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
영화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화려한 캐스팅에 이끌렸다.
각기 다른 개성을 내뿜으며 연기뿐만 아니라, 한 외모하시는 그들을 한자리에서 다 볼수 있다는 점과 그들의 조합이 무척 궁금했다.
외모적으로 오달수씨만 쪼꿈 빠지긴 해도, 그 역시 그만이 지닌 독특한 개성과 코믹연기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 영화의 주인공 1인으로써 충분히 빛을 발할 내노라하는 짱짱한 배우들이, 하필이면 좋은 직업(?)도 아닌 '도둑'으로 뭉쳤다. 한번 사는 인생, 비록 스크린을 빌린 삶일지언정 참으로 다양한 삶을 맛보는 '영화배우'의 매력을 발산한다.
좀도둑이 아닌 이들에겐 맡은바 역할이 각기 다르다.
분업으로 전문화된 도둑들의 세련미를 보는 재미와 함께, 거친 입담속에서의 여유와 유머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다. 별명으로 통하는 그들을 해부해본다.
팹시(김혜수)와 마카오박(김윤석)
금괴털이 사건때 팹시는 마카오박의 생사를 걱정하다 노출되는 바람에, 감옥살이를 하면서 금괴를 다 가지고 행방불명된 마카오박을 원망하는 세월을 살다가 홍콩에서 재회하게 된다.
팹시를 사랑한 뽀빠이의 배신으로 어쩔수 없이 모습을 감춰야만 했던 마카오박의 등장과, 아버지 복수를 꿈꾸는 그의 반전이 영화에 묘미를 주고, 팹시를 가슴에 품은 마카오박은 사나이 로맨스의 든든한 무게감을 입증하며 관객인 나에게 설렘과 짜릿함을 느끼게 했다.
뽀빠이(이정재)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너가 잘못 본거야^^"
하고 비웃기라도 하듯이, 신사적으로만 보이던 그에게서 동료를 배신하는 얍삽하고 비겁한 인상을 보고 놀랐다. 연기를 잘한 탓일게다. 기른 콧수염이 아니라 붙인 수염임을 놀리는 마카오박에게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혼잣말로 투덜대는 모습은, 마카오박의 똘만이였다가 성장한 뽀빠이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의 어설픈 행동이 웃음짓게 한다.
'태양의 눈물'이라는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치고자 뭉치긴 했어도, 이들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저 손만 잡았을 뿐이다.
나쁜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인 것 같다.
국내의 유명배우들로 이룬 국내도둑들과 홍콩의 유명 배우를 중국도둑으로 힘을 합쳤다. 그것도 홍콩에서. 적극적으로 흥행몰이 하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상업영화임을 알 수 있다.
국내팬 뿐만 아니라 홍콩팬들도 관심을 가질 게 아닌가. 그들이 바라는 1,000만 관객은 거뜬히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상을 해보며 나도 내심 기대감을 갖게 된다.
어, 중국 도둑들 사이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영화 '방자전'과 '조선명탐정'을 통해 내 눈에 익힌 배우 오달수씨다. 그는 앤드류역을 맡았다.
급하니까 "아 뜨거" 모국말을 내뱉으며 들통이 나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자연스레 웃음을 유발시키는 그만의 코믹함을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여 웃음을 유발시킨다.
각자 맡은 역할따라 기술도 다르지만,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 언어도 구사하는 글로벌한 도둑들이 펼치는 활약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첸(임달화)과 씹던껌(김해숙)이 일본어를 구사하며 일본인 부부로 행세하다 사랑에 빠진다.
외로운 중년에 찾은 로맨스의 마지막이 한순간에 끝나는 바람에 안타까운 커플이었다.
김해숙씨의 연기를 보고 있자니 영화 '박쥐'가 떠오르면서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농익은 연기와 무한 변신에 대해 말로 표현이 안된다. 그저 감탄만 하게 된다.
마카오 카지노가 배경이 된 화면을 보자, 홍콩과 마카오 패키지 상품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성이 이랬을까? 인간의 탐욕이 고스란히 느껴지더라" 고층 건물 어딘가에 철저하게 보관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도둑들이 활약하는 탐욕의 현장이란 점에서 친구의 느낌이 와 닿는다.
