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솔직히 불안했다. 대회 초반 김연아선수 못지않게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던 러시아선수 리프니츠카야가 엉덩방아를 찧는 실수를 보면서 안심이 됨도 잠시, 뜻밖의 복병이 나타나면서 불안을 이어갔다.
여자피겨스케이팅 쇼트경기에서 김연아선수가 1위를 했지만, 근소한 차의 2위로 러시아선수인 소트니코바에게 매겨진 후한 점수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남은 프리경기에 대한 러시아텃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져갔다.
세계속 한국의 위상을 떠올려 보거나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러시아의 텃세로 볼 때에, 김연아선수의 불리함을 예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선수로써 산전수전 다 겪은 김연아선수도 이 점 예상하고 있었을 것임을 느끼며 경기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김연아선수는 메달색보다는 선수생활을 마감하며 준비한 이번 경기를 완벽하게 보여줌으로써 후회없기를 바랐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팬인 우리가족은 착지에서 실수를 보인 소트니코바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들여야함이 너무 속상했고 슬펐다. 우리 모녀는 약속이나 한듯이 억울한 탄성과 함께 소리내어 울었고, 점잖은 남편의 입에서 순간 튀어나온 불만어린 짧은 단어를 들은 우리모녀는 놀라면서도 흥분하여 함께 거들었다. 러C8
김연아선수는 그야말로 국보급이다. 아니 인간문화재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그간 보여준 훌륭한 경기와 태도에 진심으로 찬사와 존경을 보낸다.
선수로써 보이는 마지막 경기로 올림픽무대를 준비하면서 '어릿광대를 보내주오'에 맞춰 올리브빛이 살짝 감도는 노란색 드레스를 처음 선뵈었을 때, 잘 어울린다는 반응보다 이상하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면서 의상디자이너의 홈피를 초토화시키는 팬들의 관심에 대처하는 그녀의 태도도 참 멋졌다.
그녀는 의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선수의 실력임을 강조하며 논란을 잠재우더니, 이번에는 점수는 선수의 몫이 아닌만큼 자신이 보여주려고 연습하고 노력했던 모든 것을 다 보여줬음에 만족함을 드러내므로써, 또 다른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녀의 대장부같은 태도를 볼 때마다 나는 몹시 부끄럽다. 어쩌면 저 나이때에 저런 생각과 말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도 아쉽고 속상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임을 토크쇼를 통해 보여주긴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관리를 무척 잘하는 것 같다.
그녀의 수식어로 여제. 여왕, 여신 그 어떤 표현으로도 그녀를 다 표현할 수 없음을 느낀다. 단단한 강철같아 보이는 그녀의 강점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다양한 반응에 대해 대범하게 대처함이 참 멋지다. 누구탓도 하지 않고 그 누구도 거론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추구한 대로 온몸으로 경기하고, 판단은 자신이 아닌 관객의 몫으로 남겼다. 우리는 그녀의 마지막 경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 많은 아쉬움으로 인해 긴 여운을 간직한 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녀로 인해 우린 행복했다. 감사했다.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그리고 아쉬움에 분노도 했으며 또한 많은 이들이 피겨스케이트에 대한 지식이나 상식을 익히게 된 계기도 되었고 안목도 높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후배들에게 모범이자 우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 길이 되었다.
피겨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고유의 것이었다면 충분히 인간문화재급임에 틀림이 없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논란이 일어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다독일 줄 아는 그녀의 품성은 감동을 주고도 남을 만큼 훌륭하게 여겨진다. 김연아선수는 진정한 스포츠인이다.
김연아선수가 힘겹게 뿌려놓은 여자피겨계의 씨앗이 잘 자라서 우리 나라의 보배로, 김연아선수의 보람으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김연아선수와 함께 풍미했던 다른 선수에 대해서도 소감으로 마무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아사다 마오.
김연아선수와 늘 비교되던 동갑내기 선수로써 아사다 마오에 대한 나의 감정은 한마디로 안쓰러움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간사한 위상에 힘입어 아사다 마오는 언론이나 나라의 힘이 이끄는 대로 끌려다닌 인형같은 인상을 풍기곤 했다. 그녀에게 과연 진정한 아사다 마오가 존재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 인물이다. 무척 예민하여 주변의 관심과 시선에 쉽게 좌지우지 흔들리며 상처받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로 보이면서 꼭두각시같은 느낌을 애처롭게 풍겼기 때문이다.
경기때마다 보인 그녀의 표정은 웃고 있어도 웃는게 아님을 우리는 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실수많은 요소를 끝내 고집하며 소치올림픽에서도 야심찬 꿈을 꾸었지만 그녀는 쇼트경기 후 이방인이 되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상상밖의 성적으로 말미암아 일본언론에서조차도 외면을 받아야 했던 아사다 마오의 입지가 너무 불쌍해 보여 그녀를 다독거려 주고 싶을 정도로 안타깝고 안쓰럽게 느껴졌던 그녀가 프리경기를 통해 실수를 만회했다. 그리고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녀따라 눈물이 났다. 가녀린 새같았다.
이상이 아사다 마오에 대한 나의 소감으로 착각일 수도 있을 것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게서 당찬 모습을 기대해본다.
한 번의 올림픽 출전도 꿈인 선수들이 많은데, 캐롤리나 코스트너는 3회 출전으로 드디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진심을 담아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눈도 크고 입도 큰 서양인으로 드물게, 치아가 조금 돌출되어 좀처럼 다물어진 입을 보기 힘든 선수로, 항상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표정을 보인다. 피겨선수로 키까지 커서 엉성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녀를 보노라면 키 큰 시골 처녀같은 인상을 받곤 했다. 그리고 분명 상위권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김연아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의 경쟁에 밀려 있음과 나이에 연연해하지 않고 꾸준히 선수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근성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는데 그녀가 드디어 해낸 것이다. 잔잔한 실수를 자주 하던 그녀에게서 이번 소치올림픽에서는, 그녀의 노력이 느껴질 만큼 실수가 확실하게 줄어든 것을 봄으로써 노련미와 여유를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기도 했다.
표정을 통해 아사다 마오와 대조를 이룬 그녀다. 아사다 마오는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닌 듯한 어두움을 읽을 수 있었다면, 캐롤리나 코스트너의 표정에서는 그녀의 속마음을 전혀 읽을 수 없는 순수한 웃음 그 자체를 느꼈던 거 같다.
이제 이들도 선수생활을 마무리 할 때가 된 것 같아, 추억하기 위해 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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