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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생각

남편을 향한 콩깍지가 여전히 건재한 나

제가 사는 고장은 좁은 곳이라 웬만하면 걸어서 다니는데, 시간이 급하거나 낯선 곳인 경우엔 택시를 이용하게 됩니다.
 "어서 오십시요. 어디로 모실까요?"
기사분이 인사로 맞아주시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OO에 갑니다."
딱 한문장 말했는데 눈치빠른 기사분이
 "여기분이 아니신가 보네요.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 묻습니다. 지역에 관계없이 다양하게 섞여 사니까 굳이 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될텐데 손님과의 대화를 이끌고자 하시는 기사분의 친절함을 느끼면서, 경상도 특유의 억양이 금방 탄로났음에 제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20년이 넘도록 삶의 터전을 이곳에서 보내도 고쳐지지 않은 이유로는 뭐 제가 노력하지 않은 탓이 큽니다.
 "대구에서 왔어요."
 "초행이십니까?"
 "아뇨. 결혼과 동시에 이곳에 왔으니 20년이 좀 지났어요."
 "아주머니는 무엇이 좋아서 이곳까지 오셨나요? 남편? 직장?"
 "어른들 주선으로 맞선을 봤는데 제가 남편을 보고 첫눈에 반했어요.^^"
평소에 남편한테 잘생겼다는 말은 자주 했지만, 반했다는 이말은 직접적으로 한번도 한적이 없습니다.
 "남편분이 잘 생겼나 보네요. 첫눈에 반하신 걸 보면..."
 "남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제눈에는 잘나 보입니다."
 "20년정도 되셨다면 이제 콩깍지가 벗겨졌겠네요."
 "아닌데요. 나이들수록 더 괜찮은 것 같은데요."
 "부럽습니다. 아직도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으셨다니..."
 "연애기간이 없었기에 결혼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감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살아갈수록 더 좋은거 같아요."
 "첫눈에 반했다면서 기대도 없이 결혼을 했다니 뜻밖입니다."
 "중매결혼이니 성실하다는 어르신 말씀을 믿은거고,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었으니 실망할게 없잖아요^^ 제 입장에서는 남편 성격이 더 좋아요."
 "남편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지네요^^ 속상하게 하신 적은 없으셨나요?"
 "술, 담배 하지 않으니 가정적이고 특별하게 속상하게 한 일도 없는 거 같고...."
 "나이가 비슷해 보이시는 손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미 콩깍지는 다 벗겨지고 실망스럽다는 푸념이 대부분인데, 아주머니는 특별하네요."
 "생각의 차이겠지요. 저도 남편이 못마땅할 때가 있긴 있어요.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지요. 제가 못마땅히 여기면 남편도 제가 못마땅할 것이라며... 그러면 샘샘이지요.^^ 다른집 부부도 비슷하지 않나요?"
 "대부분의 손님들은 자식때문에 할수없이 산다는 분들이 많은데 아주머니는 행복하시겠어요."
 "그런가요. 자식은 자라서 부모품을 떠나고 부부만 남겨되는데 자식때문에 산다면 우리 인생이 너무 억울하잖아요. 어차피 부부연을 맺은거 싫다고 불평해도 달라질게 없는데 부부끼리도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야죠."
 "아주머니 말씀이 맞지만 현실이 그렇지가 않으니 불만이 쌓이는거죠."
 "남들 사는것 보고 비교하며 살면 불만스럽지만 세상에 내남편과 나밖에 없다고 여기면 살만하잖아요. 아저씨~ 지금까지 말씀이 다 저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씀 같네요.^^"
 "아닙니다. 아주머니처럼 생각하시는 분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저도 손님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아저씨는 행복하지 않으세요?"
 "제 콩깍지는 이미 다 벗겨졌어요.^^"
 "제 남편한테도 저를 보는 콩깍지가 다 벗겨졌을지 몰라요. 하지만 저는 콩깍지가 그대로이니 착각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도착지에 닿았습니다.  
 "수고하세요."
하고 내렸습니다. 지루하진 않았지만 괜스레 많은 말을 했다는 반성을 하면서 남편에 대한 제 마음을 들여다 보노라니 웃음이 났습니다.
정말로 저는 아직까지 여전히 첫눈에 반한 남편의 인상과 생김새가 제 눈에는 잘나 보이고, 덤으로 성격도 괜찮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잘났던, 못났던, 콩깍지였던, 착각이었던, 간에 어차피 맺은 인연에 감사하고, 이왕이면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자식때문에 할수없이 산다는 표현은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예전 우리 어머니세대에서나 들었던 이같은 생각을 저도 전혀 안해본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자랄수록 이런 생각에서 벗어났습니다.
자식을 잘 키워야지 하는 의무는 느끼지만, 그렇다고 우리부부의 전부가 될수는 없습니다. 이점 우리부부 같은 생각이며, 애들도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라 섭섭해하면서도 독립적으로 봐줘서 홀가분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인생 우리가 책임지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야지요.

부부만의 시간
부부가 즐기는 취미생활
부부만의 대화
서로가 필요한 존재감으로 의지하는 배우자가 되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설령 시간도 없다, 취미생활이 다르다, 하더라도 결혼을 결심하게 된 배우자로 생각했을 당시에 끼워진 콩깍지를 일부러 벗기려고 애쓰지 말기를 바라며 설령 착각이었다고 해도 감사하는 생활속에서 행복함을 만들어 느끼면 될 것입니다.

모임을 통해서 우리부부가 노래방에 동행하게 되면 저는 남편에게 꼭 들어보고 싶다며 부탁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당신이 최고야'
그리고 남편이 저한테 부탁하는 노래는
 '있을 때 잘해.'
입니다. 짝짜꿍이 잘 맞지요. 첨부터 잘 맞았던게 아니고 조금씩 상대방 마음을 헤아리며 배려하노라니 서서히 맞춰진 것입니다.

남편을 바라보는 제 눈에 낀 콩깍지가 여전히 건재함을 택시기사분과의 대화를 통하여 푼수같이 늘어놓으며... 아마도 이 콩깍지는 제 모습을 볼수 있는 거울이 존재하는 한, 벗겨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