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급하게 대구 큰댁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어서 내려갔다가, 몇년간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년 가을에 결혼한 질녀(형님딸)를 모처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형님을 통해 소식을 듣고는 있었지만, 명절때 오지 않아서 결혼 후 처음 만났기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참 오랜만이네. 너 결혼한 후 얼굴보기 무척 힘들어졌네. 명절때라도 좀 오지."
"앞으로는 그래야죠.^^"
"꼭 와. 네 신랑 제대로 좀 보자."
"예^^"
"O서방이 잘해주니? 술은 좀 덜 먹고..."
"예, 서로 조심해요. 이제 일년쯤 되니 요령이 생겨서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예요."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말안해도 알지^^"
"예."
질녀 남편은, 이혼남으로 술을 먹으면 술주정으로 폭력까지 행사하던 사람이라 우리 집안에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았기에 절대로 결혼은 안된다고 말렸지만, '자식이기는 부모없다'고 간절하게 원하는 질녀에게 형님과 아주버님이 항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술을 과하게 먹고는 우리질녀를 괴롭히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깨달으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졌습니다.
"시댁 어르신들은 어때?"
"어머님께서는 저를 볼때마다 고맙다, 미안하다고 하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좋으신 분이네. 그리고 사실 네가 좀 아깝지.ㅎㅎㅎ"
"그런가요?ㅎㅎㅎ 시집살이 같은 것은 없는데, 아버님과 남편이 의견충돌로 부딪히는 바람에 제가 중간에서 곤란할 때가 많아요. 화가 나면 남편이 시댁엘 안가려고 하고, 저도 못가게 해서 시부모님 보기에 죄송스러워요."
"O서방은 자기 부모니까 그렇게 해도 흠이 안될지 모르지만, 넌 아니잖아. 그런데도 못가게 해?"
"예. 이런 사정을 어머님께서 아셔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남편이 자기주장도 강하고 고집도 세요."
"강한 남편 덕분에 고부간의 갈등같은 건 없어서 좋겠네^^"
"예.ㅎㅎㅎ"
질녀와의 대화중에 막내질부(질녀의 손아래 올케)와 제 눈이 마주쳤습니다. 볼때마다 안쓰러운 우리 막내질부는,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이른 결혼에, 또한 최선을 다해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울형님(질부의 시어머니)의 마음을 충족시켜 드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불쌍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질부야, 네가 겪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우리(동서와 저)도 비슷하게 겪었기에 그 마음 다 안다. 힘내!!"
"질녀야~ 결혼한 여자로써 네 작은올케 심정 제대로 헤아려서 자주 좀 다독거려 줘라. 부탁한데이^^"
"예."
우리가 시댁에 아무리 잘해도 빛이 나지 않음은, 잘한 일은 당연히 착한남편의 몫으로, 서운하게 느낀 일은 남편이 했다고 해도 우리가 시켜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오해로 앞서시는 형님의 성격에 맞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실된 마음은 언제라도 알게 될거라는 자부심에 의지하여 묵묵히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행했는데, 정말 세월이 약이더군요. 이젠 무슨일을 하던지 긍정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니까요.^^
다만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렸다는 것이 좀 억울했지요.
이에 반해, 우리질녀나 큰질부는 별로 애쓰지 않고도 며느리로써 인정받는 데 수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 또래 대부분의 장남은, 부모님말씀에 조용히 응하는 편인데, 이 두 집안의 장남은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주장이 강하여 부모자식간에 의견충돌을 자주 겪은 탓에, 이미 부모님께서는 양보할 마음으로 뒤로 좀 물러나 있는 상황이 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별잡음없이 아들과 함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며느리가 고맙게 여겨짐을 눈치챌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때면 불공평함에 많이 서운해지기도 했던 인생의 선배로써, 결혼했을 때 이왕이면 빠른 시간에 인정받는 며느리가 되기 수월한 방법에는 며느리로써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너스로 남편의 역할도 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몇가지 정리해 봅니다.
불리한 조건
* 장남이다.
