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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생각

이번설에 사용한 남편의 네비게이션 용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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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님
설은 잘 보내셨나요?
저는 어젯밤에 돌아와서 오늘 늦잠으로 짧아진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설을 보내면서 남편이 보여준 다소 엉뚱한 면을 통해서 그간의 남편마음을 헤아려보는 여유를 가져봅니다.

명절을 맞으면서 일에 지치는 명절증후군과 더불어, 저나 저의 아랫동서의 경우는 우리 형님께서 주시는 얄궂은 말씀으로 인해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참으로 많이 받았던 세월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시절의 우리 형님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나 그 당시의 새댁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을 정도로 당신의 생각대로 억지로 만들어낸 수많은 오해로 우리의 생각이나 의견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일방적으로 몰아세우셨던 형님의 히스테리... 그로 인해 괴로워했던 저는 말로써 남편에게 다 쏟아내는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얻고자 했었던 지난날이 있었습니다.

흔히들... 명절증후군은 여자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남자들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표현을 안해서 그렇지 여자들 못지않게 속으로 혼자서 끙끙 앓고 있다는 사실? 결혼하신 님이시라면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따수운 시간을 한번 가져보시옵소서^^

혼자만의 생각에 너무 치우쳐 있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리하여 제 남편을 무척이나 괴롭혔던 저였습니다.
어떻게 괴롭혔나하면? 저는 대구에 있는 시댁에 명절을 준비하려 나서면서부터 명절을 보내고 친정을 거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의 시간을 온통 바가지? 푸념? 짜증?으로 감정이 사그라질때까지 폭발적으로 쉴새없이 재잘댑니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꽤 긴시간.... 혹은 차멀미로 지칠 때까지... 계속해서 어쩌구 저쩌구 마구마구 쏟아냅니다. 남편이 듣거나 말거나...
그런데 참 좋았던 점은 우리남편, 제가 무어라고 떠들던, 화를 내면서 감정을 쏟아내던지 간에, 절대로 그만하라던가 귀찮아하는 기색없이 그냥 가만이 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제풀에 지쳐서 그만하게 될때까지 열심히 운전을 하거나 간혹 휴게소에 들러서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무표정으로 사다 줍니다. 굉장히 화가 날 때는 이런 남편의 행동도 싫다면서 비난했습니다. 그래도 대꾸없이 가만히 둡니다. 철없는 아내, 언제까지 그러나 두고보자는 식으로ㅎㅎㅎ 그 세월을 견디었던 것이지요. 저는 살면서 두고두고 이점을 감사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이런 남편을 존경합니다.

이런 이야기의 일부를 방송인터뷰로 녹화하던 날에 조금 드러내 보였더니 PD님께서 남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내의 이런 호소에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뭐 이런 비스무리한 질문이었으며 또한
 "홀로 있고 싶다고 느끼거나 외롭다고 느꼈던 적은 없으셨나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셨나요?"
제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남편의 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잘하려고 노력하는 데도 형수님이 오해하여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심을 알았기에 누구편도 들지 못했습니다. 저도 답답하였지만 중간에서 전달하면 더 큰 오해가 생길 것 같아서 형수님은 형수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쏟아내는 말을 다 하도록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면 이야기를 하다가 수그러들곤 하더군요. 중간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형수님이나 아내가 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세월이 해결하리라는 믿음으로 꾹 참고 들어줬습니다.
 제 직업이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아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참 좋습니다. 짐을 실고서 화주가 원하는 곳에 실어다 줘야하는 장소가 전국곳곳으로 퍼져있기에 운전하면서 기분상한 것을 훌훌 털어버렸으니까요^^ 저라고 명절증후군이나 스트레스가 왜 없었겠습니까. 여자처럼 수다로 풀어놓을 입장도 아니고 누구편도 못들어주는 저를 남편으로 맞아 아내가 마음고생을 하고 있음이 안쓰러워서 무슨 이야기던지 들어주자는 컨셉이었지요^^"

가슴한켠이 뭉클했습니다. 표현하지 않았던 남편의 마음도 꽤나 무거웠던 시절이 있었구나~를 느끼면서 저는 예전에도, 지금도, 무슨 이야기를 두서없이 해도 그냥 들어주는 남편이 참 고맙고 존경스럽다고 인터뷰시간에 말했습니다. 요즘은 명절증후군도 많이 사라져서 예전처럼 푸념을 늘어놓거나 재잘거릴 소재거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돌아오는 차안에서 말이 없거나 잠을 청하면 심심하다고 무슨 이야기던지 자꾸 하라고 미소띤 얼굴로 저에게 보채는 남편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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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행한 저의 푸념을 들어주는 습관때문이었을까요?
이제는 오해없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시는 형님덕분에 명절에 대한 긴장감도 많이 줄었기에 푸념없이 고요히 대구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아 그랬더니 울 남편, 작년 가을에 최신으로 다시금 마련했던 네비게이션을 작동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늘 다녀서 다 아는 길을 가면서 네비게이션은 왜 작동시켜요?"
하고 물었더니
 "길안내 받으려고 하는게 아니라 심심해서."
 "심심하다구?"
 "항상 재잘대던 당신이 조용히 있으니까 심심해서 네비게이션 안내라도 들어야 덜 심심할 것 같아서^^"
 "뭐어요? 하하하 내가 명절을 전후로 해서 엄청나게 떠들면서 당신을 괴롭혔는데 그게 좋았나벼?"
 "그게 좋았다는게 아니라 옆에서 떠들면 졸립지도 않고 심심하진 않았기에 뭐 그런대로 운전하는데 나쁘진 않았다는 거지 뭐 ㅎㅎㅎ"
 "조용해야 운전하는데 방해도 안되고 좋은거 아냐^^"
 "그건 초보가 집중해서 배울테고... 나야 뭐 고수니까 당신이 떠들어주는게 더 좋지^^"

ㅎㅎㅎ
이젠 넋두리거리도 푸념거리도 별로 없습니다. 고요하면 도리어 심심하다고 저의 재잘거림을 대신하여 네비게이션의 멘트나 혹은 라디오로 대신하고자 하는 남편.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심각하게 듣고는 문제해결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아내의 말을 중간에 막고, 해결책 강구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려고 했다가 도리어 아내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고 하소연을 한다는데... 아내는 문제해결을 해달라고 아우성치거나 바가지를 긁는 것이 아니라 풀때없는 집안의 이야기를 스트레스 풀듯이 마구 쏟아내는 것이니 우리 남편처럼 가만히 있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제 남편, 저의 많은 넋두리 혹은 바가지를 다 기억하느냐?  아닙니다. 전혀 기억하지 않으며 제쪽에서 보면 남편이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남편쪽에서는 우리 집안이야기 다 아는 내용을 되풀이하는 아내에게 귀만 빌려주는 역할로 옆에 있어준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아우성을 짓밟지 마시고 단순하게 받아주기만 하면 참 좋은 남편으로 칭찬받을 것입니다.

단지 자기는 귀만 빌려줬다고 표현하는 남편이 있었기에 저는 흐트러짐없이 남편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풀면서 "이보다 더 좋은 관계는 없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남편이 친구보다 더 좋은 동행인으로 제 옆에 존재함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제가 졸음으로 조용해지면 운전하는 남편도 함께 졸립다고 해서 옆에서 무슨 이야기라도 계속해서 해야한다는 것이 하하하 이제는 노동으로 여겨지니 앞으로는 저 대신에 네비게이션이 남편의 귀를 즐겁게 해줄테지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