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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나는 못한 인사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날,
멀리 떨어져 사니까 자주 가 뵐수는 없고... 평상시처럼 전화로 안부를 대신합니다.
 "여보세요. 엄마, 따알.ㅎㅎㅎ"
 "그래 내딸."
 "오늘 어버이 날인데 가보지도 못하고 죄송해요. 엄마, 친구랑 맛있는 거 사 드세요. 못가서 죄송해요. 오빠는?"
 "멀리서 어떻게 오남. 오빠는 지난 일요일에 미리 다녀갔다."
 "바빠도 오빠는 휴일이용해서 방문하니 딸보다 아들이 좋네요.^^"
 "아들이고 딸이고 다 좋지 뭐. 그래 너흰 다 건강하냐? 애들 아빠도."
 "예 다 괜찮아요. 엄마는?"
 "나야 건강해. 네가 문제지. 신경 좀 그만 쓰고 책그만 보고 컴퓨터도 하지 말고..."
엄마의 부탁이 이어집니다.
 "됐어. 엄마. 그러면 난 뭐하고 살아. 가만히 놀기만 하라고?"
 "젊은 네가 건강해야지. 내 건강은 걱정마라."
 "엄마건강이 더 걱정이지. 나야 뭐 신랑도 있고 애들도 있지만 엄마는 혼자잖아. 그리고 늙은 엄마가 아프면 더 심각해지니까 엄마는 진짜 건강 잘 챙기세요."
 "알았다. 병든 친구들 보니까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딱 맞더라."
 "그러니까 엄마, 자식들 걱정마시구 건강으로 우리 서로 힘이 되자구요.^^"
 "뭔말인지 알았다. 너네가 건강해서 좋고 또 나도 건강해서 좋고... 하지만 늘 네가 걱정이야. 예민한 것으로 아버지를 닮은 네가..."
 "헤헤헤^^ 제 걱정일랑 마세요. 알아서 병원 다니고 있으니까요. 엄마, 그래도 우린 서로 감사함을 잊으면 안돼요. 여느집 자식들처럼 엄마 속 썩이는 자식없고, 또 엄마도 안아프고 건강하니깐 우리도 좋고 고마워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잘 지내거라."
 "예 엄마. 좋은 것만 생각하세요. 또 전화할께요."

친정엄마와의 대화중에 또 다른 내용이 있었습니다.
안구건조증 증세가 나타날 때마다 인공눈물을 사용하는 저는, 금년초 허리디스크때문에 물리치료를 받았고 최근엔 심한 어깨통증으로 인하여 물리치료 중입니다.(올바르지 못한 자세로 인한 일종의 직업병이랍니다)
이런 과정을 아시는 엄마가 제가 걱정되어 나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도 하지말고 책도 보지말고 컴퓨터도 하지 말라면 저는 어떡합니까^^
그런데 다음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러가면서 마찰을 빚었습니다.
엄마는 자신이 좋다고 주장하시면서 주시는 건강식품을 거부하는 저를 굉장히 못마땅해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건강식품?
울엄마 다단계판매인지? 노인들 유혹해서 약을 파는 그런 곳의 약인지? 아리송하게 확실치 않은 고가의 건강식품을 저뿐만 아니라 오빠, 동생에게 권하는 바람에 놀라게 했고, 걱정거리를 만들어 주셨던 때가 있었기에 내내 긴장중입니다.
자식들이 엄마의 행동에 긴장하고 있는 것을 모르시는지 주장이 강하신 엄마는 또 그 건강식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시면서 짜증을 내시기에 저도 언성을 잠깐 높였던 아침이었는데...

딸이 등교시간에 넙죽 큰절을 하면서, 평상시에 하던 인사 '학교 다녀오겠습니다'가 아닌
 "엄마,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딸, 왜 이래 갑자기?"
 "오후 3시에 집으로 배달되는 거 있을텐데 그거 제가 보내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애들하고 잘 지내세요.^^"
하고 딸이 나가고 현관문이 닫혔습니다. 한참동안 얼떨떨했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나는 한번도 울엄마한테 잘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말 해 본적이 없었고, 솔직히 일부러라도 이런 말을 할수가 없는 딸임을 고백합니다. 이런 제가 우리애한테 이런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ㅠ.ㅠ 정말 거짓말 같은 인사입니다.

그러고 보니 울아들 군대서 일병휴가 나왔을 때도 이런 인사를 했었습니다. 첨으로 백일휴가 다녀갈 때는 하지 않았던 이 인사를 일병휴가 나왔을 때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군대가서 보니 자신보다 좋은 환경의 사람도 만났지만,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가정환경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아서 놀랐다면서 학창시절의 좁은 세상에만 있다가 군대가서 보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면서 일병달고 휴가와서는 예고도 없이 넙죽 큰절을 하면서
 "엄마,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믿기지 않아서 몇번을 물었습니다.
 "진짜로? 내가 너 고교시절에 그렇게 공부하라고 괴롭혔다면서^^ 그래도 고맙니? 정말로?"
 "예. 더 좋은 환경을 부러워만했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엄마 진심입니다. 일병 OOO"

지난 날이지만 아들의 이 말에 무척 감동먹고 나는 살면서 한번도 우리 부모님께 이런 인사를 드린 적이 없었다고 반성하며 되돌아 보았지만 정말 이 말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의 무게감만 느끼다 기억속에서 지워버렸었는데...
오늘 아침 딸에게 이 말을 듣고보니, 고맙기도 하지만 울엄마한테 저는 얼마나 이기적이고 못된 딸인지 다시금 상기하는 날이 되어 저를 괴롭힙니다.

분명 울엄마도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저를 잘 키워보고자 노력을 하셨을 텐데...
진심으로 저는 이런 인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그러나 엄마 살아생전에 후회를 덜 남기기 위해서 꼭 한번은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이해심 많은 딸이 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제가 가정형편상 실업고를 나와서 그 불만을 해소하고자, 늦은 나이에 대학진학을 위해 몇년간 직장생활하여 준비했던 자금을 홀라당 날려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과, 결혼후 제가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들에게는 못하시는 돈문제를 저한테서 해결하시고자 했던 긴 나날로 인해 제가 지쳤습니다.
제가 힘들때 엄마는 제게 힘이 되어 주신 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한편으로는 더 힘들게 하신 분으로 여겨지면서 외동딸로써의 외로움을 극복하느라고 무척 힘들었던 과정을 겪으며 점점 더 못된 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소한 일에서도 엄마는 딸보다는 아들, 그리고 친손자를 더 챙기시는 모습을 통해 서운함이 쌓인 못된 딸.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등 이런 표현은 서슴없이 하는 저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 아들과 딸에게서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는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참 착잡한 숙제를 지고 어려움에 봉착함을 느끼며 아들 딸이 한 인사가 너무 부담스럽게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