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탓일까?
피곤함 탓일까?
규칙적이던 생리현상이 심하게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병원하고는 거리가 멀던 내가 병원을 자주 찾게 된다. 금년초에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현상으로, 한달내내 조금씩 비추는 생리로 인해 병원을 방문하며
'혹시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불안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진찰결과는 이상무로 밝혀졌다. 다만 나이가 나이니만큼 폐경초기 증세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성 조언을 듣고서 마음에 준비를 했더니, 다음달부터는 거짓말처럼 정상적으로 회복되었고 나는 이상증세를 겪은 것조차 잊고 지냈다.
정상으로 돌아왔기에 무심했던 내몸에 또다시 뜻모를 증세로 불안감을 던졌던 얼마전엔, 부인과가 아닌 내과를 찾아야만했다. 밥을 먹어도, 밥을 먹지 않은 빈속에도... 시도때도없이 명치끝이 콕콕 찔리는 듯한 통증과 더부룩한 증상이 교차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아지겠지...'
하고 증세가 사라지길 바랐건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가량 지속되니까 10여년전에 위궤양으로 약물치료를 받은 경험이 떠올라 덜컥 겁이 났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치부해버리고 열정적으로 살면 그만일 것 같지만, 몸을 통해 들이대는 이상증세는, 나이는 절대로 숫자에 불과하지 않음을 깨닫게라도 할 듯이 증세를 악화시키며 불길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게 만들었고, 정말 싫었지만 아프니까 내시경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진단결과가 황당했다.
"약간 부어 있는 것 같긴 하나... 이 정도로는 통증을 거의 못느끼실텐데요... 특별히 좋지 않은 곳도 없어 보이고... 최근에 예민하게 마음쓴 일이 있으신가요... 약처방은 해 드릴테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십시오..."
촬영된 위와 식도쪽 사진을 보신 의사선생님은 크게 아플만한 증세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과 함께 약처방은 해주셨는데 마지못해 하시는 듯한 느낌을 풍겼다.
'나는 일주일 내내 통증으로 힘들었는데...'
참아보다가 병원엘 갔지만, 별거 아니라는 의사선생님 앞에서 나는 엄살을 피운 것 같아 좀 멋적었다.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엘 갔다. 약을 조제해 주신 약사선생님이 주의사항을 말씀하시는데, 이상한 점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식후 30분인데 비해, 나는 반대로 식전 30분이란다. 꼭 지켜서 먹으라고 당부하셨다.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식후가 아니고 식전 30분이라구요?"
"예. 이 약은 식전입니다. 위운동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소화를 돕기 위해 위운동을 시켜주는 약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울할머니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조금씩 소식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니 내가 벌써... 나이듦이 이렇게도 나타나는구나 ㅠ.ㅠ'
남편이 마음쓸까봐서 그동안 아팠던 이야기와 참다못해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퇴근한 남편에게 전하며 나이들어가는 여인네의 변화가 두렵다고 했더니, 울남편 曰
"당신 아직도 한창인 것 같은데 왜그래^^"
"뭔 소리야. 난 금년들어 이상증세때문에 병원도 골고루 과 바꿔가면서 벌써 두군데나 갔다왔는데..."
"내가 보기엔 아니야. 당신 한창이야. 진짜 모르겠어?^^"
남편이 피시시 웃는다.
"왜 자꾸 웃어?"
"정말 모르겠어?"
"......"
"진작에 나한테 그 증세에 대해서 말하지. 그럼 병원에도 안가도 되고 불길한 상상도 안해도 됐을텐데..."
"당신이 뭐 알아?"
"암 알지. 당신은 당신 몸인데도 왜 그렇게 몰라^^ 아마 당신 곧 생리있을거야. 내가 보기엔 그 증세 같은데... 생리있기 전에 가끔 희한한 증세 나타나곤 했잖아. 안그래? 잘 생각해봐. 의사선생님이 건강에 별이상도 없다고 했으니 내추측이 맞을거야.^^"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예민하게 군적은 없지만 아주 드물게 가끔 이상한 증세를 경험한 후에 생리가 이어짐을 당사자인 나는 잊고 있었던 일을 남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 그럴수도 있겠다. 예전에도 한번 희한한 증세때문에 힘들어하긴 했다^^ 근데 나는 다 잊고 있었는데 당신은 그걸 기억해?"
"당연하지. 당신은 내꺼니까.ㅎㅎㅎ"
병원과 약국에 들인 비용이 아깝다고 여기게 된 이유는 이틀 후 나타났다. 병원의 처방대로 열흘치 약을 지었건만 한봉지만 먹었을 뿐인데... 남편이 추측한 대로 나는 마술에 걸렸고, 불길하게 여기고 병원을 찾았던 그 증세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던 것이다.
매달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아주 가끔 다르게 나타나는 이상증세로 말미암아 당사자인 나는 큰병인 줄로 착각하며 불안해한 경험,
남편말대로 다음부턴 속으로 혼자 끙끙 앓으며 고민할 것이 아니라 남편한테 바로 털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지. 나는 까맣게 잊고 미처 깨닫지 못하는 증세를 남편은 어찌 그리 잘 기억하고 있는지 참 신기하다. 정말 내몸이 남편몸인것처럼 기억이 된단 말인가...'
관심과 무관심에 대해 남편이 늘상 하는 표현처럼, 남편이 나를 생각하는 관심의 농도가 더 진하기 때문인가? 내가 둔하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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