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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선생님과 면담후, 딸이 내게 전한 충격소감

12월에 수능점수표를 받아 든 딸은 며칠간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딸의 심정이 전해졌기에 저 또한 말없이 그저 눈치만(?) 보고 있었지요.
며칠후, 갑자기 딸은
 "아빠한테도... 엄마한테도... 정말 미안해요."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고, 하염없이 울더군요. 한참 후
 "그만 울어. 네가 그러지 않아도 다 알고 있으니까."
 "아빠한테는 더 죄송해요."
 "내가 뭐 어쨌게?"
 "새벽에 일나가시는 아빠한테 보답을 못해서..."
울딸 감정에 북받치면 감당하기 힘듭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런 태도를 보이니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또 왜그래. 애답지 않게. 그만해"
저는 딸의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냉정해져야 합니다. 안그러면 함께 울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그만하자."
울먹이며 하는 말이
 "최악이예요. 평소에 보던 모의고사보다 더 못나왔으니..."
 "알았어. 감정정리하고 네가 원하는 학과로 갈만한 학교는 있는지 알아봐."
 "......"
 "우리딸 운은 천운이라고 친정엄마가 늘 그랬는데... 왜 그렇게 됐지? 하나님께서 따로 예정한 길이 있나 보다. 그러니까 만족할 수 없게 만들었겠지.^^"
 "제 기도대로 되지 않아 실망했어요."
 "그래도 갈만한 곳은 있을테니까 너무 감정잡고 그러지마. 옆에서 보는 사람도 부담스러워."

이제 대학원서가 마감되었습니다.
딸이 심사숙고하여 선택한 대학교에 꼭 합격하기를 간절하게 빕니다.
탁월한 두뇌도 아니고, 그렇다고 코피터지게 열성적인 노력파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던 딸의 수능점수는 많은 이들의 수능대박기원(많은 블로거분께 죄송)에도 불구하고, 평소 실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바람에, 수시에서 낙방의 쓴맛과 함께 실망과 절망감을 맛봐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어디로 가야할지 진학을 앞두고 고민이 무척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동안 지원하고자 꿈꾸던 학과는 어느새 무척 세져 더 충격적이었으니 한숨소리만 들렸지요.
 "그러지 말고 다른 학과로 진학하면 안되니? 뭐 꼭 그 학과로 갈려고 하니 힘들텐데... 엄만 네 적성하고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3년동안 단 한번도 다른 학과는 생각도 안해봐서 갈만한 곳을 고를 수가 없어요."
 "폭넓게 생각해봐. 다양한 학과가 얼마나 많은데 갈 곳이 없다는 거야."
무척 혼란을 겪었습니다. 울아들처럼 뭐가 좋아서 간다~! 라는 신념이 점수로 말미암아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몇점차이로 서울에 있는 명문대를 못가서 억울한 성적도 아니고, 지방의 적당한 대학에 진학해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무척이나 실망스러운가 봅니다.

진학상담을 하시던 선생님께서 울딸의 좁은 시야를 저처럼 답답하게 여기셨나 봅니다. 며칠을 선생님과 옥신각신한 눈치를 보이더니 급기야
 "엄마, 선생님께서 엄마 모시고 오래요."
 "엄마는 언제나 네 의사를 존중하잖아. 그러니 네가 알아서 가고싶은 과 써서 내면 돼."
 "그렇게 말씀드렸는데도 모시고 오래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네가 잘 따르지 않는 모양이구나."
 "좀 그런 면도 없잖아 있긴 해요."
 "네 뜻대로 응한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혹시라도 떨어지면 엄마가 책임진다고 말해. 서울로 진출할 성적도 아닌데 재수할 각오라도 해야하는 거라면.. 어쩔수없지. 해야지."
 "선생님께서는 재수를 하게 될까봐서 걱정하시는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러니까 상담이 힘들지. 네가 원하는 데도 지원하고, 선생님이 추천하는 곳에도 지원하고 그래라. 골고루하면 선생님께서도 덜 걱정하시겠지."
 "예 알았어요. 엄마는 무조건 제 편이죠?"
 "그래. 공부를 네가 하는데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야지."
 "엄마는 오빠때랑은 확실히 달라요 그쵸? 그만큼 저를 믿는다는 뜻이겠죠^^"
 "당연. 뭐 오빠가 엄마말 듣던? 마찬가지로 너도 네가 선택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서...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엄마를 방관자로 여기실 지도 모르겠군. 뭐든지 네가 알아서 할거라고 했으니까^^"
 "조금 그렇게 느낄지도 몰라요.^^"
 "그럼 학교가서 선생님 만날까?"
 "아뇨. 선생님과 상의해서 알아서 할께요."

며칠후, 선생님께서는 누구는 보호자오라고 하고, 누구는 안와도 되겠고... 이런 식으로 했다가는 우리딸처럼 응하지 않을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셨는지, 선생님께서는 모든 학부모상담을 실시하겠다고 통보하셨습니다.
안갈 수 없었습니다. 휴일도 반납하시고 수고하시는 선생님의 관심을 외면하기엔 너무 염치가 없을 것 같아서 시간을 냈습니다. 한 학생당 30분이 주어진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30분간 주어진 시간이었지만, 선생님을 편하게 해드릴 마음에 10분안에 끝내야지 하고 앉았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뒷사람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무실을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첨 뵙는데도 불구하고, 딸의 친구를 통해서 저에 대해 조금 알고 계셨던지
 "아이들 이야기대로 정말 재밌는 분이십니다."
라고 하셨는데... 울딸은 제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서스럼없이 선생님과 아주 편하게 나누는 대화모습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하면서, 집에서만 보던 엄마의 평소모습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다르지 그럼. 그런데 좋은 뜻으로..."
 "아뇨."
 "어떻게 보였는데?"
 "제 솔직함에 충격받지 마세요."
 "알았어."
 "음... 꼭 술취한 사람같았어요."
 "뭐라구? 내가?"
 "예. 하이톤의 목소리때문인지 기분이 업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엄마는 아빠모임 따라가도 그렇고, 사람들 앞에서는 그게 평소모습인데..."
 "글쎄요. 제 눈엔 참 낯설었어요. 그런 엄마모습이 무척 귀엽게 보이기도 했고요..."
참, 그러고 보니 저는 딸이 낯설게 느껴졌을 정도로, 집안에서와는 달리 저음의 톤으로 조용하게... 느리게... 노숙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 모녀는 각자 다른 모습에 서로 놀랐던 것입니다. 더구나 엄마는 애처럼, 애는 엄마처럼^^
계단을 내려오면서 딸이 솔직하게 표현한 소감,『술취한 사람같았다』는 말이 제 귓가에 맴돌며 현기증을 유발시키는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습니다.
 "술취한 사람처럼 보였다구? 그런 엄마모습이 보기 흉했니? 부끄러웠니?"
 "아뇨. 그냥 제가 그렇게 느꼈다는 뜻이예요.^^"
집안에서의 제 모습이 도대체 어쨌기에 우리딸 눈에는 제가 그렇게 보였는지 충격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