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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신주단지 모시듯, 기타님(?)을 모시는 울딸

전화벨이 울립니다. 받아보니 딸입니다.
"엄마, 지금 뭐하세요?"
"전화받지.ㅋㅋㅋ"
"안 바쁘시면 잠깐만 나오세요. 저 지금 택시타고 집으로 가는 길인데 짐이 많아요."
"알았어."
잠시 후 아파트주차장에 내리는 딸의 짐을 받아들었습니다.
"엄마 조심하세요."
짐이 무거우니 조심하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용돈모아 장만한 기타가 어디 부딪힐까봐서 조심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살짝 삐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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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후 잠에 취해있던 딸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것이 기타학원에 등록하는 것이었습니다.
중3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평소에 하고 싶었던 기타를 몇달 배웠습니다.  남들은 고1 입학을 앞두고 선행학습에 정진할 시기에, 엄마의 후원을 받으며 기타를 배우겠다고 등록하는 우리딸을 보고 원장님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우셨고, 또 울딸은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던지 학원생들 중에서 진도가 가장 빨랐을 뿐만 아니라, 하루도 빠지지 않는 딸의 열정을 보신 원장님은 울딸이 나중에 전공을 실용음악과에 지원할 학생으로 여겼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그 시기에 울딸도 선행학습을 준비하면서 짬을 내었던 것인데 원장님은 모르셨던 것이고, 울딸보다 진도가 훨씬 늦었던 엉뚱한 아이가 실용음악과에 지원한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는 말씀까지 이번에 딸에게 해주었나 봅니다. 우쭐대며
 "엄마, 나 이런딸이예요. 열심히 할게요^^"
 "통기탄 줄 알았는데 요즘은 이런 기타가 유행인가 봐?"
 "세대가 다르잖아요."
 "휴대용은 못되겠다."

딸의 초등시절, 우리 고장에 유일하게 처음으로 결성한 5인조밴드에서 건반을 맡았던 딸은, 기타를 무척하고 싶어했던 소망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초등 6시절에 새로운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딸의 개인적 스케줄상 시간이 나지 않았기에 피아노배운 실력을 토대로 건반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 당시 인기가 꽤 높았습니다. 유일했기에^^
졸업후, 다른 학교에도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약간 시들해지긴 했으나,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활동이 가능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이들도 각기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졌을 뿐만 아니라 여학생을 대상으로 밴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봐준 학교도 없었습니다. 딸은 초등시절 친구들과 미련과 아쉬움을 내내 품고 있었다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일을 위해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시작하면서 건반을 접고 기타에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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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꿍이 속이 있었나 봅니다.
한푼 두분 알뜰하게 모으더니 기타를 사겠다고 해서 좀 놀랐습니다
울딸의 성품으로 볼때에 아까와서 못 살 줄 알았거든요.

용돈에서 만원짜리는 통장에 모아 목돈을 만들어 정기예금 시키고, 천원. 이천원 푼돈모아 기타를 구입한 딸, 시간날때마다 들고 앉아 연습하는데... 지나다가 스치기만 해도
 "아고고고 내 기타님..."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남편이
 "아빠보다 더 귀하게 여기네."
했더니
 "설마 제가 아빠보다 기타를 더 귀하게 여길까봐서요^^"
부녀지간 대화를 듣던 제가
 "그럼, 기타님 무지하게 섬기는 딸님께서는 엄마님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물었더니
 "엄마님도 소중해요."
라고 대답합니다. 딸이 기타를 기타님이라고 할때마다 닭살 돋지만 그 님따라 흉내내노라니 모든 말에 다 존칭이 들어가서 자꾸만 웃게 됩니다.
새상품이라 언제까지 귀중하게 챙길지 모르지만, 방바닥에 앉아서도 하지 않고 침대위에서 연습을 하는 딸, 기타님이 바닥에 부딪혀 모서리 부분이 벗겨지기라도 할까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자신이 모은 용돈으로 구입한 물품이라 아마도 더 소중할테지요. 등교하면서는 기타보고
 "학교갔다 올때까지 기타님 잘 지내세요^^'
하고 나서는 딸.. 어쩌면 저리도 신날까? 무슨일이던지 시작했다하면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딸이 기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