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를 끌어안고 방바닥에 엎드린 남편의 등이 너무나 가엾고 슬퍼보인다. 그리고 화가 난다.
'왜 할말을 못하는가? 나보다 훨씬 편한 가족들이 아닌가. 또 나보고 하란 말인가?'
아들과 딸을 불러 아빠가 취한 모습을 보라고 했다. 아들과 딸이 이 의미를 아는지 이구동성으로
"어쩔수 없네요. 또 엄마가 해야죠.^^"
"이제 나도 좀 편하고 싶거든."
"그럼, 아빠의 저 모습을 엄마가 계속 참고 볼수 있으세요?"
"......"
"그건 아니잖아요. 아빠를 보호할 사람은 엄마뿐인 걸 아시잖아요. 또 나서야겠네요."
지난달의 일입니다.
큰댁의 형님이 수술을 받았습니다. 통증도 없이 찾아든 대장암1기 판정소식에 놀라 달려갔을 때, 큰조카와 작은조카를 본 제가,
"병원비 걱정말고 수술이 잘 되도록 기도 열심히 하자."
라고 했더니, 큰조카가 장난스레
"숙모, 백지수표 놓고 가세요^^"
농담으로 던진 말이지만, 큰댁의 사정을 아는지라 웬만큼 진심이 읽어졌기에 걱정이 되더군요. 그리고 형님은 수술을 하셨고, 퇴원을 앞둔 시기에 큰조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일단 병원비를 다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후에 모아진 금액을 돌려주겠다는 뜻과 함께. (모아둔 회비가 있고, 삼촌과 조카들도 있음)
100% 부담하기에는 예상밖으로 꽤 큰 금액이라 흔쾌히 다 쓰라고 할 수 없었던 우리부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돌아오리라..., 아니 비록 적은 금액이라 할지라도 가까운 사람들이 조금씩 동참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는 남편의 뜻에 동의했습니다.
사흘쯤 지났나요.
남편은 병원비를 치르고 바로 보고(?)가 들어올 줄 알았나 봅니다. 그런데 대구의 큰조카에게서 소식이 없자... 자신을 물주로 여기는 듯한 태도에 화가 난다고 짜증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바로 전화해서 물어보면 될 것을...
상대방에게서 전화가 올 것을 마냥 기다리며 끙끙 앓는 눈치입니다. 옆에서 지켜본 결과, 남편 성품으로 보아 절대로 스스로 먼저 물을 성격이 아닙니다. 특히 돈이 연관되면 상대방이 알아서 해주길 처분만 기다리다가 끝내는 그냥 써라가 되어버리는 남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상외로 큰 돈이니 남편의 마음이 편치않은 모양입니다. 저리두면 혼자서 끙끙 앓다가 몸살나는 남편이기에 제가,
"받지 말고 다 부담했다고 치면 안돼?"
"내가 무슨 돈버는 기곈줄 아나. 내년이면 애 둘이 대학생 되는데..."
복학할 아들과 대학신입생이 될 딸이 있습니다.
"그런 걸 뭐 알아주는 사람이 있나. 우리끼리나 알지. 이번 겨울에 당신 발목 재수술 할거라고 몇달 전부터 이야기했는데도 아무도 기억안하잖아. 그러니까 우리보고 돈얘기 하지. 나는 그 돈 없어도 괜찮아. 어차피 당신 재수술 시키려고 마음 먹었던 것이니까. 당신이 억울해서 그렇지."
"이번 일로 끝나면 괜찮은데... 또 이런 비슷한 일이 생기면 나만 쳐다볼 것 같아서 무서워서 그러지. 내가 맨날 이팔청춘도 아니고..."
남편이 화가 꽤 많이 났습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게 울것 같습니다. 불쌍해 보입니다. 뭐 늘 우리모녀는 남편이 불쌍하다고 하고, 우리딸은 저보고 이왕에 엄마가 나쁜사람 된 거 확실하게 아빠 방패역할을 못한다고 핀잔을 줍니다.
"친척들이 아빠한테 돈부탁하면 엄마가 없다고 거절하면 안돼요?"
"어른들 일에 넌 모른 척 해라. 아예 아무것도 없으면 몰라도 병원비로 쓰이는 건데 그러는 거 아냐."
"......"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울남편이 예민해진 것입니다.
