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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생각

우리아들에게도 드디어 여자친구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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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을 마무리할 때쯤 아들은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습니다.(오늘입소했음)
고교시절에 남들보다 늦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학업을 소홀히 하고 어미의 눈에는 게임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여겨진 아들이 몹시도 미웠습니다. 그리하여 왜곡된 어미의 감정은 극에 달해서 아들과 충돌이 잦았으며 대학생활을 객지에서 시작하게 된 아들에게 격려의 말은 고사하고
 "네가 원하는 대로 행복한 삶을 꾸려가보렴."
걱정은 되었지만 비꼬임으로 아들을 객지로 떠나보낸 냉정한 어미였습니다. 자존심이 센 아들도 함께 냉정해졌습니다. 안부도 일절없었고 생활비가 떨어지거나 꼭 필요한 경비지출로 돈이 부족할 때만 아주 짧은 문자메세지가 들어오곤 했으며 안부차 전화를 하면 단답형으로 "예. 아뇨." 몇마디로 끝맺음을 하던 아들...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제가 아들의 사춘기시절을 너그러이 받아주지 않았음에 대한 반성으로 아들대하기가 불편했을 정도로...

이런 아들에게 여자친구라도 생겨서 마음이 좀 풀어지고 따뜻해지기를 은근히 바라고 간혹 집에 다녀갈 때면(몇달에 한번... 명절... 따져보니 일년에 네번정도)여친이 있냐고 묻거나 미팅은 하느냐고 물었지만 부정적인 답을 하는 아들을 보면서
 '저러다 여자친구도 한번 못사귀는 거 아냐'
은근히 걱정했었는데 입영통지서를 받아놓은 어느날, 낭비없이 기본적인 것만으로 알뜰한 지출을 했던 녀석의 돈떨어졌다는 문자였기에 이유도 묻지않고 돈을 보내주었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그리고 평소에 답도 없었던 녀석에게서 느닷없이 답으로 문자가 들어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시절부터 사라졌던 표현.
 "엄마 알라뷰"
너무 신기해서 저장해두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추측해보았습니다.
 '분명 녀석에게도 여친이 생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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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며칠전,
훈련소 들어갈 때 안경 한개보다는 두개를 갖추는 게 도움될거라는 선배의 조언에 안경맞추게 돈좀 보내달라는 아들, 그래 그간 알뜰하게 지냈으니 이제 얼마남지 않은 입영일로 써봐야 얼마나 쓰려고? 생각하면서 11월과 12월초 사이에 평소와 달리 지출이 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보내주었더니 답신이 또 날아옵니다. 철부지처럼 아들이 보낸 이 문자를 보고 제가 무작정 좋아하니까 딸이 보더니 평소의 오빠같지 않은 행동에 의아해하면서
 "엄마, 이거 혹시 오빠가 저장해두었다가 사용하는 거 아니예요?"
 "내사마 저장해두었다가 날리는 멘트라고 해도 좋아. 오빠가 부드럽게 변한 것 같아서 좋기만 하구나.^^"
 "아이구 오빠가 엄마를 단단히 훈련시켰네요. 저 앞에서 엄마가 자꾸만 오빠한테 목빼고 계시면 저도 대학가서 집에 자주 안올거예요^^"
 "설마 네가 그럴려구? ㅎㅎㅎ"
 "엄마, 좋아하셔도 되겠네요. 저장해뒀다가 날리는 멘트는 아닌가보네요ㅎㅎㅎ"
 "어떻게 알았어?"
 "보세요. 11월에 보낸 문자는 띄어쓰기했구요. 지금것은 띄어쓰기안했네요.ㅎㅎㅎ"
 "ㅎㅎㅎ"

12월 11일 입소일을 하루앞둔 어젯밤, 집에 도착한 아들을 보고 우리 모녀가 추측한 이야기를 했더니 웃으면서 여자친구가 생겼노라고 합니다.^^
군에 가면 어찌변할지 모르지만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대견스럽게 여겨졌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또한 고집이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상대방은 알수없는 무덤덤함과 냉정함이 저같은 다혈질의 어미에게 시달려서 후천적으로 변한것같아 마음이 아팠는데... 아주 많이 부드러워진 표정과 말투를 대하면서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아들의 여자친구가 고맙게 여겨집니다. 더구나 오늘 입소한 아들의 군생활에 가족외에 또다른 설레임을 주는 이를 떠올릴 때 느낄 수 있는 흐뭇함으로 인해 힘든과정을 잘 견뎌낼 것을 생각하니 새벽 2시까지 휴대폰으로 오가는 문자에 매달려 잠을 못자는 아들의 모습도 이뻐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