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는 왜 설겆이만 하세요?"
"......"
이번 설에 큰댁에서 설겆이하는 저를 지켜본 손자(?)가 한 질문입니다^^
이 손자는 큰댁 형님의 작은 아들, 그러니까 제겐 시댁의 막내조카가 결혼하여 낳은 아들로 이번 설날에 일곱살이 된 꼬마소년입니다.
"아줌마? 나한테 물은거야?"
제가 되물었습니다.
"예. 아줌마는 왜 설겆이만 하느냐고요.ㅎㅎㅎ"
"하하하 OO이가 봐도 나보고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이상한가보네. 그러니까 아줌마라고 하지^^"
"할머니라고요?"
옆에 있던 막내질부(아이의 엄마)가
"그래. 아줌마가 아니고 할머니야. 작은할머니."
"작은할머니면 큰할머니는 누구야?"
느닷없는 질문에 잠깐? 우리도 헷갈렸습니다.ㅋㅋㅋ
"큰할머니는 우리할머니고......"
엄마의 설명은 길어지고... 아이는 더 혼란스러운 듯 해서 제가
"OO이가 할머니라고 부르시는 분은 할머니고, 나는 제천할머니(지명을 따서)고, 형아들(정확하게는 오촌아저씨)있는 대구할머니(동서)는 막내할머니라고 부르면 돼."
그랬더니 아이가
"할머니, 제천할머니, 배불뚝이 할머니(울동서가 좀 뚱뚱합니다)"
라고 나름대로 할머니호칭에 대해 정리를 한 손자는, 작년 추석때까지만 해도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동서나 저를 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번 설날에는 일곱살소년의 눈으로 아무리봐도 저희들이 할머니로 보이지 않나 봅니다. 좀처럼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아줌마라 부릅니다. 우린 기분좋았습니다^^ 부담스런 할머니가 아니라서. 변하지 않는 할머니이긴 하지만요.^^
참
왜 아줌마는 설겆이만 하세요?
하던 손자의 눈에 비친 제 모습입니다. 그랬습니다. 설겆이를 거의 도맡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엄마찾아 주방을 들락거릴때마다 본 모습이겠지요.
음식은 아랫동서가 알아서 잘합니다.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잘합니다. 그리고 막내질부는 이것저것 보조역할을 하면서 가끔 칭얼대는 어린 자녀 셋을 번갈아 돌봅니다. 그러니 일의 진행상 제가 설겆이를 하는 게 편합니다.
큰질부는 부부간의 문제를 핑계삼아 금년 설날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큰조카와 아이들만 시댁에 보냈습니다. 안방마님이 되신 형님처럼 방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큰질부, 막내질부 동서까지 주방에 있었어도 저는 주방에 머무는 쪽이 더 편했습니다.
그 시절, 가끔 주방이 좁다며 동서와 큰질부가 저를 안방으로 보냅니다. 그러면 저는 형님의 끝없는 무수한 이야기를 들어야하는 시간을 견뎌야하곤 했습니다. 이야기의 어디쯤에서 끊고 일어나야 할지 몰라 예의를 갖추느라고 화장실가는 것까지 참았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 고역이 아닐수 없습니다.
금년 설에는 주방에 머물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습니다.
비록 몸은 좀 고달프지만 명절때 며칠만 힘들면 되니까요. 일곱살 꼬마소년의 눈에 설겆이만 하는 사람으로 비치는 바람에 제 집게손가락은 이상하리마치 부어올라 구부리기가 쉽지 않게 되었지만 마음은 편했던 큰댁에서의 설날이었음에 만족합니다.
어른의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20여년 연상인 세월의 강은 좀처럼 좁아지지 않음을 느끼며 금년 설에 형님의 말벗상대로 안방에 머물기를 외면한 시간을 주방에서 열심히 설겆이하는 것으로 보낸 설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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