동서가 수술했을 때도, 작은 조카의 아들이 수술했을 때도, 울남편이 흔쾌히 다 부담했습니다. 그리고 간혹 급히 쓸 돈을 부탁하면, 후에 받긴 하지만 남편이 해줘야 하는 상황을 여러번 겪었던 관계로 심기가 불편해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색도 하지 못하니 더 갑갑할 수 밖에요.
더구나...
정작 울남편이 발목부상으로 3개월간 일을 못했고, 모세혈관 확장으로 인한 객혈로 고생을 한 뒤에 간단하긴 했지만 수술을 하고 병원신세를 진 적이 있었건만, 아무도 우리의 경제를? 병원비를? 걱정해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참 단 한사람 울친정엄마만 빼고.
"여보 궁금하면 물어봐? 돌려줄 게 있는지 없는지..."
"기다려 볼꺼야."
"그럼 아프지 말던지... 지금 끙끙앓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데... 난 이번엔 절대로 안 나선다."
"한두번도 아니고 왜 대구에선 나만 바라보냔 말이야. 자랄때도 난 양보만 하고 컸는데..."
"오늘따라 왜그래? 그래도 받는 것보다 주는 입장이니 얼마나 다행이야. 알았어. 내가 알아볼께. 전화번호 줘. 힘들면 힘들다고 직접 말하면 될 것을... 아이고 내 신세야. 또 내가 나서야 되는거야. 울지마 내가 알아볼께."
"울긴 누가 울어?"
"뭐 울지 않지만 거의 울상인데 ㅎㅎㅎ"
"당신한테도 매번 미안하고..."
"여보 난 괜찮아. 당신이 돈벌어서 당신이 쓰는데 내가 뭐 말할 자격이 있나. 더 알뜰하게 하면 되지. 펀드로 까먹은 돈때문에 내가 더 미안하지.^^"
좋은 일은 남편이, 그렇지 않은 일은 제가 뒤에서 시켜서 하거나, 제 스스로 나서서 한다고 오해도 참 많이 받았던 세월인지라 억울했던 나날이 많았습니다. 착한 남편, 소극적인 남편과 함께 살다보니 제가 적극적으로 바뀔 수 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실부모한 남편의 환경상, 시어머니격인 큰댁의 형님한테 오해받고 싫은 소리 듣는 몫은 제 담당인 것이 저는 서러워서 이젠 웬만하면 남편이 다 나서주길 바랬던 것입니다만.
어쩔수 없이 제가 전화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백지수표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조금이라도 돌려줄게 있느냐고... 빨리 이야기해 줬더라면 울남편이 덜 고민스러웠을 텐데... 지금 끙끙대고 있다고...
"여보, 돌려줄게 있대. 반은 우리가 부담한다고 했어."
울남편, 제가 조카에게 끙끙대고 있다는 상황을 이야기했다고 삐쳤습니다. 조카한테 멋진 삼촌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매사에 남편은 좋은 입장에서, 저는 그렇지 못한 입장의 사람으로 비추어져 결혼전의 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 저를, 남편과 더불어 제자신이 가엾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될수 있으면 저도 그냥 넘어가고 싶은 심정이며, 생활인으로 너무 아둥바둥거리는 모습이 싫어져서 앞으로는 고상하게 우아하게 살고 싶은데... 울남편이 도와주지 않네요.
아주버님께서 어떤 책자를 통해서 알아 본, 우리 부부 궁합에 대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제 남편이 나무뿌리라면, 저는 흙이 되어 덮어주는 격』
이라 우리부부는 좋은 궁합이라고 하셨던 말씀과, 친정엄마가 결혼 전 보신 궁합에 의한 정보를 흘리시면서
『제가 남편내조를 잘하면 울남편은 신이 나서 편하게 일 잘할 사람』
그러시면서 무조건 제가 보듬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결혼 후 지금껏 이렇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얼마나 여린 울남편의 방패막이 되어야 할 지 알수 없으나, 저 기꺼이 울남편의 뿌리를 덮어주는 흙이 되어 남의 발아래 짓밟혀도 뿌리를 보호하리라 마음먹습니다.
잠깐 꿈을 꾸었지요.^^
울남편이 알아서 잘 하리라는... 하지만 또 불발로 끝남을 보면서 이젠 아예 제가 더 탄탄한 방패가 되어야 함을 느낍니다.
'왜 할말을 못하는가? 나보다 훨씬 편한 가족들이 아닌가. 또 나보고 하란 말인가?'
