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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핸드폰에 속내를 드러낸 딸의 자제가 슬펐던 이유

수능전에 그리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울딸은, 막상 수능이 끝나자 잠만 아주 열심히 며칠간 잤습니다. 오전에 겨우 학교에 머물다 오면 또 잠... 그러다가 이틀 전, 핸드폰을 새로 장만하려는 오빠를 따라 아빠와 함께 나섰습니다.

고1이 되어 늦은 하교에 걱정이 된 저는, 필요치않다며 극구 사양하는 딸에게 억지로 핸드폰을 안겼습니다. 그렇게 일년을 사용하던 중, 아들이 군입대를 하면서 핸드폰이 남으니 울딸은 자신의 핸드폰을 정지시키고 오빠핸드폰을 사용하다가 휴가때면 오빠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친구들과의 문자니 통화니 이런거 별로 즐기지 않았던 딸입니다. 어미된 저의 필요에 의해서 울딸은 오빠보다는 좀 이른 시기에 핸드폰을 가진 셈이었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식 바로 전날, 핸드폰을 졸업선물로 구입해 주었습니다. 가장 비싼 핸드폰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핸드폰으로 권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고 해도 전자기기의 수명은 디자인이나 기능면에서 유행이 빨리 바뀜을 느끼게 되는 것이 참 아쉽습니다.
울아들 제대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핸드폰을 과감하게(?) 해지하고, 번호도 기기도 완전히 다르게 하면서 분위기쇄신을 꾀하였습니다. 이 기회에 딸도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핸드폰을 뒤로하고 새로이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고, 눈치없는 울남편의 바람대로 따른, 딸의 속마음이 무척이나 슬펐다는 것은 전혀 엉뚱한 일을 계기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알바해서 다달이 갚겠노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입했고, 딸은 공짜폰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제가 아이들 마음을 제대로 읽으면서도 저도 모르게 절약을 빌미로 아무래도 제제를 가할 저 자신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부드러운 심성의 아빠와 함께하면 아이들도 자신의 의사를 솔직하게 잘 표현하여 각자 마음에 드는 핸드폰으로 구입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잘 선택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일단 딸의 속마음을 제대로 볼수 있게끔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접니다.
전화가 걸려오는데 뒷번호가 울집 전화번호와 같기에, 단번에 딸의 핸폰인 줄 알았고 받자마자 다짜고짜로 저는
"뭐야 이 번호, 집번호를 왜 사용했어? 촌스럽게."
하고 화를 냈던 것입니다. 촌스럽다구요? 집번호 뒷자리 사용하면 촌스럽냐구요? 그건 아닌데 대부분의 경우 아저씨나 아줌마들 번호보면 집번호와 일치하는 경우라, 저도 사용하지 않는 울집 번호를 딸이 사용한다는 게 그냥 싫었고, 당연히 새번호를 하리라 여겼기 때문에 저 나름대로 실망감을 드러낸 것이 촌스럽다는 표현이 되었던 것이며, 목소리가 컸던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이에 울딸은
"아빠가 하라고 해서 했다구요."
하고선 화가 났는지 전화를 끊더군요.

그리고 잠시후, 집으로 들어서는 딸을 보고
"번호가 그렇게 없었어? 집번호가 그렇게 좋아?"
"아뇨. 저는 싫었는데 아빠가 하라고 해서 했는데 왜 화를 내고 그래요? 저는 좋아서 맨먼저 엄마한테 전화한건데..."
"아니 화를 낸게 아니라... 미안해. 엄마 목소리가 커서 그렇지. 그런데 넌, 아빠가 그 번호하라고 해서 했다니 네가 생각해 둔 번호는 없었니?"
"생각 좀 할려고 하는데 아빠가 권하시기에... 그렇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도 좋은 핸드폰하고 싶었는데, 오빠가 너무 비싼 걸 잡는 바람에 눈치보여서 공짜폰을 선택했어요."
"뭐라고? 왜 그랬어. 너도 하고 싶은 거 하지. 오빠핑계? 아빠핑계는 왜 대고 그래. 평소에 너답지 않잖아."
"아 됐어요."
울딸, 제가 번호 맘에 안든다고 큰소리 쳤음에 화가 난 모양입니다. 이어서 아들이 들어왔습니다.
"아들, 네 동생 번호랑 전화기 좀 봐주지 그랬어."
"제 것 생각하느라고요. 그리고 전화기는 공짜폰으로만 보지 말고 이왕에 하는 거 맘에 드는 것으로 골라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왜 쟤는 오빠땜시롱 눈치보느라고 양보했다는 듯이 유세부리냐?"
"매장에서는 괜찮았는데..."
"속마음은 좋은 거 하고 싶었다는 얘기잖아. 그러면 확실하게 의사표현을 하지 며칠전부터 공짜폰해도 괜찮다고 한 사람은 본인(딸)이면서 왜 나한테 화를 내고 그래. 참내. 어이가 없어서리..."

