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초 기말고사를 앞두고 예민해져 있던 딸이 놀토를 맞아 수행평가 과제물을 한답시고 컴퓨터 앞에 한참 앉았더니 짜증을 냅니다.
"비내리는 꿀꿀한 날에 남이 요약해서 올린 글을 읽고 지적을 하라니... 뭐 이런 숙제가 다 있어. 기분이 더 꿀꿀해지기만 하네. 중얼중얼..."
못 들은 척 가만히 있었습니다.
"요약문은 만들었는데 앤 누군지 너무 잘 써서 지적할 것도 없네."
혼잣말로 던지는 중얼거림이 심해지더니 급기야
"엄마~ 이리 좀 와 주세요."
저를 부릅니다.
"왜?"
"잠깐만 오셔서 이 짧은 글을 한번만 읽어봐 주세요. 저는 도저히 이 친구의 글에서 잘못된 것을 찾을 수가 없어요."
"그냥 읽기만 하면 되는거야?"
"예."
그럴리가 없지요. 그냥 읽기만 하라니...ㅋㅋㅋ
수행평가 과제물은 문학으로 선생님께서 공통으로 내준 한페이지의 글을 읽고 요약해서 올리는 것인데, 자신의 요약문을 올리기에 앞서
선생님이 관리하시는 홈피에... 먼저 올려진 친구의 글을 읽고 잘못된 표현이나 문장을 찾아 지적한 후에 자신이 요약한 글을 올리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희미하게 처리함^^)
바른 지적하나에 1점씩 가산점을 주는 형식으로 3개까지... 그리고 요약문은 230자~290자로 정해진 과제물.
"엄마, 다 읽었어요? 애 되게 잘 썼지요. 뭐 꼬투리 잡을만한 게 없지요^^"
"그러네. 참 잘 썼네."
"이 친구가 올린 글 아래로는 몇분째 다른 글이 올라오지 않는 걸로 보니, 저처럼 고민하고 있는 애들이 많은가 봐요."
"ㅎㅎㅎ 그래도 넌 찾을 수 있을거야. 가끔 엄마가 쓴 글을 보고 잘못된 표현을 찾아서 지적하기도 하잖아."
"이 짧은 글로는 평가하기 어려워요. 그리고 솔직히 이 글은 군더더기없이 표현해서 엄마가 사용하는 표현보다 깔끔한 느낌이 들잖아요.^^"
"그려 그려. 하지만 남이 못찾는 것을 찾는 것도 능력이야. 다시 꼼꼼하게 읽어보고 찾아봐.^^ 그리고 너는 다음 친구가 지적할게 많도록 써주고...ㅎㅎㅎ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사회분위기상 요즘 비판이 많이 쏟아지는 세상에 왜 하필이면 남이 쓴 글의 실수를 찾아 지적하는 글을 쓰라는 과제를 내셨을까? 차라리 친구가 쓴 글을 읽고 어떤 부분이 잘 되었다는 칭찬글을 쓰라고 하시지.^^"
제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쵸 그쵸. 제 생각이 바로 그거였어요. 지적보다는 칭찬이 더 좋을 것을... 하고 저도 생각했거든요. 역시 엄마랑 저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거 같아요.ㅎㅎㅎ"
하면서 맞장구 치는 딸, 어느새 짜증섞인 말투는 사라지고 좋아진 기분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딸~ 넌 할 수 있어. 예리하잖아. 3개까지 찾으면 좋겠지만 가산점에 욕심내지 말고 한개라도 찾아 지적하고 아래에다가 너무 완벽한 표현에 칭찬하고 싶다는 글을 남기던지..."
"선생님께서 '너 반항하는 거냐'며 혼나면 어떡해요?"
"그럼 하지마. 수고ㅋㅋㅋ"
나의 발전을 돕는 남의 지적이나 비판도 필요합니다만, 사람은 남을 잘못을 지적하는 것과 칭찬하는 것 중에 무엇을 더 많이 하고 있나? 들여다 보면 칭찬에 참 인색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나름대로 쉬운 과제물이라고 낸 숙제였는데... 글쓰는 재능이 부족한 저를 닮은 딸이 어려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칭찬의 글도 과제물로 등장하면 물론 쉽지 않을 것입니다만 글쓰는 데에 도움이 되라고 과제물을 주신 선생님의 의도는 모르겠으나 예민한 여고시절의 아이들에게 지적보다는 차라리 칭찬글로 친구를 격려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과제물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제가 오히려 선생님의 과제물에 대해 지적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ㅎㅎㅎ
"엄마, 한개 찾았어요. 억지로요. 저의 지적이 맞을지 안맞을지 모르지만요^^"
"그래도 다행이네. 과제는 했으니깐 말이야. 너는 다음 친구가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헛점을 남겨줘라.^^"
하고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았는데
"당연하죠. 제가 힘들어봐서 알아요.ㅎㅎㅎ"
흔쾌한 딸의 답으로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이 어렵사리 과제물을 올리고 제가 이 글을 쓰는 동안 딸의 글을 이은 과제물이 둘이나 올라와 있는데 잘못된 지적이 날카로와서 이 또한 좀 당황스러웠습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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