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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교육

주5일수업, 결정해 놓고선 아이들 의견은 왜 묻나





초등생 고학년인 공부방 아이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들어서더니
 "샘, 나 오늘 억울한 일 있었어요."
이렇게 시작된 아이의 하소연은 내년부터 시행하게 될 주5일수업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주5일수업에 관한 아이들의 찬반의견을 묻는 설문지를 내주었다고 합니다. 울공부방 아이는 반대에 O표를 했는데, 하필이면 선생님께서 아이옆에 서 계시다가 보셨나 봅니다.
 "너는 왜 반대를 하느냐?"
고 물으시는 선생님께 아이는
 "토요일에 학교에 오지 않으면 친구들과 놀지 못해서 그래요."
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선생님께서는
 "그러면 금요일에 미리 약속을 해서 토요일에 만나 놀면 되잖아. 그런 이유라면 찬성에 O표를 해라."
고 하시고선, 혼잣말로 
 '반대하는 애가 많으면 안되는데...'
하시더니, 아이가 느끼기에 갑자기 선생님이 화가 난 줄로 착각이 될 정도의 큰 목소리로 학급 아이들 전체를 향해
 "어차피 주5일수업은 하게 될거다. 토요일에 학교 안나온다고 너희들 생각에 선생님이 편할 줄 알겠지만 방과후 교실 운영으로 선생님들도 고달프거든. 그런데도 찬성하는 것은 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인데... 너희중에 반대가 있으면 어떡하니."
당당하게 반대에 O표를 했던 아이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음이 속상했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샘, 제가 반대를 한다고 해도 찬성이 많으면 주5일수업을 하게 될거잖아요. 그쵸? 그런데 무조건 다 찬성을 해야한다는 것처럼 말씀하셔서 속상했어요. 그럴거면 설문조사는 왜 해요?"
아이는 저의 대답을 기다리며 빤히 쳐다봅니다. 어 왜 나한테 대답을 요구합니까. 담임선생님께 들어야할 대답을... 참 난감합니다. 초등생인 공부방 아이들은 제가 무엇이든지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학습과 관계없는 질문을 던질 때가 종종 있거든요.
이 질문만 해도 그래요. 학교 선생님이 아닌 제가 이유를 어찌 알겠습니까? 하지만 아이에게 저는 대답을 해줘야만 합니다.
 "행정상 너희들 의견이 첨부된 서류가 필요했나보다.^^"
아이는 이해가 되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느낌을 털어놓음으로써 속상했던 마음이 풀어졌는지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덕분에 다른 아이들 생각도 엿보았습니다.
찬성하는 이유
ㅣ. 늦잠을 잘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ㅣ.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간다.
반대하는 이유
ㅣ. 평일날 수업시간이 늘어나는 게 싫다.
수업을 마친 후 놀 수 있는 시간도 늘 부족한데, 수업시간이 늘어나면 늦게 마치게 되니까 친구들과 놀 시간이 더 부족하다.
ㅣ. 토요일에 친구를 만나 놀기가 쉽지 않다.
공식적으로 학교에 가지 않으니, 친구를 만날 기회가 줄어들어 자연스레 신나게 놀 시간이 줄어드는게 싫다. 놀토에도 엄마는 공부해라 책읽으라...며 잔소리를 하며 외출을 간섭한다.
ㅣ. 방학일수 줄어든다.
격일주로 놀토가 생김으로써 공휴일도 줄었는데, 방학일수도 줄어든다.

아이들은 학교를 통해 친구들과 자연스레 만나 노는 것을 즐기는데, 이같은 시간이 줄어듦을 무척 아쉬워했고, 놀토날 외출시 엄마눈치를 봐야함을 불편해했습니다.

주5일수업제, 자율실시로 선택?
내년부터 초,중,고교에서 전면시행하기로 했다가, 막상 시행을 앞두고 예상되는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시도교육감이나 학교장의 자율 판단의 몫이 되었습니다.
'자율시행'으로 지침이 바뀜에 따라, 어떤 학교에서는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토요 격주 수업인 월 2회 실시를 선택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학교에서는 주5일수업제를 선택할 것입니다.

어떤 선택이든 간에 실제로 아이들 의견이 더 중시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도교육청에서 이미 지시가 내려왔던지, 아니면 학교재량으로 이미 결론을 내려놓았음을 선생님의 발언을 통해 알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아이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가 필요했는지 저도 공부방 아이가 갖는 의문을 갖게 되더군요.ㅎㅎㅎ 모쪼록 주5일수업제가 아이들에게 유익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