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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생각

홀로 계신 엄마가 더 걱정되는 친구엄마의 부고소식




엄마의 임종을 모르는 친구의 착잡하고 안타까운 심정

세번째 해외여행인 이번여행은 제 나이탓인지(?), 안보면 좋았을 것을 본 충격탓인지, 좀처럼 여독이 풀리지 않아 헤매고 있던 중, 뜻하지 않은 슬픈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구미에 살고 있는 친구의 친정엄마 부고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친구도 저도 여고때 만나 비록 떨어져 살고 있지만, 친하게 지내는 사이로 우리의 친정은 모두 대구입니다.

두어달전 제 친정엄마의 이사소식을 듣고도 제 때에 못가고 차일피일 미루다, 새해 달력을 걸면서 설날에 찾아뵈면 되겠다고 미루던 불효녀인 저는, 갑작스런 부고에 달려가 울엄마도 보고 친구엄마의 문상도 갔습니다.
친한 사이로 구성된 여고 동창생 모임의 친구들이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사는 관계로 자주 만날 수 없음을 늘 안타까워하는 처지였던지라, 이 기회에 다른 일 제쳐두고 달려온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슬픔 중에 감사와 즐거움이 되어 고인과 더불어 유족인 친구에게 미안했습니다.

친한 친구 6명 중에 친정아버지는 다 돌아가시고, 친정엄마가 4분 살아 계시는데 다들 홀로 지내셨습니다. 이중 가장 젊으신 친정엄마가 돌아가셔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남으신 3분의 친정엄마 중 한분은 연세도 가장 많으시기도 하시지만 거동이 불편해지고 치매기도 보여 요양원에 모셨던 친구가, 착잡하고 무거운 심기를 솔직하게 드러내 우리네 마음을 더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말하면 내가 나쁜 딸이지만... 사실은 말이야. 요양원에 계신 우리 친정엄마를 보면 산송장을 보고 있는 거 같아 마음이 참 무거워... 우리 친구들 엄마 중에 울엄마가 연세도 가장 많고 연약해서 먼저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아마 울엄마가 돌아가시면 주변에선 호상이라고도 할거야... OO아~ 자식된 도리로 엄마의 임종을 보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어쩌면 엄마로썬... 고통을 벗고 자식에게 짐이 안되려고 일찍 떠났음을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어... OO아 힘내."
타인들이 간혹 유족들을 위로하는 차원으로 호상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자식에겐 호상이 절대 될수 없을 것입니다. 노년의 친정엄마가 다들 홀로 지내시기에 친정엄마의 죽음을 대비하는 마음자세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의 끝자락도 함께 걱정된 착잡한 시간이었습니다.
울엄마와 또 한분의 친구 친정엄마는 지금으로썬 건강하시고 활동적이시긴 하나, 이번에 돌아가신 친구엄마의 안타까운 부고소식을 접하고 보니, 그동안 동생이 가까이에 살고 있음에 안심하고 자주 전화하지 않았던 저로써는 깊은 반성을 하였습니다.

돌아가신 친구의 친정엄마는 최근에 편찮으셔서, 친구가 살고 있는 고장의 병원으로 모셔져 한달간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퇴원하신 친정엄마를 모시고 며칠에 한번씩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친구는 무척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결혼한 남동생이 있었지만 분가시킨 엄마는 따로 사는 것을 선호해 홀로 지내셨습니다.(저의 친정엄마도, 또 다른 친구의 친정엄마도 아들과 사는 것을 불편하게 여겨 홀로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결혼한 아들이 알아서 부모님을 모셨지만, 요즘은 건강하신 경우라면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것을 비록 연로하신 부모님이라고 해도 좋아하지 않음으로 스스로 따로 살기를 원하지요.(저 또한 친정엄마가 건강하실 때까지는 홀로 지내는 것이 편하다고 여김-오빠내외와 함께 살면 오빠내외도 엄마도 서로 불편할 것이 싫음)

그런데 친구 엄마의 갑작스런 부고소식이 너무 안타까웠음은, 친구엄마의 임종시간을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것을 발견하기 이틀 전쯤에, 딸인 제 친구가 친정집에 계신 친정엄마와 통화를 했답니다. 그리고 또 다시 통화를 시도했는데 엄마가 전화를 안받은 것이 걱정되어, 친정집 근처에 살고 있는 남동생에게 알려 엄마집에 가 보라고 했답니다. 남동생이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이미 임종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제 친정엄마가 이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구... 슬프고 애달프긴 해도 OO이 친정엄마는 죽을 복을 타고 났네... 나도 잠자다 죽었으면 좋겠구나..."
하고 부러워하셨지만, 친구를 만나 정확하게 들은 이야기로는 발견당시 친구의 친정엄마는 드시려다 잡수지 못한 약이 침대위에 널부러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심장병으로 속이 답답한 줄 모르고, 더부룩하고 답답한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위장약을 드시려고 한 것 같다는 추측을 하는 친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우리는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자식의 한맺힌 죄송스런 마음이 헤아려져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제 친정엄마는 죽음의 복으로 잠자다 죽는 것이라고 하지만, 자식으로썬 이 또한 좋은 이별은 아닌 듯 합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돌아가셔도 임종은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하고 돌아가시는 것이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는 엄마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서러워하는 중에, 살아계신 친정엄마가 계신 친구와 저는 제각각 친정엄마의 건강과 더불어 죽음에 대한 염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소풍, 혹은 여행을 마치고 어느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그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돌아가야 할 그 때를 알지 못하기에 삶이 더 안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혹은,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숨을 거두신다면... 쓸쓸하게 떠난 자를 생각하는 남은 자의 아픔과 슬픔이 더 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연로하시지만 건강하시니 혼자가 편하다시는 친정엄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일찍 시부모님을 여읜 울남편은 알지 못하는 저만의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