아주버님과 형님은 부모님 같으신 분입니다.
아주버님 내외분의 자녀와 비슷한 세대인 남편과 서방님인지라 큰조카의 자녀는 저희 자녀들과 비슷한 또래입니다. 그림을 그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호소하는 아이들 촌수표)


남편과 시동생이 낳은 자녀와 큰조카(아주버님 큰아들)가 낳은 자녀와는 오촌간이 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호칭을 사용하면서도 친하게 잘 지냈습니다. 비슷한 또래지만 오촌간에는 남자에게 아재, 여자에게는 아지매로 가르쳤지요. 그리하여 큰조카의 자녀들이 우리아들과 시동생 아들을 아재, 제 딸에는 아지매라고 불렀지요.
큰조카와 사촌간이 되는 우리딸만, 삼촌보다는 나이가 적으나 삼촌같은 큰조카를 오빠 혹은 오라버니라는 호칭을 무척 싫어하며 호칭을 사용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큰조카를 아예 피했지요.

이 아이들이 차례대로 사춘기를 거치는 몇년간, 명절때나 집안행사로 큰댁에서 만나도 반가워하기는 커녕 간단히 인사만 나눌뿐 서로 말수가 줄어들면서 어색함을 드러냈습니다. 눈치를 채고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누구하나 속시원하게 대답하는 아이는 없고 서로 미루면서 피하기만 했던 아이들이 금년 설날에는 스스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주도를 가르칠 때가 되었다고 느끼신 아주버님께서, 임무(?)를 끝내고 자리를 떠나시자 용기가 난 모양입니다. 먼저 큰조카가 낳은 큰딸(제 딸과 동갑으로 저를 할머니라 부릅니다. 저도 참 어색하게 들리지만 어른이니 감수해야죠^^)이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아지매(우리딸)와 저는 동갑인데, 작은 아재(동서네 작은아들)는 아지매한테는 누나라고 하고, 저한테는 이름을 막 부르는 게 맞다는 건 아는데... 너무 싫어요."
큰조카의 큰딸이 호소하자, 동서네 작은 아들이
 "OO야, 그라믄 내가 니한테 뭐라고 불렀으면 좋겠노?"
 "OO야 그 이름이 거슬려..."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울딸도 나섭니다.
 "OO아, 나는 어떤 기분인지 아니? 나랑 나이가 똑같은 네(큰조카네 큰딸)가 나보고 아지매래... 아지매... 아재는 뭐 좀 무게라도 있어 보이지만 결혼도 안한 나한테 아지매가 뭐야. 호칭때문에 내가 제일 억울해... 어떻게 좀 좋은 방법 없나?"

그동안 아이들 사이가 소원해진 이유가 촌수간의 호칭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특히 우리딸과 큰조카의 큰딸이 제일 불만이 많았습니다. 한창 예민했던 시기에 친구처럼 지내며 고민과 관심사를 털어놓으며 더 잘 지낼 수 있었는데, 어른 같은 분위기의 아지매로 불리는 것이 싫었던 우리딸은 딸대로, 큰조카의 큰딸도 어색하여 서로 피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큰조카의 큰딸에게 동생뻘되는 시동생의 작은아들이 반말로 이름을 불리는 것도 싫었는데, 아재라는 호칭으로 불러야 함도 몹시 싫어서 또 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양쪽으로 다 불편했던 큰조카의 큰딸은 불편한 자리를 피해 늘 혼자 방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고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바람에 듣고 있던 우리는 당황했습니다.
남자인 우리동서네 작은아들은 항렬상 손윗사람으로 큰조카의 딸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하대합니다. 비슷한 또래끼리 친구나 형제처럼 지냈으면 좋으련만... 촌수에 따른 호칭문제로 말미암아 서로 더 친해지는 데 방해가 되었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하였습니다.

아이들 유아시절부터 아주버님께서 정확한 호칭을 사용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우리부부와 동서부부는 아이들이 결혼한 후에 사용하기를 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으로 염려했던 일이었습니다. 
저의 친정아버지가 8남매의 막내라서 저는 우리 아버지보다도 연세가 더 많으신 분한테 아지매로 불린 처지라, 우리딸과 큰조카의 큰딸기분을 충분이 이해되었습니다.

이후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 새롭게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기준으로 사촌형님댁과 우리 아주버님까지,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 계신 자리에서는 기존대로 사용하고, 이 문제로 친숙해지는 데 지장을 느끼게 된 집안의 아이들끼리는 친숙한 호칭을 의논하여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여자인 울딸과 큰조카의 딸은 결혼하면 마주 대할 기회가 없을테지만, 정신만은 오촌간임을 잊지 말라는 당부를 하면서 마무리를 지으니 아이들의 표정이 환해집니다.

촌수간 호칭을 무시해도 안되겠지만, 청소년기 아이들에게는 친척간의 정을 쌓는 데 걸림돌이 됨을 짚어봤습니다. 여러분의 집안에서는 촌수에 따른 호칭으로 말미암아 우리 집안의 아이들과 비슷한 일을 겪고 있지는 않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