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한 아들과 수능을 마친 딸이 함께 운전학원엘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필기와 기능시험을 봤는데 아들은 처음 시험본 날에 다 붙었고, 노력파인 딸은 필기만 합격하고 기능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실격이 되었다고 합니다. 집으로 들어서면서 참았던 기분을 표현하는 딸,
"재수없어."
한번도 이런 표현을 들은 적이 없었던 저로써는 딸이 내뱉는 말에 충격을 받아
"너 지금 누구보고 그러는 거야?"
"......"
대답도 없이 방으로 쌩ㅡ하고 들어가더니 기타학원엘 가려고 악보를 챙겨서 나옵니다. 어이가 없어서 아들을 향해
"아들~ OO이가 왜 저래?"
"기능에서 실격당해서 그래요."
"실격?"
"바퀴가 엉뚱하게도 경계석쪽을 밟아 실격처리 됐어요. 그래서 화가 나서 그러는 거예요."
"뭐 지가 잘못했네. 그런데 왜 화를 내고 그래."
딸이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한마디 더 했습니다.
"그런게 아니예요."
"뭐가 그런게 아니야? 네가 실수해서 그런 걸... 재수없다니 도대체 누구보고 재수없다는 거야."
제 목소리는 나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울딸 반항이라도 하듯이
"오빠같은 사람이 재수없단 말이야.~"
라고 악을 씁니다. 동생의 이 말에 아들은 그저 실실 웃기만 하고...
"뭐라고? 오빠가 어쨌기에. 네가 오빠때문에 떨어진 것도 아니고... 또 한번쯤은 떨어질 수도 있는거지. 떨어졌다고 누가 뭐라하지도 않는데 괜히 화를 내고 그래. 한번 더 하면 되지."
"그런게 아니란 말이야~"
울상을 한 딸이 평소와 달리 악을 쓰며 이유는 말하지 않은 채, 기타학원간다면서 휑~~ 하니 나가버립니다. 이런 일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저 지지배, 이제 수능 끝났다고 어른된 줄 아나. 막 덤비네. 참내"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데.... 아들이
"엄마, 집으로 오는 길에 OO이 한마디도 안했어요."
"왜?"
"합격할 줄 알았는데 떨어져서 기분 나빠서 그럴거예요."
"떨어질수도 있지. 누구나 다아 한번에 붙을 수는 없잖아. 필기라도 붙었으니 다행이구만. 내가 보기엔 너희 둘다 책도 안보길래 사실 걱정 좀 했는데..."
"엄마, 저도 걱정 좀 했어요. 필기 떨어져서 기능 못보면 어쩌나 하고 말예요. 그런데 필기 1등으로 붙었어요.^^"
"누가?"
"제가요. 두개 틀리긴 했지만 어떤 아줌마랑 공동 1위^^"
"그래서 동생이 재수없다는 둥 그래도 실실 웃은거야? 기분좋아서? OO이 점수는?"
"90점 근처일걸요."
"아이고... 이제 감 잡았다. OO이 눈에 넌 책도 안본 것 같은데 자신(딸)보다 점수가 잘 나와서 화가 난거네. 그럼 OO이는 집에서는 책안봐도 학교에서는 좀 봤다는 거구. 은근히 오빠보다 높은 점수를 기대했는데 점수도 네가 더 잘 나오고 기능까지 붙었으니... 오빠지만 미웠나보다. 재수없게 여길 만도 하겠다. 안그래도 별 노력없이 성적 잘 나오는 친구를 무지 싫어하는데... 너 혹시 운전학원에서 OO이 한테 1등이라고 했니?"
"아뇨. 필기합격자 명단이 점수별로 실려 나오기 때문에 OO이도 봐서 알아요."
"우리딸 안그래도 좋은 유전자 안줬다고 불만인데, 오늘은 너한테서 그 맛을 봤구만. 그래서 엄마한테 원망조로 대꾸한거구나."
"낼 시험보면 되는데 OO이는 좀 신경과민같아요."
"그럴 수 밖에 없지. 노력파니까. 차라리 필기에서라도 너보다 나았다면 그래도 기분은 좀 덜 상했을텐데..."
딸의 기분이 충분히 이해되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기타학원에서 돌아온 딸에게
"딸~ 괜찮아. 엄마도 예전에 한번 떨어지고 두번째 합격했어. 핸들이 손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실격됐지. 다 경험이야."
"......"
속이 꽤 상했나 봅니다. 아무말도 없던 딸, 다음날 아들은 쉬고 딸은 혼자가서 합격해서 돌아왔습니다.
"딸, 합격했어?"
"예."
너무 담담하게 대답하니까 믿기지가 않아서
"정말로 합격했어?"
"예."
"그런데 기분이 왜그래?"
"제가 오빠처럼 첫날에 다 붙을거라고 자신했었는데... 오빠는 필기공부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첫날에 다 붙어서 기분 나빴어요."
"오빠는 너한테 아무말도 안했잖아."
"아무말 안하고 있었어도 제 눈에는 오빠가 잘난 척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머리좋은 것들이 공부안하고 좋은 성적 받는 것처럼 기분나쁜 건 없거든요. 그리고 이번 일은 제 인생의 오점이기도 해요. 진짜 합격할 줄 알았거든요. 연습때 점수가 잘나와서."
"에이고 우리딸~ 자존심이 상했구나."
이야기하다가 기분이 조금씩 풀렸나 봅니다. 전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걸 보니^^
"그리고 엄마한테 대꾸하긴 했지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싸악 스치길래 얼른 기타학원 간 거예요. ㅋㅋㅋ"
"잘했어. 너 스스로도 잘못한 줄은 아네. 오빠한테 사과해."
"오빠 미안해. 하지만 재수없긴 했어. 헤헤헤"
"나도 알아. 네 기분^^ 오늘 합격한 것 축하해^^"
"이제 둘다 도로주행만 남았구나. 열심히 연습해."
"예."
우리딸은 무엇이든지 잘하고 싶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에서는 맘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많았었고, 더구나 오빠보다 늦게 태어나 동생이 된 것을 억울하게 여기는 딸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잘 모르는 건데 오빠가 알고 있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으며 왜 자신은 모르는데 오빠는 알고 있냐는 식으로 막 따지며 하도 서럽게 울어서 주변사람들을 당황시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빠가 너보다 4년 먼저 태어났으니 아는게 더 많은게 당연한 거지."
"그럼 내가 먼저 태어났으면 내가 더 똑똑했겠네요?"
하면서, 유치원 시절에, 왜 자신을 먼저 태어나게 해주지 않고 오빠를 먼저 태어나게 했느나며 따지던 딸은, 초등시절부터 은연중에 오빠를 자신의 경쟁상대로 여기는 듯해서 우리들을 살짝 피곤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사춘기를 지났으니 이제 괜찮아졌나 했더니, 이번 운전면허증을 계기로 다시 한번 이같은 모습을 보인 딸을 보며 미안하기도 하고, 애잔해지는 까닭은, 많이 부족한 부모지만 유전자타령하는 딸에게 아들과 비슷한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지 못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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