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를 냈다는 사실을 숨기고 집을 나선 김순경아저씨는 마땅하게 갈 곳이 없습니다. 더구나 아침출근에 저녁퇴근이 아니라 24시간 근무후 다음날 아침에 귀가를 해야하는 상황이라 더 난감합니다.
공원에 머물던 많은 어르신들이 귀가하고 홀로 남은 김순경아저씨 앞으로 10대 청소년이 다가와서 담배심부름을 부탁합니다. 참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실제로 이런 겁없고 무례한 학생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선심이라도 쓰듯이 담배를 사다주면 한개비 주겠다는 당돌한 아이들을 보고 망연자실하다 훈계하던 김순경아저씨를 보면서 저는 긴장했습니다. 친정아버지가 겪으셨던 일이 떠올라서.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신 울친정아버지, 예순을 넘기며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아침이면 아버지는 집을 나섰다고 엄마가 전했습니다. 우리가족은 아버지가 어디 가시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혼 후라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집 근처 공원에 가셔서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고, 때론 친구분들과 놀러 다니시기도 하시다가, 귀가하시던 아버지는
"남자는 놀아도 밖에서 놀아야지 집안에서 빈둥대면 안된다."
는 생각이셨고, 또한 엄마에 대한 배려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흙투성이 옷차림으로 귀가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날 이후 친정엄마는 외출하는 아버지를 걱정하며 당부한 것이
"당신 몸을 생각해서 무례한 청년을 보더라도 못본척 하세요."
가 되었는데 아버지의 올곧은 성격에 대한 주의말씀이었다고 하시며 털어놓으신 사연은 이렇습니다.
공원에서 또래분들과 놀고 계시는데 한 젊은이가 담뱃불을 빌리자면서 아버지 옆에 계시던 어르신께 다가선 태도가 아버지눈에 매우 불손해 보였다고 합니다. 이를 본 아버지께서 훈계를 하자, 청년의 말투는 더 거칠게 변했고 옥신각신하다가 주먹이 오가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친구분들의 신고로 경찰이 와서 일은 마무리되었지만, 끝내 젊은이는 자신의 무례한 태도에 대한 반성이 없었고, 아버지는 예의없는 젊은이에 대한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으셨다고 하십니다.
친정아버지도 담배를 피우셨으니 성인이 된 오빠나 동생에게 금연하라고는 하지 않으셨지만,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한 주의는 늘 당부하셨던 말씀을 저도 기억합니다.
* 길에서 담배피우지 말것.
* 아무리 모르는 어른이라고는 하나 자신보다 연장자앞에서는 절대로 담배피우지 말것.
*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지 말것... 등
오빠와 동생은 금연과 흡연을 반복하다 금연에 성공했습니다.
친정아버지는 경찰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칠 수 없었던 젊은이의 무례한 태도를 지적하시다 봉변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드라마상에서 경찰로 근무하다 사직서를 낸지 얼마되지 않은 김순경아저씨가 청소년에게 훈계를 하려고 할 때 제가 긴장한 이유는, 친정아버지가 겪은 일을 떠올리며 숫적으로 밀리는 상황이라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까봐 조마조마했기 때문입니다.
친정아버지는 예전에 연세상으로 일선에서 물러나셨음을 가족들과 공유하셨고, 집안에 머물게 되면 게을러지는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매일 외출을 선택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애잔함을 느끼게 했는데, 우리 주변에 보면 김순경아저씨처럼 퇴직한 사실을 숨기고 일터로 향한다고 하고선, 공원을 배회하는 아버지들이 많은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수상한 삼형제'의 김순경아저씨는, 노점상 할머니가 감사의 마음으로 주신 귤 2개를 건네받는 모습이 특별감사반에 포착되어 섬으로 발령이 났고, 자부심에 상처를 입은 김순경아저씨는 사직서를 냈습니다. 남편이 사표낸 사연을 모르는 전과자여사는, 거침없이 대꾸를 하지요.
"퇴직하면 손 붙잡고 놀러 다니자"
는 남편에게,
"남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퇴직한 뒤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남자들 보면 끔찍하다. 나 당신이 그러면 이혼해 버릴 거다."
이혼?
집안에 머문다고 이혼이라... 며느리구박으로 일과를 보내다 살림을 하게 된 전과자여사의 이 같은 발언에 김순경아저씨도 놀랐겠지만 저도 놀랐으며 기가 막혔습니다. 언젠가는 퇴직을 하게 될터이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일인데... 집안에 머물면 이혼? 그래서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남정네들이 공원이나 길을 배회하게 되는 것인가 봅니다.
울친정아버지... 어쩌면 스스로 외출을 선택하신 것처럼 위장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성격상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여겨지지만) 문득 들어 코끝이 시큰해졌고, 먼훗날 내 남편이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저 자신도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서실에서 공원으로... 식당으로... 시간 보낼 공간으로 적절한 곳이 없는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김순경아저씨는 편의점에 머물다 셋째아들 이상을 만납니다. 부자간의 뜨겁고 애틋한 포옹이 찡하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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