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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부산, 막장인생의 아빠가 아니면 어땠을까?





영화는 거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외면했던 영화였는데, 어느 블로거님의 리뷰를 읽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아역배우 티를 벗으면서 급부상한 유승호군의 멋진 발돋음을 느끼고 싶어서 보게 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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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태석(김영호)                      김종철(유승호)                  김강수(고창석)  

영화 '부산'은 위의 세 남자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태석은 종철의 친부고, 강수는 양부로 나옵니다. 출생의 비밀은 모르는 체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술수정과 도박 그리고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양부와 단둘이 살고 있는 종철의 모습은 너무나 가엾고, 애처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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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 팜플렛에 소개된 글을 읽었습니다.
태석, 이 남자 거칠다:냄비 사업 18년, 독사처럼 끈질긴 룸싸롱 보도방 사장.
 '냄비장사를 하는데 왜 이리 거칠다고 표현했나? 냄비사업 18년이라면서 룸싸롱 보도방 사장은 또 뭐야?'
하고 의문을 가졌었는데, 알고보니 냄비장사란? 제가 아는 냄비가 아니었고, 여자를 냄비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매우 불쾌했습니다.
보도방? 여러명의 여자를 고용하여 노래방도우미나 롬싸롱 호스티스를 원하는 곳에 여자를 대주는 곳입니다.
연변처녀나 시골처녀를 꼬드겨서 이런 직업의 세계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배경이 낯설고 불편했고, 텔레비전 뉴스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삶이 마구마구 쏟아졌습니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 부산, 이 영화가 제가 막연하게 품었던 의문을 풀어주었습니다. 물론 일부분이겠지만요.
일의 성격상 가족을 거느리면 불리할 수 밖에 없는 태석은, 사랑하는 여인을 버리고 가족을 만들지 않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사랑하는 여인으로 인해 거친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게 된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태석은 냉정한 사람이 되었고,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는 존재조차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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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빠자격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나이가 사랑하는 보스여인을 쫓아와 함께 살게 된 강수는, 얼떨결에 아비가 되었고, 여자가 죽자 아빠로 알고 있는 종철과 단둘이 살면서 아들을 괴롭힙니다. 그러나 종철은 엄마성품을 닮았는지 나름대로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도 곱게 자라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을 안심시키려 하지만, 그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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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운명적인 도시 부산을 칭하고 있지만, 굳이 부산이란 도시를 선택하지 않아도 될 영화였습니다. 배경이 부산이지만, 등장인물 중 강수외에는 부산사투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박난 영화, 해운대와 애자의 배경을 빌린 느낌만 들었을 뿐입니다. 항구도시라서 타지역에 비해 좀 거칠 것이라는 선입견을 내세워 괜스레 부산이란 도시를 거칠게 만들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둡고 거친 세계가 비단 부산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닐텐데...
부산에서 태어났고, 부산에서 자랐으며, 부산사나이를 아버지로 둔 종철조차도 사투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은 더 낯설게 느껴집니다. 경상도 사람이 타지로 나가면 억양을 고치기가 어렵지만, 타지의 사람이 경상도에 오면 곧바로 억양을 따라하게 되는 분위기상, 제목의 부산과 일치감을 맛보는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넓은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이란 도시를 배경으로, 父山이란 뜻으로 병풍을 삼고 싶었던 이유를 알게 되면 그나마 조금 이해가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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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지명인 부산과 父山의 의미를 한꺼번에 담아, 부성애를 내세워 반전의 감동을 더 크게 하고자 했던 뜻이 있었나 본데, 힘을 너무 준 탓에 오히려 관객들에게 외면당하게 된 아빠의 세계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을 맛보았습니다.

양아치삶으로 아들을 도리어 괴롭혔던 양부는, 마지막으로 애비노릇을 제대로 해보려 합니다만 양부라서 신장이식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자신의 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보스앞에 가서 무릎꿇고, 아들의 출생비밀을 털어놓으며 살려줄것을 애원하게 됩니다.

