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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자칭 미쓰GO2의 변신은 탐정소설 탓일까? 영화 '미쓰GO'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메마른 대지를 안타까워하며 전국민이 애를 태우며 기다린 비였기에 무척 반갑고 고마웠다. 다음날 아침에도 이어져 모처럼 우산속에서 빗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어 설레기까지 했다.

 "여보 오늘 비가 내리니 또 외출하겠네^^"
 "물론이지. 얼마나 기다린 빈데."

20년 넘는 세월을 부부로 살다보니 남편이 이제 나의 취향을 먼저 알아준다. 고맙다.

나는 우산속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듣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비(폭우나 소나기는 제외)가 내리는 날 외출하는 것을 즐긴다.

 "어디 갈건데?"

 "글쎄... 특별히 갈 곳은 없고... 오늘 영화보러 갈거야."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남편은 만원권 한장을 내밀며

 "울마나님, 팝콘 사먹으며 영화보고 오셔."

한다.

 "내남편 자격있네. 이제 팝콘 사먹으라고 용돈까지 주고^^"

 "함께 못가서 늘 미안하지."

 "ㅋㅋ 알면 됐어."

성격도 완전 반대고, 취미도 같은 게 없지만 우리 부부 별탈없이 살아내는 게 나 스스로 생각해도 참 아리송하면서도 대견스럽게 여겨진다. 이점 친정엄마도 인정하는 바다.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외출하지 않고 이번 주말은 온종일 집안에서 뒹굴려 했다. 왜냐하면 지난 주말 서울 다녀와서 좀 무리했던 피로가 아직 덜 풀린 것처럼 개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땐 비가 오면 목적없이 무작정 시도하는 외출이었건만, 어느해부턴가 목적없이 거리로 나서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면서 망설이게 되는데, 마침 영화라도 볼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음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구 쓸데없는 서론이 너무 길었네^^*

 

영화 '미쓰GO'를 선택한 이유는, 명품조연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는 점과, 남성들 속에 홀로 낀 여배우 고현정이 어떤식의 활약을 펼치는지 궁금했다.

 

 

꿈은 탐정만화가지만 지금은 먹고 살기 위해 순정만화를 그리고 있는 천수로(고현정)는, 사고로 바다에서 부모님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상처때문에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인물이다.

 

500억짜리 범죄에 휘말리게 된 천수로.

배달주문전화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그녀, 또 다시 혼자 지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함께 지내던 룸메이트 동생이 일본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홀로 남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두려움으로 떨며 긴장하다가 약을 떨어뜨렸을 때, 수녀복장을 한 의문의 여인이 나타나 도와준다.

어눌하기만 한 수로는 은혜를 갚겠다고 수녀의 마음을 전하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겠다고 자처한다.

난 의심이 들었다.

배달주문도 스스로 못할 정도로 소심한 그녀가 한번도 본 적 없는 남자를 찾아가 수녀의 마음을 대신 전달해 주겠다니... 더구나 배달장소가 집이 아닌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나섬이 의아했다. 순진한 건지 무모한 건지 수녀의 손톱에 칠해진 화려한 매니큐어가 거슬리지 않았나 보다. 

순진한 척 속아주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천수로의 반전이 있을거란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어떤 용기인지 호텔까지 찾아갔고, 인기척도 없는 호텔방까지 들어간다. 나로써는 그녀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슴과 등에 칼을 맞은 시체를 보게 되고, 뭔지 모를 사건에 연루되어 위기에 처했음을 감지한 천수로는 호텔을 빠져나오기 위해 기지를 발휘한다. 여기서 잠깐!

조폭의 똘마니들은 어쩌면 한결같이 바보스런 캐릭터인지, 날렵하게 두뇌를 회전시키는 주인공과 대조를 이루는 장면을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보여줌으로써 뻔한 설정이 좀 실망스럽기도 했다.

 

 

산바닥을 주름잡는 조폭들의 범죄거래에 말려들면서 그녀의 삶이 변함을 보면서, 내 상상력은 날개를 펼쳤다. 탐정만화를 그리기 위해 탐정소설에 흠뻑 젖은 천수로 스스로가, 자신을 미쓰Go2를 자처하며 변신하므로써, 소심했던 모습에서는 드라마 '봄날'에서 보여준 '서정은'을, 범죄자를 소탕하도록 작전을 이끈 그녀에게선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이 연상되면서 속편을 염두에 둔 맛보기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그냥 밋밋한 그녀일리가 없지.'

 

배경이 된 부산 여객터미널이 낯설지 않다. 몇 년전에 딸과 함께 부산 투어를 할 때 가본 곳이라 그런가 보다. 조폭영화는 왜 부산을 배경으로 자주 삼을까?

영화 '부산'이 떠올랐다. 영화'부산'도 거친 영화였다.