이틀 후,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다 싶어서 딸에게 물었습니다.
"딸~ 엄마도 목소리 큰거 싫어. 그런데 잘 안되네. 미안해. 하지만 좋은 기회였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너 이번에 구입한 핸드폰도, 번호도, 사실은 맘에 안들지?"
"......"
"엄마가 생각해봤는데.. 네가 아빠엄마 경제사정 염려하는 마음이 너무 컸던거 같아. 안그래도 되는데... 솔직한 네 마음을 알고 싶어."
"......"
"엄마가 너라면 난 공짜폰 선택하지 않았을거야. 이제 대학생이 되는데... 폼나는 거 갖고 싶었을거야. 오빠처럼. 그런데 넌 스스로 공짜폰하겠다고 하는 걸 보고 기특하기도 했지만 좀 놀랐어. 하지만 네가 오빠핑계로 네 속마음을 드러내는 걸보고 생각해봤어. 너 혹시 아빠엄마한테 착한딸이 되어야겠다는 착한딸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안그래도 돼. 매사에 분명한 너답지 않아서 엄마는 좀 놀랐어."
딸의 말문을 여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한참 후, 울딸은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오빠는 졸업할 무렵에 나름대로 좋은거 사주시길래, 저도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제 맘에 드는 것을 골라도 되겠구나 생각은 했었어요. 그런데... 아빠가 매장에 가는 동안 차안에서 넌 왜 바꾸려고 하니? 오빠꺼 그냥 사용하면 안되니? 그러셔서 아~ 나는 고1때 구입해줬으니까 선택권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죄송한 마음에 제 의사를 나타낼 수가 없었어요."
"왜? 아빠가 엄마보다 훨씬 편하잖아. 그래서 일부러 엄마가 매장에 안따라갔는데... "
"엄마는 우리 세대의 생각을 이해하시는 편이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주고 받을 수 있지만, 아빠는 그게 안돼요. 제가 청하면 들어주시기는 하시겠지만, 낭비하는 것 같아서 말을 할수가 없었어요."
"알았어. 난 네가 공짜폰 이야기를 먼저 꺼내길래 정말로 그런 마음인 줄 알았지. OO아~ 앞으론 너무 자제하지마. 이런 기회가 자꾸 오는 것도 아니잖아. 비록 네가 공짜폰을 자진해서 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오빠와 비슷한 수준을 맞춰줄 것이라고 너 혼자 상상했다는 거잖아. 엄마가 네가 선택한 번호를 촌스럽다고 하면서 네 속마음을 읽어야 하는 그런 숙제를 내지말고 앞으로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어."
"그냥 2년 대충 사용하다가 나중에 스스로 능력될때에 좋은 것으로 바꾸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빠한테 부담주기 싫었어요."
"OO아, 엄마아빠 입장을 생각하는 네 마음은 이쁘고 고맙지만, 명품에 노예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하고 싶은 거 해도 돼. 너무 억누르면 병되지. 배려나 양보도 지나치면 상대방이 기분 나쁘다는 거... 너 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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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되지 않았으니까 바꿀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엄마랑 매장에 가보자."
이리하여 이틀 후 매장에 갔고, 기기도 번호도 새로 바꾸어 돌아왔습니다. 딸의 기분이 나아보입니다.
"엄마, 사실은 친구 전화번호도 하나도 저장안했어요^^"
"아이구 힘들어라. 너희들 왜그러니? 아빠만 그래도 힘든데 너희들까지..."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뭘 갖고 싶다고 떼를 쓴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너무 조숙했던 탓인지 울아들은 4살때부터 시장엘 따라다니지 않았는데, 장난감가게를 꼭 지나치게 되는 길이 싫어서 차라리 안보는 편이 나아서 집에 머물게 되었다고 훗날 이야기해서 저는 알았으며, 딸의 경우는, 이쁘다로 대신했답니다. 엄마 저거 이쁘지? 하고 물으면 저는 그래 참 이쁘다 하고 지나쳤는데 훗날 그때 그렇게 말했던 뜻은 이쁘니까 하나 사주면 좋겠다는 뜻이었노라고 말하더군요. 참을성이 많았던 아들과 딸덕분에 저는 알뜰살뜰하게 절약하며 살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참을성이 강했던 울아들과 딸에 대해 눈치없었던 저는 참 미안하고 스스로 자제력부터 키운 아들과 딸이 고마우면서도 마음 한켠에 아픔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대로 된 거 좀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딸은 절약하려고 하고, 어미인 저는 아이의 마음을 건드려 낭비하는 쪽으로 권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딸에게 이 정도는 해줘도 됩니다. 군대갔다온 아들은 이제 조금 바뀌어져 자신이 갖고 싶은 거 확실하게 드러냅니다. 앞으로 울딸도... 이제 스스로 알바를 해서 해결해 나가겠지만 좀 더 투명하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께 폐끼치지 않으려는 검소한 마음이 기특하고 대견스러우면서도, 너무 자제하는 딸의 인내가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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