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공유기 보냈으니 OO이한테 연결해서 사용하라고 하세요. 오늘쯤 도착할 거예요."
아들과의 통화가 끝나자 마자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몇시쯤에 택배 예정이라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가 우리집에 한대 더 있음을 알고 있는 아들이, 수능을 마친 여동생과 저의 사용시간이 겹칠 것을 염려하여 동생이 아무 시간때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배려심을 발휘한 것 같습니다. 객지에서 자취하는 아들과 함께 지내던 아들친구가 독립해 나가면서 소용없게 된 공유기라고 합니다.
아들이 손수 포장하여 보낸 박스를 열어보던 딸이, 감탄을 하기에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엄마, 이 포장 좀 봐. 오빠성격 보이네^^"
"어지간히도 꼼꼼하게 포장했네."
"엄마가 봐도 그렇지?"
"그래"
"꼼꼼한 아들이 엄마아들다워 흐뭇하지."
"그러는 너는? 너도 꼼꼼하잖아."
"나야 뭐 여자라서 그렇다고 치지만... 와 남자가 이 정도면 좀 심하지 않나.ㅋㅋ 엄마 이런 아들보는 소감이 어때?"
"너 지금 엄마 놀리냐?"
"아니, 놀리는 게 아니라... 꼼꼼함의 진수를 오빠가 제대로 보여주길래... 엄마가 우리를 이렇게 가르쳤잖아."
"내가 언제..."
"엄마의 생활을 통해^^"
테이프를 떼어내고 위의 박스조각을 꺼낸 후 내용물을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또 아래에 작게 접힌 박스조각이 여러개 들어 있었습니다.
"꼼꼼한 줄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네. 이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
크기가 적당한 박스를 구하지 못한 아들은 박스의 일부를 잘라 포장용으로 사용하고, 그 안에 흔들림 방지를 위해 박스를 작게 오려 접은 후, 빈공간을 채워 넣었던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딸도 아들못지않게 꼼꼼한 성격입니다만, 딸은 자신의 자유로운 시기에 딱 맞춰 공유기를 보내준 오빠의 마음 씀씀이를 고마워하면서도, 오빠의 포장솜씨에 더 감탄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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