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를 마무리지으며 학교 기숙사를 비워야하는 딸이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안부를 물은 것은 뜻밖에도 제 블로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엄마, 뭔일 있었어?"
"아니."
"그런데 왜 요즘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아?"
"가끔 올렸는데..."
"매일 올려야지 왜 가끔 올렸어? 엄마생각날 때마다 블로그에 찾아가보면 새로운 글이 없을 때가 더 많았던 거 같아."
"ㅎㅎㅎ 너 엄마블로그에 글 올라오나 안올라오나 감시하고 있었어?"
"내내 열심이던 엄마가 글을 안올리니 이상하게 생각할 수 밖에..."
"아~ 최근에 눈이 너무 피로해서 일부러 피했어^^ 그리고 너 없으니 자극이 되지 않아 그런지 게을러지기도 했고..."
"내가 없으니 엄마가 더 열심히 블로그관리 할 줄 알았는데..."
"ㅎㅎㅎ"
딸이 의아하게 여길 정도로 블로그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홀한 것처럼 매일 블로그에 머물지 못했던 이유는, 안구건조증으로 말미암아 눈의 피로를 너무 쉬이 느끼게 되면서부터 자제하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마치면 곧바로 컴앞에 머물던 제가 요즘에는 소파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울딸이 저의 이런 모습을 무척 낯설어하네요.
"엄마, 블로그 안하고 왜 가만히 있어?"
"좀 쉬느라고..."
"엄마가 쉰다는 게 너무 낯설게 느껴져. 늘 쉴새없이 뭔가에 열중해 있는 모습만 봐서 그런지... 최근 엄마모습은 울엄마답지가 않아."
"엄마답다는게 어떤건데? 고정관념을 버려. 이제 엄마도 늙나봐.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도 괜찮네.^^"
"엄마가 늙다니... 말도 안돼. 아픈사람처럼 그러지마. 나 적응하기 힘들어."
"딸~ 엄마가 좀 쉬겠다는데 그렇게 낯설어?"
"응, 엄마는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사람처럼 항상 씩씩하고 바쁘게 살잖아. 휴식을 즐기는 엄마?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엄마? 나 아직까지 한번도 상상을 안해봐서 그런지 받아들이기가 힘들것 같아."
"네 생각대로 엄마도 항상 씩씩하고 젊은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니. 몸이 알아서 쉬고 싶다는 데..."
"점점... 엄마 제발 그러지마. 축 늘어진 아줌마같은 인상 풍기는 거 싫단 말이야."
"어쩌라구?"
"나는 항상 엄마가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좋단말이야."
"딸~ 가끔은 모든 열심에서 손놓고 쉬어주는 것도 좋다는 것을 알아야해. 그리고 엄마도 이제 좀 쉬어야지^^"
"늙은 아줌마처럼 정말 왜그래?"
"사람은 누구나 늙어. 뭐 엄마는 평생 안늙을 줄 아나벼?"
"세상 사람이 다 늙어도 엄마는 안 늙을 것 같은데..^^ 엄마또래보다 엄마는 항상 젊고 톡톡튀는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젊게 살아야 어울린단 말이야."
"ㅎㅎㅎ 고건 너의 착각이고, 너와 엄마의 희망사항일 뿐이지. 엄마라고 맨날 철딱서니없이 방방 뛰면서 살순 없지. 엄마가 멍하게 앉아서 쉬는 것도 엄마의 또다른 모습이거니 하고 받아들여.ㅎㅎ"
"엄마의 그런 태도 정말 엄마랑 안어울려..."
"......"
저의 휴식이 울딸 눈에는 엄청 낯설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나이든 아줌마처럼 말을 하는 저와의 대화에서는 불만스럽기까지 한가 봅니다.
울딸이 생각하는 엄마상은, 차분하고 포근한 것과는 거리가 머언 지금까지 제가 살면서 심어준 이미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철없어뵈며 공같은 엄마모습이랍니다.ㅎㅎㅎ 아픈사람처럼? 혹은 한가한 사람처럼? 축 늘어진 모습이 싫다고 노골적으로 밝히는 딸의 성화를 생각하여 인공눈물 넣은 눈을 비비며 모처럼 블로그에 기웃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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