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가 되고자했던 미실의 목적에 의해 태어났다가 버려진 비담은 스승 문노의 또 다른 목적(삼한일통)에 의해 길러지는 동안, 스승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만, 오히려 섬뜩하게 여긴 스승이 어린 비담에게 실망을 하고 손을 거두는데, 여기서 또 비담은 자신이 버려졌음을 느끼게 되면서 '버려진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불안해집니다.
상대방의 손을 잡는다?
혹은 잡힌 손을 뺀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담의 애절한 심정을 엿보면서, 염려스런 마음이 생겼던 까닭은, 저도 모르게 무심히 스친 행동에서도 상대방은 상처받을 수 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엄마에게서, 스승에게서... 가장 믿을만한 가까운 사람에게서 거듭 된 버려짐을 경험한 비담으로써는, 춘추의 말(지 세력을 주체 못해서 쩔쩔매고, 연모에 눈이 멀어서 앞일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니까. 폐하께서 정말로 너와 마음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해?)에 충격을 받았고 애써 마음을 다스린 후 덕만을 찾아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지만, 덕만은 당분간 서라벌을 떠나있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비담에게 반지를 쥐어주며
"서라벌의 일을 다 처리하고 나면 널 다시 부르겠다"
고 약속했지만, 비담의 귓가엔
"폐하께서 정말로 너와 마음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는 춘추의 빈정거림이 맴돌아 혼란을 겪는 비담은, 정표로 반지를 건네는 덕만의 손동작에서도 매우 예민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잡은 손을 먼저 놓는게 아니라, 상대방이 먼저 손을 빼는 일이 그렇게 비담을 혼란스럽게 할 줄이야... 보통사람의 상식으론 그렇게 서운하거나 혼란을 겪을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갈등하는 비담이 매우 안쓰러웠습니다.
"날 믿느냐?"
는 덕만의 말에 믿는다고 힘주어 대답한 비담이었건만,
덕만과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염종의 계략에 또다시 걸려들게 되고, 버림받는 트라우마를 폭발시키며 절규하던 비담은, 덕만에게서도 버림 받았다는 상처로 괴로움을 겪는 비운의 사나이가 되어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믿지 못한 것도 너고 흔들린 것도 너다. 니들 연모를 망친 건 폐하도, 나도 아니다. 너야 비담"
염종의 비난은 이어집니다.
"폐하는 너를 끝까지 믿었다"
비열하게 웃으며 비담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고간 염종을 죽인 비담은, 자신이 앓게 된 트라우마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믿음이 부족한 자신을 후회하면서 불행한 운명을 청산하기에 앞서 덕만을 향해 달려갑니다.
"전해야할 말이 있는데 전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덕만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입니다. 뛰어난 무술실력을 갖춘 비담임을 알면서도 여왕은 끝내 그와 수많은 병사간의 칼부림을 멈추게 하지 않음으로,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과 비담의 처참한 몰골을 꼿꼿하게 서서 지켜보는 강인함과 잔인성을 보여줍니다. 백성을 위하는 여왕으로써 그간에 보여준 인정이 확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비담의 죽음과 덕만사이의 이루지 못한 연정을 더 애달프게 부각시키고자 한 의도였겠지만, 눈앞에 보이는 덕만에게 할말이 있어서 나아가고자 몸부림치는 그를 막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비담도 참 끈질기더군요. 자신에게 향하는 칼이나 쏟아지는 화살을 맞으면서도 덕만을 향해 애절하게 앞으로 나아가고자 발버둥칩니다.
"덕만까지 30보....덕만까지 10보...."
를 되뇌면서 연인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최후를 맞는데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애절하게 손을 내밀지만 끝내 잡아주지 않는 덕만이, 여왕이라는 자리가 이토록 무서운 자리인가? 손한번 잡아주지 않는 이유가 무척 궁금했으며, 산사람 소원도 아니고 죽어가는 사람의 소원일텐데... 참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위치가 되지 않아서 모르지만, 덕만을 원망하며 비담의 비참한 최후를 눈물흘리는 덕만과 함께 그저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여왕인 덕만이라면 그 칼부림을 말릴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녀는 끝까지 말리지 않고 지켜만 보고 서 있었을까요?
여왕의 포스? 체면? 백성들 앞에서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
아니면 유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비담을 살려둘 것 입니까?"
라는 유신의 질문에
"그럴수 없다. 척살하라."
고 이미 명령했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은 댓가?
암튼 그녀는 강한의지로 버티고 서서, 남은 여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 여겼던 한 사내의 죽음을 보고 있었습니다. 피눈물의 강렬함과 비참함때문에 더 절절한 아픔을 느끼면서.
사랑의 무게로 치면 비담이 덕만을 사랑한 비중이 더 컸습니다. 덕만은 비담의 무리를 쉽게 손에 넣으려고 그의 마음을 받아주는 척했던 것 같기도 하고... 늙어서 조그만 사찰을 지은 후 함께 지내기를 소망한 덕만이지만 이건 순전히 덕만의 이기심으로 여겨질 뿐,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피눈물 흘린다의 진수를 보이며 절절하게 살다간 비담의 최후가 너무나 가엾기만 했습니다.
엄마에게 버려졌는지, 누구의 아들이었으며, 왜 버렸는지 몰랐을 때가 행복했던 어린 비담, 그리고 비담을 키운 문노는 덕만과 혼인시키려고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한남자가 한여자를 죽도록 사랑했건만, 버려지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에 의해, 죽음앞에서 내민 간절한 손잡힘을 외면당한 채 두눈 뜨고 숨져간 비운의 남자가 남긴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강렬하여 오래도록 기억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 비담역을 연기한 김남길씨의 멋진 연기와 함께...
울나라 연말연시는 추운 겨울입니다.
내가 잡은 손, 혹은 잡힌 손, 너무 쉽게 빼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한번 생각해보는 여유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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