영화 미쓰GO에서 뜻밖의 반전 인물이 또 한명 등장하는 바람에 나의 상상력이 힘을 잃었는데, 천수로의 치료를 돕는 의사가 공범으로 등장하여 좀 놀랐다.

 

천수로의 운명을 바꾼 5명의 남자들.

나는 명품조연배우들이 총출동한 영화라서 관심이 끌렸다. 

 

 

빨간구두(유해진) - 구두에 피 마를 날 없는 냉혈한 형사

아무것도 모르는 천수로가 제 2의 미쓰GO로 오해받으며 범죄조직의 거래에 휘말렸다고 판단한 빨간구두라는 별명을 가진 형사(유해진)가 그녀를 보호한다.

자장면 곱배기를 그릇채 흔들어서 섞는 빨간구두의 특이한 모습을 천수로가 흥미롭게 지켜본다. 나 또한 무척 흥미로왔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꼭 한번 따라해 보리라 생각했다.


 

소형사(고창석) - 워낙 말더듬이 심해서 대사가 별로 없어 속을 알수 없는 인물. 

대사도 몇마디 없지만, 어찌나 말을 더듬는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말은 상대배우가 눈치채고 대신해 줄 정도다. 말더듬이 역이 정말 실감나 안타까우면서도 코믹했다. 

성반장(성동일) - 허당 부하들을 거느린 비리형사역을 맡은 배우 성동일씨의 여유있는 능글거림은 너무 느끼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성향이 잘 농익은 연기는 언제봐도 리얼하다.


 

사영철(이문식) - 마약조직 보스지만 무식한 가벼움으로 인해 똘마니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큰조직에서 독립하여 이제 막 두목이 된 듯한 어설픈 언행이, 하룻밤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부는 보스같은 분위기를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촐싹거림이 잘 어울린다. 
백봉남(박신양) - 좋아하는 야구에 대해 가오 잡는 범죄조직 최대 갑부로 등장한 박신양씨는 범죄조직의 보스역임에도 불구하고 멋져 보이면서 영화 '약속'을 상기시켰다.

 

 

천수로가 갑작스럽게 겪은 그간의 일을 벽에 만화로 그려놓았다. 이 만화를 본 빨간구두는 감동하는 것 같았다. 나는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이장일(이준혁)이가 김선우(엄태웅)를 죽이는 장면을 최수미(임정은)가 그림으로 표현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사진이나 글을 대신할 수 있는 그림의 위력을 다시 한번 더 되짚어 보았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다 팔을 다친 빨간구두의 상처가 염려된 수로에게서 연민을 느끼게 되는 빨간구두의 심적인 변화앞에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아픔을 읊조린다.

 "나도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표현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녀가 단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면 꼭 이성간의 애정이 싹트게 된다.

거친 남성들이 우글거리는 영화 미쓰GO에서도 이런 평범한 진리를 그대로 드러낸다.

평범하지 않은 개성강한 외모가 남달라서 로맨스가이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유해진이 천수로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상대배우로 출연했다. 참 어지간히도 인물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런대로 남자의 순정을 말없이 잘 표현한 것 같다. 특히 쉰세대인 내가 볼 때엔 은근한 로맨스로 표현된 것이 흡족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실적인 화면에 노출되어 있는 세대라서 이 둘의 관계를 로맨스라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하면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천수로와 빨간구두의 로맨스장면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자칭 미쓰GO2로 변신한 그녀에게 갖게 되는 기대감

옷가방인 줄 알고 의사한테서 받은 가방이 돈가방으로 둔갑하고, 비리형사들은 단결하여 돈을 손에 넣자 천수로를 죽이려 배에 태운다.

결박을 한 후 바다에 빠뜨리려 할 때 반항을 하다가 자진해서 물속에 뛰어든 그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맞게 되고, 장애를 극복한 모습으로 살아서 배위에 오른다. 그리고 천수로의 변신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탐정만화를 그리는 만화가가 되고 싶은 그녀는 수천권의 탐정소설을 읽은 덕에 아이디어로 발휘한다. 가짜돈에 가짜마약거래를 진짜로 바꿀 수 있음을 제안하는 그녀의 연기와 작전에 비리형사들이 속아넘어간다.

 "파리가 꼬였다 원래 돈은 다 내껀데..."

라고 할 땐, 천수로가 진짜로 사립탐정이 아닐까? 혹은 다른 지시를 받은 형사쪽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등 의심이 자꾸 생겼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천수로가 대범하게 변함을 보고, 감독이 배우 고현정씨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고민 많이 했을 거란 생각을 해보았다.

위기대처능력으로 봐선 그녀가 평범한 만화가는 아닌 것도 같은 뉘앙스를 자꾸 풍기는 것 같아 의구심이 들었던 영화다. 

 "마음의 변화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어설프거나 혹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흘리거나 진짜로 코믹해서 웃게 되는 영화로, 그저 잔잔한 웃음을 맛보고 싶은 분에게 권할 만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