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어 객지로 떠난 아들이 객지에서는 처음 맞는 추석이었던 작년, 굳이 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명절이니까 집에 올 것이라고 믿었다가 뜻밖에도 끝내 나타나지
않은 아들의 행동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우리 가족들...
금년초에 맞이한 설날을 앞두고는 조심스럽게 내내 마음졸였는데 아주 태연하게 등장한
아들보고 여동생인 딸도, 나도, 그리고 더 말이 없는 아빠인 남편조차도 별다른 말도 못하고
그저 집에 와 준것만해도 고마워서 슬그머니 눈치까지 보게 되었던 심정들...
여름과 겨울에 방학이 두번 있지만 고교동창들과의 만남이라던가 혹은 자신에게 필요한
볼일이 있기 전에는 여간해서 집에 오는 일이 없음을 뒤늦께나마 감지하게 된 아들의 뜻.
그리하여 이젠 아들을 불러야 할 일이 생기면 아들의 의견을 존중(눈치보는 수준이죠ㅜ.ㅜ)
하며 뜻을 타진하게 되는 가운데, 딸이 그저께 하교길에서 오빠에게 문자메세지로
「오빠, 이번 추석때 꼭 와. 보고싶어.」
했더니
「헐~ 차비가 없어서」
「엄마한테 미리 차비주라고 할께. 꼭 와! 될수 있으면 빨리 와.」
「왜?」
「보고싶으니까. 그리고 추석빔도 해야지^^」
했답니다. 그리곤 저보고 빨리 오빠통장으로 차비를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모를(?)
오빠의 돌발적인 행동을 고려한 딸의 부탁이 이뻐서 당연히 보낸 이 어미의 심정은 ㅠ.ㅠ
우짭니까? 상전처럼 된 아들이나마 보고싶은 마음인지라...
경험있는 인생선배들이 그러더군요.
아들은 떠나가는 사랑이라고.. 그리고 엄마쪽에서 버려야 할 사랑이기도 하다고.
설마?
그랬는데 정말이었습니다.
비록 학교때문에 객지로 떠난 것이긴 하지만 언제 다시 돌아올 기회가 있겠느냐.
대학생활하다가 군대가고 그러다 복학한 후 졸업하면 취직하고 이어서 결혼할 것이고...
다시는 엄마품에 돌아올 순서가 없으니 미리부터 품안에서 떠나보내는 연습기간이라고
여기며 안온다고 서운해하지 말고, 오면 무조건 고마워하고 잘해주라는 위로섞인 조언이
떠올라 씁쓸하지만 받아들이며 울고 싶은 이심정... 또 하나 덧붙이기를,
가정교육 제대로 시키며 잘 키웠노라고 착각하다간 큰코다치게 될터이니 무조건 아들에겐
잘해야한다는 말에 코웃음쳤었는데... 그야말로 세월따라 환경따라 조용한 아들의 태도는
이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저혼자만의 사랑으로 끙끙대느라 아파하면서도
병원갔다 오는 길에 시장엘 들러서 통도라지와 장조림거리, 그밖에 이런저런 것들을 구입해
와서 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보던 딸,
"오빠 온다니까 울엄마 오빠가 좋아하는 반찬만 만들고 계시네^^"
"그게 아냐. 너도 좋아하는 거잖아."
"전 괜찮아요. 엄마가 오빠기다리며 맛있는 거 만드니까 보기 좋은걸요."
"아니라니까."
"저도 객지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제가 좋아하는 걸루 만들어 주시겠지요^^"
이런 대화를 듣던 남편 曰
"그넘의 자식이 뭔지... 남편위해서 만드는 것은 없고 죄다 아들때문에 먹을 수 있는거네.
뭐 그래도 나야 자식덕분에 이런 거 모처럼 먹게 되니 고맙긴 하네. 허허허"
"다들 왜그래? 아니라니까. 그동안 바빠서 할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거 이제 연휴라서
시간나니까 해보는 것일 뿐이야."
"알았어. 알았다니까. 암튼 잘 먹을께."
"......"
들켜버린 마음이 쑥쓰러워서 제목소리가 커졌지만 남편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몇가지의 반찬이 완성되어 갈 무렵인 어제 저녁에 아들이 현관에 들어섰습니다.
미소가 이쁜 녀석의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저의 푸념은 사라지고
그래도 제 아들이 멋져 보이며 좋은 걸 어떡합니까.ㅋㅋㅋ
추석빔해주었습니다. 이건 딸이 오빠를 집에 오도록 유도한 작전일 수도 있었겠지만
외모에 멋부리는 녀석도 아니기에 추석빔때문에 온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챙겨주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절약! 절약! 하느라고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빔이라고 따로
챙겨준 적이 없었기에 이번 학기 끝나면 군대갈 녀석에게 아주 작은 추억이라도 될려나
해서 마련해주고 제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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