아들과 딸을 불러 아빠가 취한 모습을 보라고 했다. 아들과 딸이 이 의미를 아는지 이구동성으로
"어쩔수 없네요. 또 엄마가 해야죠.^^"
"이제 나도 좀 편하고 싶거든."
"그럼, 아빠의 저 모습을 엄마가 계속 참고 볼수 있으세요?"
"......"
"그건 아니잖아요. 아빠를 보호할 사람은 엄마뿐인 걸 아시잖아요. 또 나서야겠네요."
지난달의 일입니다.
큰댁의 형님이 수술을 받았습니다. 통증도 없이 찾아든 대장암1기 판정소식에 놀라 달려갔을 때, 큰조카와 작은조카를 본 제가,
"병원비 걱정말고 수술이 잘 되도록 기도 열심히 하자."
라고 했더니, 큰조카가 장난스레
"숙모, 백지수표 놓고 가세요^^"
농담으로 던진 말이지만, 큰댁의 사정을 아는지라 웬만큼 진심이 읽어졌기에 걱정이 되더군요. 그리고 형님은 수술을 하셨고, 퇴원을 앞둔 시기에 큰조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일단 병원비를 다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후에 모아진 금액을 돌려주겠다는 뜻과 함께. (모아둔 회비가 있고, 삼촌과 조카들도 있음)
100% 부담하기에는 예상밖으로 꽤 큰 금액이라 흔쾌히 다 쓰라고 할 수 없었던 우리부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돌아오리라..., 아니 비록 적은 금액이라 할지라도 가까운 사람들이 조금씩 동참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는 남편의 뜻에 동의했습니다.
사흘쯤 지났나요.
남편은 병원비를 치르고 바로 보고(?)가 들어올 줄 알았나 봅니다. 그런데 대구의 큰조카에게서 소식이 없자... 자신을 물주로 여기는 듯한 태도에 화가 난다고 짜증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바로 전화해서 물어보면 될 것을...
상대방에게서 전화가 올 것을 마냥 기다리며 끙끙 앓는 눈치입니다. 옆에서 지켜본 결과, 남편 성품으로 보아 절대로 스스로 먼저 물을 성격이 아닙니다. 특히 돈이 연관되면 상대방이 알아서 해주길 처분만 기다리다가 끝내는 그냥 써라가 되어버리는 남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상외로 큰 돈이니 남편의 마음이 편치않은 모양입니다. 저리두면 혼자서 끙끙 앓다가 몸살나는 남편이기에 제가,
"받지 말고 다 부담했다고 치면 안돼?"
"내가 무슨 돈버는 기곈줄 아나. 내년이면 애 둘이 대학생 되는데..."
복학할 아들과 대학신입생이 될 딸이 있습니다.
"그런 걸 뭐 알아주는 사람이 있나. 우리끼리나 알지. 이번 겨울에 당신 발목 재수술 할거라고 몇달 전부터 이야기했는데도 아무도 기억안하잖아. 그러니까 우리보고 돈얘기 하지. 나는 그 돈 없어도 괜찮아. 어차피 당신 재수술 시키려고 마음 먹었던 것이니까. 당신이 억울해서 그렇지."
"이번 일로 끝나면 괜찮은데... 또 이런 비슷한 일이 생기면 나만 쳐다볼 것 같아서 무서워서 그러지. 내가 맨날 이팔청춘도 아니고..."
남편이 화가 꽤 많이 났습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게 울것 같습니다. 불쌍해 보입니다. 뭐 늘 우리모녀는 남편이 불쌍하다고 하고, 우리딸은 저보고 이왕에 엄마가 나쁜사람 된 거 확실하게 아빠 방패역할을 못한다고 핀잔을 줍니다.
"친척들이 아빠한테 돈부탁하면 엄마가 없다고 거절하면 안돼요?"
"어른들 일에 넌 모른 척 해라. 아예 아무것도 없으면 몰라도 병원비로 쓰이는 건데 그러는 거 아냐."
"......"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울남편이 예민해진 것입니다.
동서가 수술했을 때도, 작은 조카의 아들이 수술했을 때도, 울남편이 흔쾌히 다 부담했습니다. 그리고 간혹 급히 쓸 돈을 부탁하면, 후에 받긴 하지만 남편이 해줘야 하는 상황을 여러번 겪었던 관계로 심기가 불편해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색도 하지 못하니 더 갑갑할 수 밖에요.
