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처음 구입한 수건
방학을 맞아 집에 온 아들이 욕실에 걸린 수건을 보더니
"엄마, 수건 샀어요?"
하고 묻습니다. 살림살이에 관심도 없던 아들이 물으니 신기했지요.
"으... 근데 어떻게 알았어?"
"표가 나잖아요.^^"
우리 대화를 들은 딸이 욕실로 향합니다. 그리고는
"ㅋㅋ 나도 알겠다 뭐. 울엄마 모처럼 돈 좀 썼네. 뭔일 있었어?"
"그래 뭔일 있었다. 너그들이 수건 다 가져가니 집안에 제대로 된 수건이 없어서 샀다..."
"잘하셨어요."
아들은 간단한데, 울딸은
"엄마 우리집에 제대로 된 수건은 예전에도 없었어.ㅎㅎㅎ"
"야가 무슨소리하노. 좀 괜찮은 수건은 너그가 다 가져가서 그렇지..."
"엄마는 우리집 수건만 보니까 잘 모르는 모양인데... 친구들 수건하고 내 수건의 차이점이 뭔지 알아? 친구들 수건은 이 새 수건처럼 아무글자가 없는데, 내 수건은 한결같이 다 무슨 글자가 찍혀있다는 거야. 오빠는 어때?"
"ㅎㅎㅎ 나도 그래."
"그게 어쨌다는 건데..."
"엄마가 말하는 새 수건과 내가 아는 새 수건의 차이를 말하는 거야.^^"
결혼 24년째가 되도록 그동안 한번도 제가 수건을 구입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아이들과의 대화로 깨달았습니다. 수건을 굳이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될만큼 시시때때로 무슨 행사다 기념이다 개업이다 등등...이 찍힌 수건이 공급되었던 거 같습니다.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댁의 집은 어떻습니까?
우리아들과 딸의 말에 의하면, 객지생활로 수건을 챙겨나가기 전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활하면서 보니 친구손에 있는 수건은 말끔한데 비해, 자신의 수건에는 한결같이 행사나 기념에 동원된 글귀가 찍힌 수건이더라는 것을 알았답니다.
"엄마, 그때 알았어. 아~ 저런 수건도 있구나!^^"
"ㅎㅎㅎ"
수건을 돈주고 산다?
어쩐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번에 어쩔수없이 구입하긴 했지만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4년전 울친정엄마는, 저 시집보낼 때에 글자가 찍힌 행사용 수건을 알록달록 색깔별로 모아둔 것을 한장씩 돌돌말아 이쁘게 박스에 담아 주셨습니다. 그 시절 라면박스에 가득채운 수건이었으니 꽤 많았습니다. 그 수건이 낡아서 걸레가 된 후, 버려지기를 수도없이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부부 삶을 통해 또 다른 행사용수건들이 채워지는 바람에 수건 살 기회도 없었을 뿐더러, 구입에 대한 생각조차도 전혀 하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행사용수건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었기에 별 생각없이 잘 사용했던 거구요. 만약에 제가 행사용 수건이 지겨웠다던가 싫었다면, 아마도 이쁜 천을 따로 대어서 변신을 시켜 사용했을 테지만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기에, 우리아이가 객지(대학교)로 떠날때에도 별 생각없이 울집에 있는 수건 중에서는 그래도 괜찮은 수건으로 6~7장씩 챙겨주었던 거구요.
이렇게 챙겨주고 나니 집안에 남은 수건은 몇장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남겨진 수건 꼴이 거의 걸레수준이 되어 거슬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수없이 수건을 구입했던 것인데... 우리 애들은 제가 수건을 구입한 것을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자신이 느낀 이야기를 털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그렇다는 이야기로 끝났는데, 울딸은 속으로 조금 창피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는군요.
"딸~ 다음에는 이걸로 챙겨라."
"당근이죠. 헤헤헤 그런데 엄마, 이왕에 사는거 한가지색으로 통일감을 주지.. 촌티나게 이게 뭐야"
"한가지색만 사용하면 새로운 느낌이 없잖아. 대신에 통일감은 줄무늬로 했잖아."
"아 저 줄무늬가 나는 더 싫은데..."
"나랑 생각이 다르네. 엄마는 수건 접었을 때 줄 맞추는 게 좋아서... 싫음 말구..."
"알았어요. 생각할수록 신기하네. 엄마가 수건 살 생각을 하다니...ㅋㅋ"
"없으면 사야지. 너 자꾸 그럴래..."
딸은 우리집에 행사용 수건이 아닌, 구입한 수건이 마련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 계속해 저를 놀렸습니다.
"우리집에도 이런 수건 쓸 줄 아는구나^^"
저 말고도 많은 주부들이 수건을 돈 주고 사서 쓴다는 거 생각못하고 사는 가정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울아들과 딸의 친구엄마는 자녀를 분가시키면서 새 수건으로 장만해주는 센스를 발휘한 것일테구요...
딸의 별난 반응을 보며, 우리딸 시집보낼 때는 울친정엄마처럼 했다간 볼멘소리 듣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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