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컴퓨터를 켜니 바탕화면에 새로운 아이콘이 눈에 띄였습니다.
어제 늦은 밤 새벽까지 컴퓨터앞에 머물던 딸이 남긴 흔적의 내용이 궁금하여 클릭해서 읽던 중, 저도 모르게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대견함과 미안함에 마음이 아파서...
제가 올리는 블로그의 글을 볼때면,
"엄마의 감정신은 늘어지면서 흐려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간단하게 정리를 하면 훨씬 좋을 것 같아요."
라고 가끔 지적하던 딸이 쓴 자기소개서는 한 항목당 대여섯줄정도의 분량으로 정말 간단명료함에도 불구하고, 전하고자 하는 자신의 뜻은 야무지게 밝히고 있음을 보고, 저와는 대조적인 표현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항상 같이 생활하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딸의 성장을 한꺼번에 느끼며 소름돋는 경험을 했습니다.
평상시에 장난삼아 저한테
"엄마는 신세대엄마라기 보다는... 죄송하지만 제가 보호해야할 동생같은 존재로 느껴질 때가 많아요.^^"
라고 하더니만, 정말 딸이 저보다 훨씬 더 성숙한 사고를 가지고 있음에 놀랐으며 한편, 기특하고 대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아픔으로 눈물이 난 이유는, 어린딸이 부모님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크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수시모집을 권유하신 선생님과의(☞대입수시에 응해? 말어? 갈등한 딸) 상담 후, 사립대학도 괜찮다는 제 말을 수긍하고 응하게 되었고, 수시에 필요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저장해 놓은 것을 제가 보게 된 것입니다.
그 내용에 딸은, 왜 자신이 그 학과를 지원하게 되었는지 동기를 밝히고 있었는데, 그속에서 본 딸의 모습은 현재 고3인 딸이 아니라, 비록 나이로는 유치원생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부모님을 걱정하는 효녀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장래희망, 그러니까 직업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된 시절이 유치원시절이었고, 훗날 성인이 되었을지라도 어떻게 할 것이라는 각오가 흔들림없이 지금까지 쭈욱 이어져 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딸의 속마음을 제대로 엿보면서, 우리부부가 딸의 굳은 의지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듯해서 미안함에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또래에 비해 일찌감치 철이 들어 애늙은이 같은 느낌을 주곤했지만.. 이토록 구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기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앞으로는 즐기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권했던 저...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생각하고 다짐했던 길을 가고싶다는 딸의 성숙한 모습속에는 자신이 공부한 분야를 나눔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이쁜 마음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씌여진 글을 보며 우리부부가 좋은 부모역할을 제대로 한 것인지? 아니면 부족했기에 울딸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됩니다.
때론 철없어 뵈다가도 때론 저보다 성숙한 면을 보여서 의지가 되는 딸이긴 했으나, 이토록 일찌감치 자신이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다는 뜻을 키웠음에 못내 아픔이 됩니다.
딸이 현재 희망하는 의지대로 꼭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도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지긋이 무거워짐은, 우리 부부가 딸에게 짐이 되면 안될텐데... 하는 염려스러움 때문이며, 대입을 위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자기소개서가 아님을 알수 있는 우리가족의 아픈 사연을 냉철하면서도 똑 부러지게 너무 잘 담고 있음으로 인해, 평상시에 농담처럼 주고 받았던 딸과의 대화를 상기해보며 부담을 준 거 같아서 미안함에 울컥했습니다.
조금 전에 쓴(2009/09/16 19:25) 변명글 달겠습니다. ☞딸이 쓴 자기소개서를 공개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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