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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생각

신노예제도라고 느낄만큼 처절한 동생의 직장생활

타지로 뿔뿔히 흩어져사는 우리 3남매는 명절때도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번 설날에는 운좋게도 한자리에 모일수 있어서 참 반가웠습니다.
모처럼 만난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저는 그동안의 이야기보따리를 푸느라고 쉴새없이 말이 오가던 중, 오빠와 동생의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오빠는 대기업의 정규직으로(직장생활에 발을 내디딜 당시에는 정규직이니 비정규직이니 라는 말조차도 없었음), 남동생은 비정규직으로... 동생 표현에 의하면 언제 짤릴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게 되는 몰골이 현대판 신노예제도에 갇힌 노예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처절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시댁쪽으로는 작지만 거의 자영업인지라 느낄 수 없었던 직장생활의 긴장감이 너무나 현실적이며 사실적으로 오가는 대화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젊은 시절, 직장생활에 몸을 담을 시절만 해도 정규직이니 계약직이니 혹은 비정규직이니... 뭐 이런말들은 생겨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설에 만났던 오빠는 정규직으로 동생은 비정규직중에서도 또 차별을 느끼게 되는 용역업체에서 인력조달을 해주는 소모품에 불과한 처지의 신분으로 하루하루가 불안 초조한 심정이라고 말하는 한가정의 가장으로써의 아픔이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신분제도처럼 현대는 부에 따른 신분의 차별뿐만 아니라, 직장에 따른 차별도 느껴진다는(이부분 오빠도 함께 공감함) 동생은, 텔레비전에 광고까지 하던 건설회사에 근무하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실직자가 되어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겨우 구한 직장은 겉으로는 꽤 괜찮아보이는 내노라하는 방송국의 경비원으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불행중 다행이긴 했으나 동생이 말하는 직장생활의 분류된 소속을 듣노라니 그야말로 노예라고 표현하는 동생이 내뱉는 한숨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제 마음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 정규직-누구나 꿈꾸는 대기업의 정규직은 혜택도 많고 안정적이며 보장된 연봉과 퇴직시기가 있습니다.(오빠의 경우/아주 풍족하진 않으나 근무기간동안 보장된 생활을 합니다.)
★ 그리고 넓은 범위로는 비정규직이라고 하는데 이 속에서도 분류가 된답니다.
1.계약직이 있답니다.
   정규직이 누리는 혜택같은 것은 없으나 정규직을 연봉 100으로 보면 계약직은 70이라고 보면 되는 처지라 비정규직이라고 표현하는 부류중에서는 제일 나은 부류랍니다.
2.그리고 계약직아래로 비정규직이 있답니다.
   정규직의 40도 안되는 연봉(?)으로 언제 짤릴지 불안하답니다.
3.인력용역업체에 수수료를 내고 소속된 경우
  동생이 속한 부류로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서 비정규직이라고 굳이 표현을 하긴 하나, 소속감이 없고 서로를 감시하는 차원이며 떠돌이로 파리목숨같다는군요. 어떻게 직장을 구하느냐는 질문에 크던 작던 회사에서 사람을 더 보충하고자 찾는 인력용역업체가 있답니다. 이 인력용역업체는 또 도급형식으로 입찰에서 따낸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을 요청하면 그에 맞는 사람을 빌려주는(?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대여형식(?)을 갖추고 있답니다. 중개인같은 역할의 알선책인 셈이랍니다. 이런 알선책의 단계를 많이 거치게 되면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혜택(월급)은 줄어들수 밖에 없다는 거죠.
이런 용역업체를 거쳐서 소개받아 1년 계약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긴 하나, 어떤 문제가 발생되면 그야말로 언제 짤리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하루하루가 가족의 생계와 연관지어져 노심초사하는 자신의 모습이 꼭 노예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처지라며 변화된 우리사회를 비판했습니다.
24시간 매여있는 몸이 아닐 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써 1년계약으로 이어지는 직장생활이 불안하여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될까봐서 걱정하게 되는 신세가 노예같다고 느끼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백수가 되고, 노숙자로 전락하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동생의 푸념이 마음한켠을 아프게 짓눌렀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지더라도 저는 고용한 회사와 직접적으로 연관지어져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가, 용역업체소속으로 이어지는 인력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참한 현실에 몸부림을 치고 있는 동생의 처지가 너무 가엽게 여겨졌습니다. 그동안 가계에 보탬이 되려고 일하던 올케마저도 뜻하지 않은 경제난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바람에 더 무거워진 동생의 처지를 생각하노라니 웃고 있는 얼굴이 슬퍼보였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아니 어떤 경우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은 시간의 일을 하면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라는 직장내 다른 표현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오빠가 대답했습니다.
IMF를 거치면서 배분쪽에 더 노력을 기울이면서 이같은 이중적, 삼중적 장치가 마련되었답니다.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그 실업자를 구제하고자 회사에서 필요한 시기동안 필요한 사람을 고용했다가 내보내는 장치로, 얼핏보면 공산주의의 골고루 배분의 원칙처럼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좋아 보이지만 내실은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입니다. 넘쳐나는 인력을 주체하지 못해서 내세운 장치로 말미암아 정규직은 누릴 것 다 누리고, 비정규직은 할 것 다 하면서도 대접을 못받는 경우가 있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회사측에서는 비정규직을 의심하게 되는 심정을 갖게 된다던가 뭐... 참 억울한 비정규직임을 오빠도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생의 처절한 직장생활을 염려하면서 힘들더라도 인정받는 사람으로 올바르게 살라고 부탁하는 모습에는 근심이 서려있었습니다.

해결방법은?
격하게 표현해서 갈아엎어야한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이란 표현과 함께 차별을 없애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완전히 다른 색깔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틀을 깨고자 동조할 정규직의 희생은 할수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당사자인 오빠도 현실의 만족감과 안주함을 비정규직과 나눌 의사는 없다는 뜻이겠지요.

용역업체의 일꾼, 아니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을 모아놓고 사람관리로 먹고사는 또다른 알선책으로 중계인이 된 용역업체의 장사(?)에 어쩔수없이 소속된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일자리를 지키고자 열심히 일하고,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부류에 동생이 존재하면서 느낀 표현은 신노예제도라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보노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동굴속에 갇혀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마무리는..
그래도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음에 감사하면서 밝게 웃는 동생을 대견스럽게 여기며 격려했습니다. 희망을 꽃을 피우려는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모든이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