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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TV

돈구경이라도 실컷 하려고 본 영화, '돈의 맛'



 

'돈의 맛'

칸영화제 진출이라는 타이틀보다는 영화제목에 이끌려 영화관을 찾았다.

간접적이나마 돈의 맛이 어떠한지?

그리고 제목을 통해 상상이 되듯이 서민에겐 꿈같은 양의 돈이 등장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에 돈구경이라도 실컷 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며...

 

 

결론부터 말하면, 내 평생에 가져보지 못할, 아니 감히 상상조차도 못해 본 엄청난 양의 돈이 보관된 한 집안의 돈창고를 영화는 공개함으로써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달러와 우리나라 5만원권 지폐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돈창고를 보는 순간, 속물인 나는 숨이 멎을 정도로 감탄했고, 부러움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뇌물로 쓰이는 돈의 규모가 그동안 봐온 007가방이나 사과박스가 아닌, 20인치(좀 더 큰가) 여행용 가방 2개가 기본으로 등장하여 놀랐고, 돈창고에서 뇌물에 쓰일 돈을 가방에 담는 비서(주실장:김강우)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호주머니에 챙겨넣으라는 윤회장의 멘트가 의외여서 또한 놀랐다.

 '저거 한 뭉치면 돈으로 쪼달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겐 단비같을 텐데...'

난 완전히 감상에 빠졌는데, 주실장이 돈창고에서 처음 보여준 행동은 돈을 호주머니에 넣으려다 말고 던져버림으로써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돈의 맛으로 표현된 영화속 인물들의 돈 쓰임새를 보는 것은 몹시 불편했다.

그들의 돈에 의해 구속되어 가는 우리네 인생이 서글프고 불쌍하기 때문이며, 그렇다고 해서 결코 헤어나지도 못할 것 같은 현실의 답답함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부정한 돈인줄 알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처지를 비꼬는 듯한 그들의 돈지랄이 상대적 박탈감을 선사하면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무생물인 돈이, 너나할 것 없이 인간을 온통 돈의 노예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은 위협에 힘이 빠졌고 영화를 보는 내내 우울했다.

 

 

재벌이라는 그들 역시도 따지고 보면 돈의 노예일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더 많이 가졌다는 오만에 의해 군림하게 되는 환경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 놈의 돈이 뭔지 원'

친정아버지의 비위를 잘 맞추어 상속녀가 되고자 온갖 추한 일을 다 맡은 백금옥여사(윤여정),

돈맛을 맘껏 탐닉하고자 돈보고 결혼한 남편 윤회장과 사랑은 커녕 남편의 감시자가 된 불쌍한 이 여인조차도 결코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면서 돈의 권력자인양 행세한다.

돈에 관한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이 영화가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돈의 불편한 진실이 아프게 다가온다.

영화의 배경이 재벌가 이야기로 화려하게 등장해서 규모가 커서 그렇지, 우리 주변엔 크고 작은 비리로 청탁이다 뇌물이다 해서 온갖 얼룩진 군상을 떠올리게 한 영화다. 꼭 재벌이 아니더라도 돈을 이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말이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때론 돈이 사람을 한없이 추하게도 만들고, 때론 훌륭해 보이게도 만드는 희한한 요술을 부리는 돈의 위력(?)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현실 또한 씁쓸하다.

 

 

돈의 맛을 추하게 맘껏 누려 본 윤회장, 뒤늦게 에바와의 사랑을 위해 돈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고자 발버둥치지만 그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를 옭아매고 있는 돈의 권력이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의 뜻대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돈으로 휘두르는 가진자의 권력자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살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마저 갖게 한 영화라면 비웃을 것인가. 난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걸 찍어 올리려고 하니깐 남편이 말린다. 진짜로 남편은 내가 이 곳에 돈을 넣을 것이라고 믿는가 보다.ㅎㅎ)

 

그렇지만 나 또한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한 영화, '돈의 맛'을 통해 지난달에 침대를 바꾸면서 잠시 꿈꾸었던 일을 회상해 본다.

수납장이 겸비된 침대를 구입하여 정리정돈을 마쳤는데 한 공간이 비었다. 그때 난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 이 공간에 5만원권으로 가득 채우면 얼마가 될까? 이 공간만이라도 돈을 채워 침대밑에 돈깔고 잤다는 말 한번 해보고 싶다."

 "우리한테 그 만한 돈 있어?"

 "ㅋㅋ 없으니까 해 보는 소리지."

 "그럼 만원권으로는?"

 "글쎄... "

 "안된다고? 우리 그동안 뭐했지. 알뜰하게 산다고 살았는데..."

 

솔직히 말해 돈은 많을 수록 좋은 거 같다.

돈으로 사람위에 군림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부족하면 불편한 게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거다.

돈 좀 꿔달라는 사람에게 꿔 줘고도 혹시 못받는다 할지라도 내 생활에 지장이 없을 만큼, 그리고 자녀를 힘들게 하지 않을 우리부부의 노후자금이 걱정없을 만큼, 나도 좀 가져봤으면 좋겠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피력한 후 감상후기를 마치고자 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들이 예사롭지 않은 가운데,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깊었던 것이 주실장이 머무는 공간에 비치된 액자였다.

카메라가 액자를 바라보는 인물을 간접적으로 비춤으로써, 넓은 바다위에 떠 있는 비행기 모습과 여백의 공간에 투영된 주실장 모습이 그림속 주인공으로 착각을 일으켰던 장면이다.

갈등속에 자유를 동경하는 그의 마음을 엿보게 한 연출의 묘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액자 뒤에 숨겨 둔 돈뭉치와 조화를 이뤄내며 그의 변화가 액자와 잘 어울려 신비하기까지 했다.

 

영화 '돈의 맛'은 바람직하지 못한 곳에서 썩은 냄새를 풍기며 섹스와 권력의 맛으로 추하게 표현되고 있어 불편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불편했던 점은 이런 한국사회의 치부를 외국인까지 끌어들여 맛보게 했다는 점이다.

 

영화관을 나서며 난 문득 가수 김장훈이 떠올랐다. 

추한 유혹이 아닌,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배려있는 돈의 맛에 취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