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큰댁을 다녀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요즘은 일주일정도 지나면 형님(동서)의 그 애잔한 모습이 희미해지지만, 몇 년전까지만 해도 저는 명절이나 집안행사로 큰댁에 다녀오면, 짠한 후유증이 오래남아 아무도 모르게 저 혼자서 속앓이를 꽤 심하게 앓았습니다.
이유인즉, 울형님은 정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 서운한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시고, 생활의 터전으로 가야함을 아시면서도 조금만 더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미련과 애잔한 모습을 보이시므로 말미암아, 함께하지 못함에 대한 커다란 미안한 마음이 제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형님은 저와 20년 차이가 납니다. 꽃다운 20대 중반에 동갑내기 우리 시아주버님을 맞선으로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시할머니를 비롯하여 홀시아버님과 더불어 어린 시동생이 둘(울남편과 시동생)이나 있는 시댁으로, 도시에서 시골(현재는 이사하여 도시에 계심)로 오신 우리형님은 그야말로 3세대를 이룬 대가족의 맏며느리가 되었고, 마음고생 몸고생이 꽤나 심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어린 시동생이 말썽부리지 않고 잘 따라주었으며, 시아버지께서 며느리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기에 모든 시름을 잊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시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미혼의 두 시동생을 남겨둔채 시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장성한 시동생을 볼때마다 울형님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제 끝난 '솔약국집 아들들'을 보는 내내 저는 큰댁의 울형님이 떠올랐습니다.
시부모님 역할을 우리 아주버님과 형님이 하셨기에, 저나 동서는 어버이날과 생신날엔 남들이 시부모님께 하듯이 챙기며, 비록 함께 동거한 기간이 짧긴 했어도 분가시켜 주실 때까지 함께 살기도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노라니 저와 우리동서, 그리고 질부와 함께 집안의 크고 작은 행사시, 주방일과 손님접대를 하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주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짓는 저희의 이런 모습을 보시는 친인척분들은 우리 큰댁에 모이시길 좋아하셨습니다.
"주방에서 사이좋게 일하는 일꾼이 많아서 소 한마리도 거뜬하게 잡겠다.^^"
고 하시며 칭찬해 주십니다. 하지만 그간에 갈등은 꽤 겪었습니다.
많은 가족들 틈에서 시집살이를 하신 울형님의 경우, 혼기가 찬 시동생을 결혼시키긴 했으나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서운하다'는 어르신들의 간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시면서, 시동생(제남편)이 동서(저)에게 향하는 마음을 무척이나 서운하게 여기며 감정을 비치시기도 했고, 하물며 형님의 자녀가 새로 맞은 식구(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조차도 서러워하셨던 갈등의 시간을 겪을 당시, 저는 참 이해하기 힘들었던 형님의 감정이었는데... 이제 우리 형님의 그 나이쯤 되니까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당신의 희생으로 온가족이 평안하다면 당신 한몸 다 바침을 보람으로 알고 사신 형님입장에서는, 결혼한 시동생이 제 마누라 챙기는 것이 무척이나 서운하셨나 봅니다.
제가 명절때 친정가는 것도 못마땅하게 여길 정도로, 새로운 정이 옮겨가는 것처럼 피해의식이 꽤 심하셨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신께서 새긴 정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까봐서 전전긍긍하시는 모습은 지금까지도 여전하시지만 저는 그 심정을 헤아리기에 이런 울형님이 너무 안쓰럽습니다.
당신의 손길이 이제 일일이 닿지 않아도, 제 역할을 하고 사는 시동생과 자녀들의 걱정에서 벗어나 형님 자신만을 위한 생활을 조금이라도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찌보면 옥희여사님보다 더 힘들고 애틋한 세월을 꿋꿋하게 사신 울형님이신데,
"그래 내가 산 세월이 헛되지 않았구나. 나의 보살핌으로 잘 자란 시동생과 아들딸이 제 짝을 만나 별탈없이 잘 살고 있으니..."
당신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시면서 옥희여사처럼 밝은 미소를 기분좋게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충분히 그러실 자격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계실 울시아버지께서 당신의 어린 두아들을 울형님한테 맡기고 눈을 감으실 정도로 믿음직했던 형님이시니까요.
세대차이와 환경, 경험의 차이로 갈등을 겪긴 했으나, 울형님 가족을 위한 여인의 애틋한 삶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저희 친정엄마보다도 젊은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들지 못하시는 형님의 소심함이 너무나 애처로와 형님을 뵐때마다 마음한구석이 아픕니다.
힘들었던 시절을 추억하시면서 지금도 가끔 눈물보이시는 울형님의 여린 마음에 밝고 긍정적인 생각이 자리잡기를 기원하며, 질부와 상의하여 형님의 생활을 찾아주고자 노력중에 있지만... 형님은 아직까지도 가족걱정하시는 빛이 역력하십니다.
형님은 똑같은 공동체로 당신의 시선에 머물러야 안심이 되시는 염려증이 크게 자리잡아, 감히 당신자신을 위한 일을 만들지도 못하고, 행할 생각도 못하시는 것이 같은 여자로써 너무나 가엾게 다가옵니다.
'쟤네들이 나 살아있는 동안에 아무일 없이 잘 살아야 할텐데....'
옥희여사님의 또 다른 걱정의 독백이 울형님이 늘 하시는 걱정처럼 다가와 슬픈 여운을 길게 남깁니다. 내일의 걱정을 너무 앞서서 하시는 바람에 자꾸만 또 다른 걱정거리를 만들지 않으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울형님, 제게 심하게 마음고생을 시켰던 분이시긴 하나, 여자의 일생으로 형님의 삶을 챙겨보면 존경스럽기 그지 없을 정도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셨고, 희생을 감내하셨던 분으로써, 저와의 관계에서 미운정 고운정으로 다양한 교훈을 심어주신 분이십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희망한 밝은 내일을 꿈꾸시며 걱정에서 벗어나셨으면 좋겠습니다.
형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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