집안에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우리며느리 잘한다고 칭찬받기 힘듭니다. 내 아들이 장남으로써의 책임감으로 잘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 함께 살면 소홀해진다.
첫째던 둘째던 상관없이 가까이서 자주 보는 자식은 편안한 탓인지, 함부로 대함을 느낄 수 있지만, 멀리 떨어져 살면서 가끔 와서 용돈주는 자식에게 더 애틋함을 드러내는 경우를 봅니다.
* 부모님 말씀에 귀기울인다.
자식중에는 부모님 말씀에 긍정적으로 따르는 자녀가 있습니다. 며느리가 아무리 잘해도 표가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될 경우 남편이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며느리가 시켜서 그런가 하고 오해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 성장과정이 순했다.
부모님과 큰 마찰없이 성장했거나 아주 사이가 좋은 모자관계였다면, 결혼후 약간만 소홀해도 착한 울아들의 변화에 서운함을 느낍니다. 아들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 걸림돌이 되어 이런 경우도 빠른 시일내 며느리로 인정받기가 힘듭니다.
* 남편이 시댁일에 먼저 나선다.
당신 아들이 잘나서 그런 줄 알고 며느리를 무시하니 이 또한 힘듭니다.
* 외동아들이다.
부모님의 기대치가 높은 까닭입니다.
수월한 경우
* 성장과정에서 부모님 속을 많이 썩힌 아들
불효자와 결혼하면 며느리는 편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속상하게 하던 아들에게 별로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며느리가 평범하기만 해도 고맙게 여기게 되는 경우입니다. 형제가 많을 경우, 중간위치에 있는 아들이 대부분 자기 주장이 세기 때문에 장남을 꺼리게 되고, 둘째 셋째를 남편감으로 선호했던 시절이 있었지요. 요즘은 다들 외동이라 사정이 다르지만.
* 자기주장이 센 아들
부모님 말씀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쪽에서 빨리 체념하기 때문에 며느리 노릇하기가 편합니다.
* 능력이 부족해 보이는 아들
결혼 후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며느리보다 경제적, 혹은 일처리 능력이 부족할 경우, 시어머니가 도리어 며느리 눈치를 보게 된다네요.
* 집안일에 무관심한 아들
아들은 무관심한데, 며느리가 아주 조금이라도 집안행사를 챙기면 효과는 엄청날 것입니다.
집안마다 각기 다른 분위기와 시부모님의 성격에 따라, 위에 소개한 내용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일어나는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이상은 제가 겪었던 상황과, 주변에서 보고 느낀 환경을 떠올리며 두서없이 나열해 본, 저 개인적인 시선임을 밝힙니다.
위에 나열한 내용에 제 남편을 빗대어보니, 불리한 조건에서 성장과정이 순했다와 수월한 조건에서 집안일에 무관심한 편으로 골고루 한개씩 소유한 남편으로 드러납니다. 집안일은 제가 다 챙겼음에도 불구하고 순한 울남편의 몫이 되었고, 설령 서운하게 해 드린 점이 있다면 남편이 제가 부탁한 대로 하지 않아 전달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오해한 세월이 좀 길었던 세월의 서러움을 맛봐야만 했던 이유는,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로 볼때에 제가 남편보다 강해보였다는 선입견때문임을, 울형님께서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말씀하심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충 나열한 이 내용외에도 더 다양한 요소들이 많을 것입니다.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을 마무리할 즈음, 문득 떠오르는 생각으로는, 위에 열거된 사항이 우리 아이들 세대에는 아무 소용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독신이거나 결혼시기가 늦어지는 경향이 높아, 결혼해서 둘만 사이좋게 잘 살아줘도 고맙게 여기게 될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비록 우리세대는 마음고생을 했을지라도, 요즘은 거의 외동아들, 외동딸로 귀하게 키운 내자식을 생각하여, 시집살이를 대물림하기 보다는, 어떻게 지혜로운 부모가 되어 서로가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변화의 옷을 이미 입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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