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새것이 몇개 있는데 가져가서 사용해라."
"엄마가 사용하세요. 저는 집에 있는 것만 해도 돼요."
"늙은이가 뭐그리 많은 살림이 필요하겄냐. 나도 있는 것만 해도 넘치는데..."
"엄마가 사용하실 것도 아니라면 왜 샀어요?"
"몇년된기라......"
흠칫했습니다.
'아~ 사연이 있는거로구나.'
작년 여름, 결혼도 하지 않은 막내동생이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가는 바람에 엄마앞에서는 말조심을 해야하는 것을 잠깐 잊었습니다. 사람에게 망각이란 것이 존재함이 아쉽기도 하지만, 반대로 감사하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슬픈 일을 기억속에 계속해서 저장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아픔이 될것이니까 말입니다. 어느새 엄마의 두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엄마, 울지마요. 가져가서 제가 사용할께요. 막내주려고 준비했나본데 남자한테 뭐 이런 살림살이를 주겠다고 준비하고 그래요. 제가 사용하면서 녀석을 미워할끼구만..."
막내남동생과 단둘이서 함께한 시간이 많아서 우리 4남매 중에서도 엄마와 막내사이는 좀 각별했었기에 막내며느리는 멀리있는 딸이(저) 샘낼 정도로 가까이서 잘 지낼끼라고 기대도 컸었건만, 녀석은 그 소망을 앞두고(금년에 결혼할 예정) 지난 여름에 갑자기 떠나갔습니다. 오빠네서 차례를 지내기에 홀로 계신 친정엄마를 때마다 모시고 갔다가 모시고 돌아왔던 막내의 존재는 남편(친정아버지)보다도 더 소중하고 가슴 아프게 엄마를 애달프게 합니다. 그 녀석에게 주려고 보관했던 것이었나 봅니다.
"이번 설에는 참 적적하더구나. 덩치큰 녀석이 둘이나 빠졌잖아. 막내도 빠졌고 큰손주도 군대가서 그자리에 없으니 더 쓸쓸했지."
엄마를 울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저는 목소리에 톤을 높이고 짖궂게 질문합니다.
"그래서 엄마 울었어?"
"안울었데이. 혼자있을 때나 울지. 주책시럽게 사람들 모인 곳에서는 우짜던둥 참아야제."
"잘했어 엄마. 오빠도 있고 동생도 있고 며느리와 손주들도 있는데 막내생각에 울고 그러면 보는 사람들이 서운타고 할끼다. 내년이면 오빠네 둘째도 군대가게 되면 더 텅 빌테니 적적해지는 마음단속 잘 하셔야겠슈^^"
"며칠전에는 혼자있는데 눈물이 주루룩 나더라. 너거 아부지 생각은 별로 안나는데 막내가 생각나서..."
"우짤끼고, 녀석의 명이 고것밖에 안되는걸."
저는 일부러라도 냉정하게 표현을 합니다. 더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으시지만 엄마도 저도 속으로 울음을 삼키며 녀석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원망하는 마음이 쪼꿈 남았습니다.
친정의 막내동생은 엄마에게 참 다정스럽고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우리 3남매가 볼때에 엄마의 의견이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막내는 엄마의 의견에 무조건적으로 찬성하던 엄마편이었습니다. 그런 녀석을 갑작스럽게 보냈으니 엄마마음이 어떠할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울엄마, 막내가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마음한켠이 불쑥불쑥 아픔으로 애가 탑니다. 아픔이 밀려오지만 우리 모녀는 울지 않았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에 녀석을 떠올리며 엄마는 엄마대로, 저는 저대로, 각자의 마음을 다스릴 것입니다.
제가 친정에 도착하기 전에 엄마는 절에 다녀오셨다고 하십니다. 미혼으로 떠나간 막내를 기리는 엄마의 정성을 다른 세계에 있는 동생이 알고서 비록 아픔을 담은 엄마지만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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