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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편애심한 시어머니께 반기든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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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집안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를 보노라면 막장내용에 콩가루집안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문제를 하나씩 떼어놓고 따져보면 일반가정에서도 일어날 법한 일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먹는 이유는, 많은 문제를 한 가정에 집합시켜놓았기 때문입니다.
현찰과 연희의 예매모호했던 불륜관계나, 시어머니의 막무가내 장남챙기기로 인한 둘째의 설움이라던가, 동서간의 갈등과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구박하는 시어머니의 심술 등... 살아가는 우리네 주변을 보면 이런 한두가지 문제를 끌어안고, 가족이란 굴레속에서 옥신각신하면서 사는 가정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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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삼형제' 에서 지난주에는 시어머니의 차남무시가 너무 심하게 드러났습니다. 엄마에게 이해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남편을 불쌍히 여긴 우미가 그동안의 설움을 털어놓으며 분가하기에 이릅니다. 이 장면을 보노라니 비슷한 처지인 우리 큰댁의 두 조카가 떠올랐습니다.

전과자여사는 왜 장남만 위하는 것처럼 보일까요?

엄마는 잘사는 자식보다는, 아무래도 못사는 자식을 더 가엾게 여기며 관심을 갖게 됩니다. 더구나 장남이 동생보다 못사는 건강을 큰아들로 둔 전과자여사 눈에는, 삼형제 중 제일 안쓰럽게 여겨지는 아들이 건강일 것입니다.
장남으로써 제 몫을 못하고 있기에 동생에게 혹시나 치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는 전과자여사의 걱정은 우리 어머니세대에서는 흔하게 볼수 있는 캐릭터며, 현찰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을 잘하고 있는 아들을 든든하고 기특하게 여기면서도, 배고프다고 우는 자식에게 먼저 관심을 가지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게 되는 것도 우리엄마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건강과 현찰이 순서가 바뀌어 태어났더라면 더 좋았을 형제입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는 비유를 사용하지만, 사실은 더 아프게 느껴지는 손가락이 있습니다. 이런 심정을 전과자여사는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바람에 현찰이 서러움에 북받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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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의 복수로 말미암아 현찰이 찜질방과 주유소가 박사장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절망감에 빠진 현찰이 죽고싶다는 것을 우미가 겨우 말린 후, 재테크명목으로 부은 곗돈으로 새사업을 시작하자며 희망을 갖지만, 이 돈마저 형의 사업자금이 되었음에 황당해합니다.
현찰과 상의도 없이 곗돈을 큰아들에게 넘겨준 전과자여사는 미안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역정을 냅니다. 그리고 말끝마다
 '돈가지고 우세부리지 말아라 형제좋다는 게 뭐냐 어려울 때 서로 도와야지...'
하면서 건강을 위해서라면 발벗고 나서는 엄마에게는, 둘째아들 현찰에 대한 연민이나 걱정은 안중에도 없는 듯 보입니다. 아니 현찰의 아내 우미가 머슴살이라고 표현할 만큼 전과자여사 눈에는 현찰이 집안의 봉처럼 비췄습니다.
사업체를 빼앗기게 된 사연을 드러내지 못하고 끙끙앓고 있는 현찰을 대신해서 우미가 그 사실을 알리며, 재기할 수 있는 사업자금으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게 해주십사고 부탁했다가 엄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아들내외의 어려움을 이해한 아버지(박인환)는 생각해보자 했으나 전과자여사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장남에게 물려줘야함을 드러내므로 현찰부부를 더 서운하게 만들며 감정의 골이 더 깊게 패이고 말았습니다. 결국 우미의 반란으로 좋지 않은 분위기로 분가를 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장남이 동생보다 못살면, 동생이 장남보다 못사는 것보다 엄마의 마음은 더 아픈가 봅니다. 우리큰댁의 두조카가 '수상한 삼형제'의 건강과 현찰형제처럼 성격도 현재의 처지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울형님이 그동안 두 아들을 대한 태도를 보면, 큰조카가 사업자금이 필요하다고 할 때는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도와줬습니다만 작은조카가 간청했을 때는 이런저런 안좋은 여건을 내세우며 해주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큰조카 사업은 실패했고, 직장생활로 알뜰하게 살고 있는 작은조카는 형을 대신해서 집안일에 일조를 하고 있지만, 형님은 큰조카 걱정이 앞선 나머지 남의 눈에는 전과자여사처럼 편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차남이 잘한다고 해도 칭찬하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기시며 오히려 큰아들이 기죽을까봐 더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작은조카 내외가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살았던 모습도 현찰과 우미와 같으며, 결국에는 차남의 설움을 지켜보던 작은질부가 우미처럼 반기들고 나서서 분가를 적극적으로 원했고, 이 과정에서 울형님과 질부간에 감정의 기싸움이 꽤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재기하지 못한 큰조카로 인해 울형님이 예민해지면 그 푸념과 넋두리가 작은조카 내외에게 흘러가기 때문에 작은조카 내외의 마음이 불편함을 겪고 있어 보기가 안쓰럽습니다.
우리의 어머니세대는, 큰아들이 작은아들보다 못살면 이성을 잃게 되는 잘못된 장치가 발동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