부르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예니콜역의 전지현 줄타는 기술을 보유한 그녀의 거침없는 발랄함에서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익숙했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점이 친근하게 다가와 개인적으로 보기 좋았다. 그녀의 한정된 연기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이 있는데, 배우라고 해서 매번 변신을 시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색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역에 충실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영화 '도둑들'에서 보여준 예니콜 역의 전지현은, 모처럼 아주 잘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을 줬다.
복희(예니콜:전지현)를 사랑한 짐파노역의 김수현
도둑이란 직업(?)의 비지니스 관계로 만났으나 돈보다는 사랑을 선택하여, 귀엽고 솔직하게 풋풋한 감성을 내뿜은 김수현의 비중이 적었던 점은 딸을 비롯한 또래집단에게 많은 아쉬움을 준 것 같다. 특히 울딸은
"복희야 사랑해"
를 외치며 예니콜을 위기에서 구해주고, 대신 붙잡힌 김수현이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들을 수 없음을 불만스레 털어놓았다.
여배우의 조합
팹시와 예니콜
팹시가 감옥에 있는 동안, 새로 영입된 예니콜이 팹시의 출감에 맞춰 마중을 나갔다가 팹시에게서 느낀 소감을 이렇게 표현한다.
"으마으~~~으마한 쌍년같아."
남의 영역에 침범하지 말라는 조용한 경고를 날리는 팹시에게서 성숙함을 느낄 수 있다면, 예니콜은 범무서운 줄 모르는 천방지축 강아지 같은 느낌이다. 도둑들 간에 굳이 경쟁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관객들이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각자 맡은 분야가 다를 뿐만 아니라, 감독이 참 적절하게 배우를 잘 배치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쥴리와 팹시
예민한 청각을 이용하여 금고를 열 수 있다고 장담하는 쥴리와, 기구를 이용하여 금고를 따는 팹시사이에는 은근한 기술대결이 벌어진다. 쥴리와 팹시는 심기가 불편하다. 더구나 각자의 목적이 다름을 아는 관객의 시선으로 보기엔 쥴리가 얄밉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도둑들을 두둔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도둑들을 이용하여 웨이홍을 잡고자 도둑으로 위장한 그녀편도 들고 싶지 않았다.
씹던껌과 팹시
김혜수씨가 카리스마 그 자체라고 해도, 대모역할을 하는 김해숙씨의 연륜을 누르지는 못한다.
술없으면 연기가 안된다며 늙은 도둑으로써의 외로움을 한탄하는 씹던껌의 한숨이 안쓰럽긴 했어도, 배우 김해숙씨의 실감나는 연기는 워낙 탄탄해서 미모의 젊은 여배우에게 뒤지지 않는 당당함이 느껴진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영화 '도둑들'에서 주인공은 한두명이 아니다.
도둑들이 다 주인공이기 때문에 굳이 주인공을 한명으로 압축하고 싶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를 주인공으로 여기면 된다.
나는 미묘한 감정으로 연정의 줄다리기를 하던 마카오박과 팹시를 주인공으로 낙점해 본다.
요즘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죽기도 하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영화는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음을 앞세워.
죽거나 붙잡히거나 부상당하거나... 하던 중에, 마카오박은 쏟아지는 총알 세례를 용케도 피했다. 아파트 외벽에 매달려 온몸이 고달팠지만 아버지 복수도 했고, 원하던 태양의 눈물도 손에 넣는 능력을 발휘했다. 도둑들을 총지휘해 놓고선 뒤로 따로 연기를 펼친 그의 배신이 의리를 저버린 행동이긴 하나, 영화에 반전을 준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양한 연령대의 유명배우를 캐스팅하여 만든 영화, '도둑들'
비록 건전한 내용은 아니지만 탄탄한 연기력과 긴장감 넘치는 볼거리, 그리고 아기자기한 코믹함을 제공함으로써 관객들 시선을 사로잡는다. 분업으로 전문화되고 세련된 도둑들은, 비주얼에 다양한 팬층까지 확보하여 흥행몰이에 성공할 것 같다.
간단 명료한 대사들이 귀에 속속 꽂힌다. 그리고 개성강한 배우들의 각기 다른 캐릭터에 빠져 보는 재미로 이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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