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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혼기 앞둔 자녀의 권유로 공부하는 엄마

 

 

요즘 젊은 엄마들은 대부분 학벌이 웬만큼 되지만, 쉰살 이상 세대인 중년 여성중에는 소위 가방끈이 짧다는 이유로 열등감을 살짝 느끼며 살았다는 아줌마를 볼 수 있습니다. 쉰살이상이면 미모도 학벌도 다 소용없고, 중년 아줌마세계에선 경제력과 자식농사 잘 지은 아줌마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데 말이죠.

아줌마의 중년은 그야말로 여유로움을 발산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수다가 최고라며, 열등의식으로 가슴깊이 꼭꼭 숨겨두었던 사연조차도 등장시키니 말입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남아선호사상의 희생자가 되어 집안의 남자형제(오빠나 남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어린 나이에 일터로 나가야했던 서러움을 털어놓은 어느분의 사연입니다. 

 

친구들이 학교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무척 부러워했다는 그녀는, 학부모가 되었을 때 또 다시 열등감을 느껴야했답니다.(가정환경 조사서가 요즘도 학교에서 보내는 통신문에 존재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우리 아이 초.중.고시절까지 따라다녔던 건데요.)

가정환경 조사서에 부모의 학력을 적는 난을 보고 참 난감했다는 그녀는, 가방끈 짧은 자신의 학력을 쓰지 못하고 거짓으로 학력을 높여 적어 놓고 마음졸였다고 합니다. 이후 자녀가 중학생이 되기 전에 떳떳한 엄마가 되기 위해 중.고교 검정고시 패스를 위해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했고, 목표했던 고교졸업 검정고시까지 패스하여 가정환경 조사서에 부모학력난에 떳떳히 고졸이라고 적어낼 수 있었답니다.

요즘은 대학교도 필수코스처럼 인식되어 대부분의 아이들이 진학하게 되지만, 우리 세대는 학사출신이 드문 편이었기에 그녀는 검정고시 패스이긴 했어도 최종학력 고졸로 만족했답니다.

 

그런데 최근에 또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그녀의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자녀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하는 그녀, 머리에 쉽사리 들어오지 않아서 마음에 갈등이 크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녀의 아들은 유학까지 다녀와서 유능한 재능을 뽐내며 내노라하는 직장에 취직하여 그에 걸맞는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나 봅니다. 그리고 사귀고 있는 여친의 부모님 학력이 자신의 엄마학력보다 높음을 알고서, 엄마에게 대학진학을 권했답니다.

이제 제 앞가림하게 된 아들로 부터 해방되어 친구들과 즐거운 중년을 보낼 생각이었던 그녀는, 아들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하고 대학진학을 위해 날마다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답니다.

 

학부모가 되어 처음 가정환경 조사서에 자신의 학력을 적기가 거북하여 스스로 공부할 때는 정말 열심이었지만, 지금은 솔직히 별로 의욕이 없음을 고백하는 그녀를 보며 저는 한편 안쓰러우면서도 부러웠습니다.

서민층인 우리네 기준으로 볼 때에, 경제적인 여유와 더불어 그녀의 아들이 자랑스러울 만큼 잘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배우자의 부모 학벌까지 따지는 여자친구는 아닌 것 같은데, 아들이 부모님 학력조차도 자존심으로 여기는 지 기죽고 싶지 않다니... 그녀는 아들을 위해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가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짜증이 난다며,

 "녀석이 말이야. 이래도 저래도 지 엄만데... 굳이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내심 내가 부끄럽다는 거 아니냔 말이야."

 "설마 그럴려구. 부모덕에 공부 잘 한 줄 알텐데..."

 "이제 정신적으로 좀 편해지나 했더니... 아들이 나보고 공부하라니. 이 나이에."

 "아들때문에 공부한다고 생각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글쎄 그런 생각은 안들고, 아들넘이 야속하네. 아들은 훌륭하게 키워놓으면 나라에 충성하는 인물이 되고, 잘 키워놓으면 처가집에 효도하는 자식이 된다는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 아들녀석 점점 그 여자친구집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속상하고..."

 "어머어머 자기 왜 그래? 이러다 울겠다"

그녀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어서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라던가,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다던가 뭐 딱히 이유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그녀는 아들을 원망하는 마음도 조금 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아들생각을 나무랄 수는 없었습니다.

엄마로써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학창시절엔 공부 잘하는 것이고, 또한 졸업 후 원하는 곳에 취업하여 맘에 드는 배우자 만나 결혼해서 잘 사는 것으로 여기는 일반적인 우리네 입장에서는, 그녀의 아들이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성실하게 이행하면서 그녀의 기쁨이 되었으니까요.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기에 엄마한테 권한 것같고, 아들이 엄마더러 명문대 가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속된 말로 부모님 학벌로도 여자친구에게 꿀리고 싶지 않다는 아들의 심정을, 유쾌하진 않지만 엄마이기에 이해하고 받아들여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배우자 선택시 부모학벌까지 운운하면 서글플 것 같습니다.

동기야 어떻든 간에 그녀는 아들의 바람대로 해낼 것입니다.

부모의 학벌까지도 자존심의 일부로 여기는 잘난 아들이 권해서 하게 된 공부긴 해도 뭐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격려했습니다. 뒤늦게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며, 가보지 않은 길엔 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