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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생각

부부사이가 너무 좋으면 자녀는 외롭다?

 "내년에 대학가면 저도 집을 나갈텐데... 금년만 참으세요..."
딸이 투덜거리며 방으로 들어가고... 무안해진 나.
 "여보, 제발 조심 좀 해. 우리집에 OO이가 다 보고 있어."
 "고 3이면 알거 다 알 나이고, 아빠 엄마가 사이좋은 게 싫은가. 왜그래^^"
 "딸이 투덜대는 소리 못 들었어? OO이가 있을 때는 제발 좀 그러지마."
 "......"
 "알았어요?"
 "예 사모님, 알았어요. 조심할께."
오십이 넘으면 좀 덜할까? 했는데 울남편의 애정표현은 아직도(?) 여전하고, 앞으로도 쭈욱 진행형일거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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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눈에는 아주 조용하고 점잖아 보이는 남편의 분위기로는 애정표현을 못할 것같지만, 집안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시도때도 없이 애정공세를 하니 딸 눈에는 좀 거슬리는 모양입니다.
딸 못지않게 남편의 푸념도 이어집니다.
 "아이고~ 자식 눈치보느라고 이 정도 애정표현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
 "당신말대로 알거 다 아는 나이니까, 애가 있나 없나 눈치는 좀 보고 행동해요.^^"

남편입장에서 보면 남편 말이 맞고, 딸 입장에서 보면 또 딸 말도 맞다고 하니 울딸이 저에게 중심 좀 잘 잡으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합니다. 딸이 거슬려하는 남편의 애정표현은 남편입장에서 보면 사소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거실 소파에 제가 남편 옆에 있으면 안으려하고, 제가 기대있으면 뽀뽀하려 하고, 그 뽀뽀를 받고 가만히 있으면 키스로 변화시키려는 남편의 행동을 방에서 나오던 딸이 우연히 본다던가...
새벽에 일터로 나서던 남편이 아주 가끔 아침출근이 될 경우, 뽀뽀 인사를 원합니다. 딸의 표현처럼 신혼도 아니면서 결혼년수가 꽤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원치않는 인사를 원하니 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대부분 피하지만 아주 가끔 받아주면 키스로 돌변... 아빠의 출근에 인사하려고 방에서 나왔던 딸이 민망해져서 인사도 못하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투덜거립니다.

딸한테 들킬 때마다 제가 남편의 애정표현에 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 받아주지는 않습니다.
아주 가끔 남편의 행동을 받아주게 되는 것이 딸에게 들키게 되니 참 난감하지요.
 "아빠는 아직도 엄마가 그렇게 좋아요?"
 "귀엽잖아.^^"
 "아빠가 엄마한테 먼저 좋아하는 표를 내시니까 엄마가 점점 더 철없어지고 있는 거잖아요."
 "그럼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거네.^^"
 "예. 엄마의 착각에는 아빠의 책임이 큰 것 같아요."
 "엄마 귀엽지 않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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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대는 우리딸 눈에도 가끔 제행동이 귀여워 보이나 봅니다.
금년에 맞은 제 생일날 우리딸이 쓴 메모입니다.ㅋㅋㅋ


어릴 적에는 별 반응없었던 딸이 최근들어 예민하게 구니 남편이 오히려 받아들이기 힘든 눈치입니다.
더구나 부부지간의 애정표현을 교육상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기며 지나온 세월이었기에...
딸도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고백합니다.
오빠가 있을 때는 오빠랑 보내는 시간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아빠가 엄마에게 보내던 애정표현이나 이야기 나누는 것에 대해 좀 둔감했었던거 같다면서 예민해진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도, 주변 친구들의 아빠 엄마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으며 우리집 분위기를 적용시켜보노라면 아무래도 우리부부가 좀 유별나게 느껴진다는 딸의 항변에 남편이 놀랍니다.
 "그럼 우리가 문제라는 거잖아."
 "아빠, 문제까진 아니더라도 대충 아빠 엄마 연세엔 덤덤해진다는 거죠.^^"
 "니는 결혼하면 아빠보다 더 할지도 모르니까 너무 그러지 마.^^"
도리어 딸에게 자신을 이해해달라며 부탁하는 대화를 들으며, 제가 울남편을 좀 더 강하게 자제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양가 어른의 소개로 만나 결혼하게 될 상대방을 제대로 파악도 하지 않은채, 어른들의 성화에 떠밀려 결혼식부터 올리고 얼떨결에(?) 부부가 된 우리는 교제기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살면서 서로를 파악하게 되었고, 배려하며 함께한 날이 많아지면서 뒤늦께야 연애감정을 느끼며 사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과묵한 남편은 당신이 말이 없는 대신에 상대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야말로 귀빌려주는 상대로 참 좋습니다^^ 이에 맞춰주느라 어느새 수다쟁이가 된 저는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아낙으로 변하였고, 피곤하거나 말하기 싫어서 조용히 있으면 어디 아프냐고 묻는 남편은 늘 제가 자신을 대신해서 떠들어주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상대와 결혼하여 환상과 기대감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 아니고, 어른들 말만 믿고 결혼생활을 시작했기에 기대같은 것은 아예 없었고, 그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날이었기에 기대를 안했으니 실망할 게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짜노?" 걱정했던 마음이 안심으로 변하면서 서로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딸의 말도 잘 들어주는 남편입니다만, 아무래도 딸에게는 아빠의 모습일 수 밖에 없기에 아내에게 대하는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어느날, 우리딸이 외쳤습니다.
 "우리 아빠 엄마처럼 부부사이가 너무 좋으면 자식이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는 거 아실랑가? 모르실랑가!"
딸의 이 외침을 남편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는 딸에게 더 관심을 갖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뿐만 아니라, 저에게 나타내던 애정표현도 많이 자제하고 있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