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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여행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로 더 알려지는 '화성행궁'

유네스코에 올라있는 화성안에 임금이 행차하여 머물던 '화성행궁'은 드라마 혹은 영화촬영지로 많이 활용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789년 수원 신읍치 조성 이후 건립하기 시작하여 1790년 340칸이 완성되고 1796년 화성성역이 완성되면서 576칸으로 조성되었다.
사도세자의 현륭원 참배의 목적 외에 정조대왕이 1804년 양위 후 장차 화성에 내려와 노후를 보낼 시설이었으므로 그 어떤 행궁보다도 대규모로 건설되었으며 팔달산 동쪽 기슭 화성의 중앙부에 자리 잡았다.
화성행궁은 1795년 윤2월 혜경궁 회갑연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 예술 및 백성들에게 쌀을 내려주고 양로연을 베푸는 위민행사가 치러진 중심 무대였으나, 일제 강점기때 의도적으로 파괴되었다.
이후 1996년부터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2002년 1단계로 전체 600여칸 중 482칸을 복원 완료하였다./팜플렛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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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입구로 신풍루 앞 이곳에서는 정조가 친히 참석하여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굶주린 백성에게는 죽을 끊여 먹이는 진휼 행사가 벌어졌던 곳으로 백성을 사랑한 정조의 마음을 엿볼수 있는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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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여년이나 된 느티나무는 궁궐의 조정제도에 의해 品(품)형태로 심어진 것이며 영의정을 비롯한 삼정승이 이 나무 아래서 어진 사람을 맞이하여 올바를 정치를 베푼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참고)
현재의 정치인들이 옛 조상들의 마음을 헤아려 좋은 점을 닮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기를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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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루는 화성 행궁의 정문으로, 태극무늬가 있는 중앙문은 임금이 드나들던 곳...
옆문을 이용하여 출입하는 것이 백성의 도리라네요^^

이곳은 입구부터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사진이 가는곳마다 즐비한 곳으로 아시아관광객들에게 꽤 인기있는 관광지랍니다. 대장금을 비롯하여 이산, 서동요...등, 영화로는 '왕의 남자'가 이곳에서 촬영되는 장소로 드라마, 영화촬영장으로 요긴하게 쓰이며 관리되고 있어서 그런지 깔끔한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과거 임금 정조의 효심이 깃든 행궁에서 현대의 드라마를 통한 사극모습을 보게 되리라고는 그 당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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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면 한켠에 그 유명한 거중기가 보입니다.
실학자 정약용이 만든 이 거중기로 말미암아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과학적으로 많이 발전하는 계기를 맞이하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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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궁궐을 포함한 내노라하는 사대부집의 형태를 보면 거쳐야할 문이 많음을 느낍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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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은 화성 행궁의 정전(正殿)건물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장남헌(壯南軒)이라고도 한다. 1795년(정조 19) 정조는 혜경궁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하였다.
이 때 정조는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뜻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조윤형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하였다.
이 건물은 원래 1789년(정조 13)8월 19일 상량하고 9월 25일 완공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파괴된 봉수당은 1997년 복원 되었다.
정조는 혜경궁 회갑연을 마치고 9년뒤인 1804년에 혜경궁의 70수연(壽宴) 진찬을 봉수당에서 갖겠으니 사용할 물건을 잘 보관하도록 지시하였다.
진찬례 행사는 조선시대 최대의 궁중행사로 당시의 커다란 화제거리였으며, 왕실의 종친과 신하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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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까지 가는 길로 신분에 따라 가는 길이 달랐답니다. 물론 중앙이 최고 신분이 걷던 길이구요^^ 조선시대 신분차별로 말미암아 억울함을 삭혀야하는 계층간의 아픈수모를 생각하니 아무리 훌륭한 임금이었다고 해도 별로 존경스럽게 여겨지지 않음은 차별이 심했던 탓임을 이런 곳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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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임금이 드라마 '이산'을 통해서 역할을 했던 탤랜트 이서진씨로 보이는 착각현상.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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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촬영지로 이용되면서 관리를 잘해서 그런지? 아니면 관광지로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아서 그런지? 아무튼 깨끗해 보여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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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 있는 궁궐처럼 화려하거나 넓지는 않으나 갖춰야 할 것은 다 갖추려고 옹기종기 마련된 건물사이 사이를 바삐 돌아보는 곳마다 드라마 '대장금' 촬영시 어떤 모습으로 재현했는지 소개되고 있는 이같은 안내문을 만나게 되는 화성행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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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살림이 반질반질 윤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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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시(오른쪽)에서 최고삼궁(왼쪽)이 되기까지의 변화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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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평일에 방문한 이곳에는 행사가 없었지만 주말이면 이 무대에서 무술시범을 보이는 것과 더불어 왕궁의 옷을 빌려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가이드의 안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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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특이한 궁중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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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단청빛깔로 인해 한층 더 화려함을 자랑하며 궁중악기임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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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들이 화성행궁의 어디어디를 거쳤음을 스스로 찍은 도장으로 기념하도록 준비한 모습입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이곳을 찾은 초등학생들의 부지런한 동작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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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그의 아버지 영조의 명령에 의해 갇혀진 채로 죽음을 맞이 한 뒤주.
그 당시 자식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조정을 어지럽히던 당파싸움을 잠재우고자 애쓴 영조의 뜻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나.... 참으로 독한 아비였음을 느끼며 소름이 끼쳤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은 화성을 통하여 정조의 효심을 엿보지만 아시아 관광객들에게는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로 더 궁금하여 찾게 되는 장소처럼 여겨졌던 여름날의 화성행궁 나들이 소감을 이제서야 정리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