더구나...
정작 울남편이 발목부상으로 3개월간 일을 못했고, 모세혈관 확장으로 인한 객혈로 고생을 한 뒤에 간단하긴 했지만 수술을 하고 병원신세를 진 적이 있었건만, 아무도 우리의 경제를? 병원비를? 걱정해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참 단 한사람 울친정엄마만 빼고.
"여보 궁금하면 물어봐? 돌려줄 게 있는지 없는지..."
"기다려 볼꺼야."
"그럼 아프지 말던지... 지금 끙끙앓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데... 난 이번엔 절대로 안 나선다."
"한두번도 아니고 왜 대구에선 나만 바라보냔 말이야. 자랄때도 난 양보만 하고 컸는데..."
"오늘따라 왜그래? 그래도 받는 것보다 주는 입장이니 얼마나 다행이야. 알았어. 내가 알아볼께. 전화번호 줘. 힘들면 힘들다고 직접 말하면 될 것을... 아이고 내 신세야. 또 내가 나서야 되는거야. 울지마 내가 알아볼께."
"울긴 누가 울어?"
"뭐 울지 않지만 거의 울상인데 ㅎㅎㅎ"
"당신한테도 매번 미안하고..."
"여보 난 괜찮아. 당신이 돈벌어서 당신이 쓰는데 내가 뭐 말할 자격이 있나. 더 알뜰하게 하면 되지. 펀드로 까먹은 돈때문에 내가 더 미안하지.^^"
좋은 일은 남편이, 그렇지 않은 일은 제가 뒤에서 시켜서 하거나, 제 스스로 나서서 한다고 오해도 참 많이 받았던 세월인지라 억울했던 나날이 많았습니다. 착한 남편, 소극적인 남편과 함께 살다보니 제가 적극적으로 바뀔 수 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실부모한 남편의 환경상, 시어머니격인 큰댁의 형님한테 오해받고 싫은 소리 듣는 몫은 제 담당인 것이 저는 서러워서 이젠 웬만하면 남편이 다 나서주길 바랬던 것입니다만.
어쩔수 없이 제가 전화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백지수표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조금이라도 돌려줄게 있느냐고... 빨리 이야기해 줬더라면 울남편이 덜 고민스러웠을 텐데... 지금 끙끙대고 있다고...
"여보, 돌려줄게 있대. 반은 우리가 부담한다고 했어."
울남편, 제가 조카에게 끙끙대고 있다는 상황을 이야기했다고 삐쳤습니다. 조카한테 멋진 삼촌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매사에 남편은 좋은 입장에서, 저는 그렇지 못한 입장의 사람으로 비추어져 결혼전의 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 저를, 남편과 더불어 제자신이 가엾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될수 있으면 저도 그냥 넘어가고 싶은 심정이며, 생활인으로 너무 아둥바둥거리는 모습이 싫어져서 앞으로는 고상하게 우아하게 살고 싶은데... 울남편이 도와주지 않네요.
아주버님께서 어떤 책자를 통해서 알아 본, 우리 부부 궁합에 대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제 남편이 나무뿌리라면, 저는 흙이 되어 덮어주는 격』
이라 우리부부는 좋은 궁합이라고 하셨던 말씀과, 친정엄마가 결혼 전 보신 궁합에 의한 정보를 흘리시면서
『제가 남편내조를 잘하면 울남편은 신이 나서 편하게 일 잘할 사람』
그러시면서 무조건 제가 보듬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결혼 후 지금껏 이렇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얼마나 여린 울남편의 방패막이 되어야 할 지 알수 없으나, 저 기꺼이 울남편의 뿌리를 덮어주는 흙이 되어 남의 발아래 짓밟혀도 뿌리를 보호하리라 마음먹습니다.
잠깐 꿈을 꾸었지요.^^
울남편이 알아서 잘 하리라는... 하지만 또 불발로 끝남을 보면서 이젠 아예 제가 더 탄탄한 방패가 되어야 함을 느낍니다.
'잡다한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택시기사님은 어떤 승객을 가장 좋아할까요? (14) | 2009.12.12 |
---|---|
드로즈팬티 입은 남편, 화들짝 놀란 이유 (8) | 2009.12.12 |
동안(童顔)의 오빠로 인해 딸이 느끼는 비애감 (14) | 2009.12.01 |
시댁에서 내남편은, 어떤 유형의 아들이었나? (2) | 2009.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