영화는 무진장 거칩니다. 주먹질에 피가 티고... 사람을 그렇게 두들겨 패도, 사람을 죽여도 잘못이 드러나지 않는 암흑의 세계에는 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먹과 힘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국민남동생인 유승호군이 등장합니다.
나름 거칠게 반항하는 것처럼 나오지만, 워낙에 아빠의 세계가 거칠기 때문에 약하게만 보입니다. 얼굴의 얼룩은 아빠한테 맞아서 터진 입술이며 피자국입니다. 거칠게 사는 아빠인생을 닮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로, 유승호군의 성인식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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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들인지도 모르고 멱살잡는 태석

저 어린 시절 우리동네에, 날마다 술에 취한 어떤 아저씨가 밤이면 아들을 무작정 때려서 그집 아들과 아줌마가 부들부들 떨면서 우리집으로 피신 온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른들 말에 의하면 그 아저씨는 낮에 일하고 들어오면서 마신술에 취해서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행동을 술주정이라고 했습니다.
지나치게 시끄러운 날엔 동네에서 무섭고 엄하기로 소문난 우리아버지께서 그 아저씨를 찾아가 그만두지 못하겠느냐며 말리기도 했으나 잠시뿐, 그 아저씨의 술주정은 다음날 또 이어졌고, 우리 아버지도 포기했으며 대신에 술주정을 시작하면 그 모자에게 우리집으로 피신오게 시켰습니다.
아주머니 말에 의하면 술을 먹지 않았을때는, 참 다정다감한 아저씨인데 이상하게도 술만 먹었다하면 아들을 때리며 욕하고 시끄럽게 하는 바람에 아들도 아줌마도 참 불쌍하기만 하던 어느날 저녁무렵에, 그 아들과 동네의 어떤 아이와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저씨가 술에 취해 있으면서도 아들편을 들면서 상대방아이를 하도 무섭게 몰아부치는 바람에 어떤아이의 부모는 억울했겠지만 기가 막힌 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싸움을 본 후, 그 아저씨는 거짓말처럼 사람이 변해서 술을 자제했고, 술수정이 급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동네어른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사람이 한순간에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그 아저씨는 한동안 동네의 화제거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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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화(정선경) 종철(유승호)

종철은 엄마를 닮은 선화누나를 자꾸만 훔쳐보게 되고, 많이 좋아합니다.
"엄마랑 단둘이 살때는 아빠있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웠는데, 막상 아빠가 나타나니까 엄마가 죽더라. 이제 나 죽으면 아빠 혼자 남게 되잖아."
신장이 좋지않아 이식을 하지 않으면 죽게 될 종철이가 선화누나에게 이말을 하므로써, 제 코끝이 찡함을 느꼈는데, 옆좌석의 젊은 여성은 금방 훌쩍거렸습니다.

영화에서 양부를 친부로 알고 자라는 종철을 보며, 엄마라도 있었으면 약하나마 방패가 되어주었을 텐데... 라는 가여운 마음에 내내 가슴이 짜안했습니다.
비록 아빠는 양아치삶으로 기대할 게 없었지만, 그래도 맘적으로 의지되는 주변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삐뚤어지지 않고, 학교다니며 아빠의 무조건적 폭력을 견뎌내고 있는 아들 종철이가 장하고 기특하기만 했던 영화 부산.
신장이식으로 자식을 살려내고, 깨어날 때까지 방어하느라고 최선을 다한 그들은 진한 피비린내를 풍기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산만하고 부산스럽게 등장한 주먹세계의 사나이들이 배경이 아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맴돌았습니다.
돈이 뭐길래, 삶이 도대체 뭐길래... 하필이면 주먹세계의 직업에 종사(?)하며 그렇게 모질게 살아왔는지 그들이 불쌍했습니다.
직업상 가족을 외면하고, 사랑하는 여인의 아들을 챙기긴 했으나 양아치인생은 아들을 괴롭히면서도 아빠라고 행세하다가 급기야 아들살리기에 나서는 부성애를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만, 주먹세계의 거친 삶이 너무 크게 와닿는 바람에 그속에서 견딘 소년이 더 불쌍했던 영화, 부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