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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재수고민하던 딸, 결국 휴학계 내다


 "엄마~, 딸."
 "그래, 우리딸. 잘 지내고 있지?'
 "으 엄마, 엄마일 끝났어?'
 "그래 끝났어. 왜? 이야기할 거 있니?"
 "좀 심각한 이야기하려고 하니깐 엄마 긴장 좀 하세요. 놀라지 말고"
 "뭔데 뜸들이고 그래. 얼른 해봐."
 "엄마~~"
 "왜 어디 아프니?"
 "그게 아니고... 나 재수할까 하는데..."
힘이 스르르 빠져나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화가 났다. 언젠가는 딸에게서 이런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되었던 일이 대학생활 한달도 채 되기 전에 듣게 되다니...
 "내가 그랬잖아. 등록하기 전에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우짠지 미련이 남는 거 같아서 농담처럼 말했지만 엄마가 물었지. 재수할 생각은 없냐고... 만나서 이야기하자. 이번 주말에 집에 와. 그리고 그동안 너도 더 생각 좀 해보고."
 "......"
3월말쯤에 기숙사생활하는 딸에게서 전화로 나눈 대화입니다.

재수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딸의 이야기를 들은 그날밤, 저는 잠을 제대로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진학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자고 몇번이고 되물었던 일이 생각나면서 배신감마저 들었습니다. 추가합격소식을 기다렸다가 딸이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면서 잘 할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던 모습이 얄밉게 투영되었습니다.
우리때와는 달리 대학교도 필수가 되어버린 요즘, 대학교는 취업하기 위한 조건? 아니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대학교가 존재하는 인상을 풍깁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6년이란 시간을 오직 대입을 위해 매달리다가 결과적으로는 취업잘되는 학과를 선택하게 되고, 또한 취업을 위해서 공부하는 기관이 되고만 현실에 철저하게 동승한 딸의 선택이었기에 어이가 없기도 했고, 한편 재수결정은 잘했다고도 해주고도 싶은...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딸이 재수를 고민하게 된 이유
ㅣ. 미련남긴 수능점수
수능대박을 꿈꾸었지만 울딸에게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보던 모의고사 점수보다도 낮은 뜻밖의 점수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재수할까? 진학할까?
저는 차라리 재수를 했으면 하고 바랐지만, 울딸은 지긋지긋한 그 시간을 외면하고파하는 듯해서 어떤 선택을 하던지 관망만 했던 것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 같아 제가 강하게 어필하지 않았던 점이 후회스러웠습니다.
ㅣ.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학과선택
딸은 자신의 적성과는 전혀 맞지 않는 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취업잘되는 학과를 선호하며 아주 현실적인 것에 너무 치중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서 제가 말렸지만, 울딸은 대학졸업후 취업이 걱정된다면서 현실성만 따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부해보니 자신과 맞지않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율적으로 키워서 그런지 한 고집하는 딸에게 밀린 저의 잘못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ㅣ. 교육비가 너무 비싼 사립대학교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생이 되면 그나마 덜 아깝겠지만 울딸은 고액의 등록금이 자꾸만 신경쓰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비실용적인 비용지출도 못마땅하다면서 국립대로 가지못한 자신에 대한 반성과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부쩍 들었다고 합니다.
ㅣ. 수준에 맞지 않는 수업시간
추합으로 진학한 학교였기 때문에 같은과 아이들 수준이 자신보다 높으리라 짐작했는데 막상 수업(1학년 교양과목)에 임해보니 그게 아닌 점도 실망하게 된 이유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수업에 열중하는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아주 소수의 아이가 재수아니면 반수를 꿈꾸며 수능준비와 학교수업을 병행하고 있는 아이였다는 점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ㅣ. 객지에서의 외로움?
이건 정말 놀랄 일입니다. 집을 떠나 객지생활하는 오빠의 자유로움을 동경했던 딸이었는데, 막상 집을 떠나 보니 자유를 누리기보다는 외로움이 더 자주 찾아들었나 봅니다. 괜스레 집떠나 고생이라면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의 학교로 진학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는 마음도 살짝 비추는 것입니다.

명문대를 꿈꿀 수준은 못되지만 이왕에 재수를 할려고 마음 먹었으면, 당장 보따리 싸서 재수생 기숙학원에 갔으면 좋겠다는 강력한 저의 주장과는 달리, 양다리를 걸치겠다는 딸의 의지와 또 부딪히는 바람에 아까운 한학기 시간이 흘렀습니다.
2학기 등록을 앞두고 딸은 휴학계를 내고 반수(?)를 선택했습니다. 한학기의 시간낭비가 아깝다고 여겼지만, 딸은 장학생을 꿈꾸며 자신과의 갈등에서 벗어나고자 했나본데, 전공 한 과목에서 뜻하지 않은 점수로 말미암아 갈등에 종지부를 찍으며, 등록을 포기하고 반수를 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달에 휴학계를 내고 귀가한 딸이 이 같은 뜻을 전했고, 저는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갈등이 심했을 딸의 마음이 안타까웠음은, 집안사정을 감안하여 사립대는 절대로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딸의 각오가 제 귓전에 아주 강하게 울렸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