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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초등생 일제고사에 감춰진 진실은 뭘까?


7월 13일과 14일, 이틀간에 걸쳐 일제고사를 마친 초등생에게 물었습니다.
 "시험 어땠어?"
 "생각보다 너무 쉬웠어요."
 "쉬웠다니 다행이야."
 "샘, 시험이 쉬우니까 학교에 꼭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엥? 속은 기분이 들다니...?"
 "학교에서 일제고사 준비시키면서 모의고사 평가식으로 보던 시험은 어려웠거든요. 그리고 어렵게 나온다고 선생님도 강조하셨고... 그런데 막상 일제고사가 쉬우니까 괜히 긴장하고 겁먹었던 게 억울한 거 있죠. 학교에서 우리에게 겁을 무척 줬거든요."
 "그랬니^^ 하지만 그건 아닐거야. 꾸준히 반복해서 대비하다보니까 쉽게 느껴졌을거야. 너 그동안 열심히 했잖아. 아무튼 쉬웠다니 결과는 좋게 나오겠네^^"

다른 학교 아이한테도 물어보았습니다. 대답은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쉬웠다고...
 "니들 나한테는 쉬웠다고 해놓고선, 결과가 안좋으면 어쩔려고 쉬웠다고 그러니?"
 "정말 쉬웠다니까요."
 "4,5학년것도 나왔든?"
 "예."
 "니 주변 친구들 반응은 어땠어?"
 "대부분 쉽다고 했어요."
 "쉽게 느꼈을 뿐이지 그렇다고 다들 올백은 아닐거잖아.^^'
 "ㅎㅎ 그건 그래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를 위해 초등학교에서는 시험을 치르는 6학년을 대상으로 1교시를 늘려 7교시 공부로, 학교선생님께서 열심히 준비시킨 보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쉽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어렵게 나올 것을 대비하여 선생님도 아이들도 무척 긴장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결과는 9월에 알려주나 봅니다. 첫날인 13일, 국.영.수과목이 치르졌고, 14일엔 사.과를 치룬 후 설문지 조사(과외활동에 관한 내용)로 마무리를 지었다고 합니다.  

시험이 쉬웠다?
열심히 공부한 결과일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동안 보였던 대도시와 지방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쩌면 일부러 난이도를 하향조정하여 점수차를 최소화하려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하향조정한 뜻이 숨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도시와 지방간의 격차가 줄어든 점을 부각시키며 혹시라도 그동안의 성과(?)로 포장하여, 사교육의 격차가 아님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지는 않을까...란 ...
뜻은 좋습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성적과 비례하지 않으니 안심해도 좋다. 대한민국 학생들의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 서민층 혹은 가난은 되물림 되지 않는다.'...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환경에 대한 소외감으로 낙망한 학부모에게 희소식이 될수 있는 희망의 처방전을 내놓으려는 가식적 포장은 아니기를 말입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치른 금년의 일제고사 난이도는 어땠는지 궁금하군요...
격차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슬픈 현실입니다.
서울에 소위 강남권 부유층에서는 초등학교 성적은 중요시 여기지 않습니다. 초등 6학년이면 이미 그들은 영어와 수학과목은 중학과정, 더 빨리 흡수하는 아이는 고등과정을 선행하기 때문에 일제고사에 가려졌던 실력차는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더 뚜렷하게 나타나다가 최종적으로 수능에서 빛을 발하게 되는 현실임이 씁쓸합니다.

재작년부터 시행한 일제고사 결과를 놓고 지역별 격차에 대한 우려를 내놓았던 지난해를 거치며, 각 초등학교마다 비상이 걸리다시피 대부분의 학교가 꼴찌라는 명목을 앞세워 해당학년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줄것을 강조하며 없던 수업시간을 만드는 열의를 보였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별 부담없이 봤던 시험의 결과로 말미암아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됨을 염려한 학교의 처방으로, 금년 6학년 아이들의 푸념이 저를 자극하므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노라니 어느새 반대입장이 되고 있는 저를 봅니다.
 '현재의 대한 민국 현실에 이런 시험이 왜 필요할까?'
따져보다가 도움되는 부분도 있음을 상기해 봅니다. 이미 배웠지만 잊고 있던 4,5학년과정을 복습하게 한점은 좋다는 것을... 그러나 이 시험이 의도한 대로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그대로 남습니다.(학습부진아에 대한 글은 다음에 따로 포스팅하겠습니다.)
저는 시험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어떤식으로던 평가는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태가 고등학생들이 내신관리 따로, 수능고사 따로 준비하는 모순을 초등생들도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이 달갑지 않았으며, 정부에서 지역간 격차의 심각성을 알았다면 그에 따른 처방은 했는지... 달라진 것도 없이, 달라질 것도 아니면서, 왜 이런 시험을 치루는 것인지...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트집을 잡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네요.

일제고사를 치른 초등생이 쉬웠다는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제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는데... 설마 제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지는 않을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