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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생각

엄마로 오해받는 외모지만 할머니는 힘들어

계단식으로 차이가 나는 연령대로 구성된 모임을 하고 있는데, 재작년과 작년에 자녀들의 결혼으로 선배언니들이 금년에는 태어난 손주를 보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한달에 한번 있는 모임이 어제 있었는데 한 언니가 외손자를 안고 들어왔습니다. 두리번거리던 4개월된 아기는 서로 반갑다고 인사나누는 아줌마들의 시끄러운 분위기에 놀라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고 우리는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는 금방 울음을 그치고 사람들을 살피기 시작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앙징스러웠습니다.

잠시후, 지난달에 소식없이 결석했던 다른 언니가 이번에는 친손녀를 안고 등장하는 바람에 우리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부대모임이 아니라 이제 노인대학 모임이 되겠구나. 할머니는 퇴출시켜야되는 거 아닌감^^"
 "ㅎㅎㅎ"
우리가 모인 회원 11명은 모 교회에서 운영하는 주부대에서 만난 인연으로 정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제 3명의 할머니가 탄생되어 딸과 아들이 안겨준 손주를 보느라고 자신의 생활을 접고서 할머니노릇에 무척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하나는 키워줄 것 같은데 둘은 힘들어서 못할 것 같아. 둘째 또 낳는다면 말리지도 못하겠고... 그만 낳아라고 할 수도 없고... 고민이야."
 "언니, 그렇게 힘들어요?"
 "체력이 딸려서 우리애들 키울때보다 더 힘든거 같어. 그런데 이런 나를 보고 의사선생님이 뭐라는 줄 아니^^"
 "엄마라고...?"
 "호호호^^ 맞어. 아기 예방접종시키려고 병원갔더니 '아기가 좀 늦었군요. 하는 거 있지."
 "손주라고 했나요?"
 "아니, 그냥 "예" 했지뭐.하하하"
 "기분 좋으셨겠네요."
 "손주를 하루라도 안보면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고, 막상 우리집에서 내차지가 되면 힘들고 이거 무슨 감정의 조화인지 이래도 저래도 다 힘드네^^"

타지에 사는 딸의 아기를 돌보는 언니는 체력이 딸려서 너무 힘들때는, 딸의 집 가까이에 사시는 사돈댁에 외손자를 보냈다가 건강이 회복되면 또다시 데려오는 방법으로 아기를 돌본다고 하는데 사돈이 연세가 많으셔서 내내 돌봐달라고 할수도 없다는 처지라네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미래의 할머니가 될 우리들도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전업주부인 경우는 손주를 돌봐주는 일이 가능하지만 아무리 할머니라고 하지만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에는 불가능하기에 아들이나 딸이 결혼을 하게 되면 육아문제에 대해 사돈과 더불어 상의를 하고 계획을 짜야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눈앞에 보여지더군요.  
20대 중반에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기른 쉰초반의 젊은 할머니는 우리엄마시절의 나이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젊게 보입니다. 생각도 차림새도 다 젊어보이니 늦둥이로 보일 수도 있다지만 젊은 할머니는 힘들어합니다.
 "아무리 외모가 젊어보인다고 해도 할머니는 할머닌가벼. 너무 힘들어. 손주라서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정신적으로도 우리애들 키울때보다 더 힘든거 같어. 모임도 겨우 나왔어. 아기한테 딸린 짐때문에 올까말까 망설이다가 지난달에도 못나와서 오늘 나온거야."
 "잘하셨어요. 힘드시더라도 이렇게 가끔씩 모여 수다도 떨어야지 스트레스도 풀리고, 아기의 낯가림도 훨씬 더 편해지고..."
 "이제 앞으로 점점 더 할머니들이 늘겠군. 할미되기 전에 맘껏 자유를 누리라고 말해주고 싶어."
 "ㅎㅎㅎ"

세상의 꽃이 아무리 예쁘다고 하지만 아기보다 예쁘지는 않습니다.
손자를 딸의 집에 보내고... 손녀를 아들집에 보내놓고... 피곤함이 회복되면 금새 또 손주가 보고싶어서 안달이 난다는... 쉰을 넘긴 나이지만 엄마로 오해받는 젊은 할머니의 아기돌보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