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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소름끼치도록 잔인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낸 '후궁'

 

꼭 봐야지 하는 영화가 있으면 나는 혼자서 조조할인 시간대를 이용하는데, 그 시간대엔 몇명 안되는 관객으로 말미암아 실내는 썰렁한 기운이 돌기 마련이다. 그런데 '후궁'은 그렇지 않았다. 홍보효과 때문인지 노출수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의외로 관객들이 많아 좀 놀랐다.

 

'후궁:(제왕의 첩)'

전체적인 분위기가 음산하고 살벌하며, 잔인한 장면으로 인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애욕과 권력을 향한 욕망을 소름끼치도록 적나라하게 드러낸 궁의 암투극을 그린 영화 '후궁'은, 등장인물을 제외한 궁궐의 분위기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픽션사극이라는 전제하에 봤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봐 온 눈에 익은 궁궐 배경이 아닌 탓도 있고, 대비와 중전의 복장과 더불어 머리모양과 궁내부의 색감까지도 심하게 이질감을 줬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연상되던 영화와 드라마가 있었는데, 화연을 둘러싼 권유와 성원대군의 삼각관계에서는 '미인도'가 떠올랐고, 권력자에 의해 희생되는 불쌍한 인물들을 볼 때는 최근에 본 '돈의 맛'이 떠올랐으며, 수렴청정하려는 대비의 모습에서는 현재 방영중인 '인수대비'가 겹쳐졌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이, 권력이, 사람을 미치게 하고, 그 늪에 빠지면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나약한 이성과 강한 욕망에 사로잡힌 우리 자화상만이 남음을 보여준다. 죽음의 공포를 체험한 자의 복수심 또한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인간의 잔학상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소름돋는 경험을 시켰다.

 

l.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빠진 사춘기 소년같은 성원대군

 

 

임금이라는 타이틀도, 권력도, 자기를 보호하려 애썼던 어미(대비)의 사랑과 관심도, 다 외면하고 오직 한 여인 화연에게 향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는 마마보이형 대군이 무척 안쓰러웠다. 어떤 이는 이 역할을 맡은 배우 김동욱이 배역과 잘 매치가 안된다고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었다.

숨 죽이며 때를 기다린 모진 세월을 지킨 대비의 아들로, 첫눈에 반해버린 화연을 향한 불타는 욕정을 누르며 자신의 마음 가누기도 힘들어하는 나약한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

 

 

아들(성원대군)이 마음에 품은 여인이 화연인 줄 알면서도, 이복형의 아내이자 형수로 만들어 버린 비정한 엄마(대비)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대군의 순정과 갈등이 몹시 애처로왔다.

결국 그는 화연에 의해 변하고 수렴청정하는 엄마에게 맞서면서 화연을 품에 안지만, 여자의 변신은 무죄인가? 권력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궁의 법도가 승리한 것인가? 기구하게 죽음을 맞는 가엾은 인물이다.

 

l. 넘보면 안될 상대를 사랑한 죄로 내시가 된 권유 

 

 

화연의 아버지(안석환) 신참판이 곤경에 빠졌을 때 도움을 준 권유를 집안에 들인다. 그리고 참판은 아들겸 신복처럼 지내기를 원했으나, 화연과 권유는 연인사이로 발전하고 궁에서 혼인첩지를 받은 화연을 데리고 도망을 시도했던 권유는 고자가 된 몸으로 내시가 된다.

배신감과 복수심을 품은 권유는, 대비의 수족인 윤대감의 수하가 되어 화연이 남편(임금)과 아버지가 죽자, 어린 아들과 함께 목숨에 위협을 느끼고 권유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차갑게 외면한다.

그러다가 화연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어린아들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예전 감정을 되찾아 화연을 돕는다.

 

ㅣ. 기구한 운명의 두 여인

대비와 화연의 삶이 너무나 비슷하다. 역사에 이런 운명의 여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임금은 정실부인외에 첩으로써의 후궁도 많이 거느렸고, 정실부인이 죽으면 또 다시 혼례를 치뤄 후비를 두므로, 구중궁궐의 권력구도는 늘 긴장되고 살벌했다.

이러한 틀 속에서 살기 위해 권력이 필요했고, 그 권력을 잡기 위해 피내음을 맡을 수 밖에 없었던 두 여인의 삶을 들여다 본다.

먼저 권력을 잡기 위해 발톱을 드러낸 대비 

 

 

성원대군의 어미인 대비도 계비로 들어온 여인으로 아들이 어렸을 때 화재로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이 또한 권력자에 의한 위협이었음을 알고 있던 대비는, 아들을 왕좌에 앉히고 권력을 잡기 위해 왕을 죽이려 계략을 짰고 목표를 이룬다. 거친 풍파를 견디고 이겨낸 강인한 대비역을 맡은 배우 박지영씨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이 영화에서 빛을 발한다. 소름끼치도록 너무 잘 어울린다. 

임금이 된 아들도 못마땅하면 가차없이 뺨을 치는 무서운 엄마는, 누릴 수 있는 권력의 맛을 맘껏 누리며 호령하다 결국에는 제 발등을 찍는 인물로 전락한다.

 

살아 남기 위해 냉정하게 변하는 화연

 

 

성원대군과 권유, 화연을 향한 두 남자의 애틋한 마음과는 달리 화연의 내심은 무섭게 변한다.

권력에 의해 희생된 남편과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알았고, 그녀와 어린 아들의 목숨까지도 위태롭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에 의해 변해야만 하는 화연의 처지와, 순정을 바친 두 남자의 사랑이 짠하게 다가왔다.

 

성원대군의 어미인 대비도 처음부터 강인한 여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화연처럼 그저 어린 아들과 목숨이 보장되기만을 바랐을 터인데, 권력을 먼저 쥔 자들에 의해 위협을 느끼면서 냉정하게 강하게 변했을 것이기에 대비도 화연도 그리고 권력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이 다 가엾다.

어린 자식을 지키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권력을 잡아야만 하는 비정한 궁의 암투극 소용돌이에 휘말린 궁궐의 삶이 감옥처럼 느껴져 답답하고 안타까웠으며, 허구와 사실을 넘나드는 픽션사극이긴 하나, 근친상간이란 소재와 특히 대비의 낯선 머리모양은 영화감상에 방해요소가 되기도 했다.

 

ㅣ. 잔인함과 솔직함의 극치를 보여 준 영화

 

영화 '후궁'에서 보여준 고문장면외 몇몇 장면은 그야말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매우 놀랍고 끔찍하여 공포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너무 솔직해서 소름돋기도 했는데... 드라마에서 잠깐 언급되긴 했어도 이렇게 영화를 통해 왕과 왕비의 첫합방 모습이 연출된 영화는 아마도 '후궁'이 최초일 것 같다.

후사를 바라는 대비와 신하가 문밖에 서서 합방의 순서를 지시하는 데, 사생활이 보장되어야 할 정사까지도 궁중의 법에 의해 간섭받아야 하는 왕과 왕비의 처지가 너무 솔직하게 드러나 슬프고 애처로왔다.

왕도 자유인이 아니었고, 권력을 쥔 강자라고 해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영원한 강자가 없도록 권력은 변덕을 부리며 주인을 바꾼다. 그리고 피냄새로 포장한 잔인성이 파격적인 노출과 정사신을 묻어버린 영화 '후궁'의 여운은 나를 심란하게 만들더니궁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과 권력쟁탈전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헤아려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