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우리부부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금년으로 23년... 은혼식으로 여기는 25년이 되려면 2년이 더 남았군요.^^
이렇게 강산이 두번 변하는 세월을 지나고 있지만, 결혼기념일이라고 해서? 혹은 생일이라고 해서? 뭐 별다른 이벤트나 선물같은 것은 없습니다.
제 평소 성격으로 봐서는 독특한 이벤트를 즐길 것 같다고 남들은 추측하지만, 전혀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잘하고 살자는 생각으로 살면서 상징적 의미의 축하케익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정도라면 남들이 의아해하거나 놀라기도 합니다만, 우리 부부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갑니다. 케익으로 자축하며.
아참, 글을 쓰노라니 몇 년전 결혼기념일때 뜻밖에도 남편의 선물을 받은 일이 떠오르네요. 처음으로 장미꽃과 목걸이를 받았던 때가.
"여보, 고마워. 당신답지 않게 이런 걸 다 하고 웬일이야?"
"이제 나이도 슬슬 들고 하니까 좀 챙겨보려고"
"ㅎㅎㅎ 나는 아무것도 준비 안했는데..."
"그러고 보니 웃기네. 왜 결혼기념일때는 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지?"
"그러게 말이야. 억울해?"
"아니.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그런데 그 아가씨가 말이야..."
이렇게 말을 하다 멈추는 남편,
"뭐? 그 아가씨라니? 누가 시켰어?"
"아니야."
남편의 낌새가 이상해서 수상한 쪽으로 이야기를 몰았더니, 억울했던지 남편이 실토한 내용인즉,
"포인트가 많이 쌓인 카드사에서 며칠전에 전화가 왔는데 그 아가씨 말이, 결혼기념일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사모님께 결혼기념일 선물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거야. 그러더니 적립된 포인트로 목걸이를 하라는 거야. 그래서..."
"그 아가씨가 시켜서 한거구나. 뭐 어쨌든 그래도 고마워. 하지만 다음엔 이런거 하지마. 난 장미꽃을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시들어서 버릴 때 쓰레기 되는 게 싫으니까 앞으로 하지마요. 처음이자 끝이라도 괜찮으니 꼭 하고 싶다면 꽃값을 돈으로 줘잉^^ 무드없다고 해도 괜찮아."
"내 그럴줄 알았다. 돈으로도 안주고 꽃도 안살께. 그럼 됐지^^"
그리고 일년이 흘렀습니다. 또 목걸이입니다. 이때도 카드사 아가씨한테 설득된 남편,
"그 카드사엔 목걸이밖에 없나봐. 또 목걸이야. 솔직하게 말해서 난 귀금속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지난해엔 처음이라서 좋아라한 거고."
"진작에 말하지. 그럼 내년에는 뭘로 해줄까?"
"꼭 해주고 싶으면 팔찌로 해. 이왕이면 골고루 가져보자.^^"
이때는 꽃이 생략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년 뒤, 남편이 약간 큰 상자를 내밀었습니다. 열어보니 참 다양한 바디용품이었습니다.
"여보, 이것도 혹시 카드사에서?"
"응. 필요한거잖아."
"이제 당신 마음아니까 담부턴 이런거 하지마요. 연거푸 목걸이로 하니까 팔찌라고 했던건데, 그 회사엔 팔찌는 없나벼 그러니까 이런 걸 권했을 테고..."
"쪽집게네. 맞아. 팔찌는 없다면서 바디용품 많이 쓰인다며 추천하던데..."
"여보, 결혼기념일 앞두고 전화와서 꼬드기면(?) 울마누라 좋아하지도 않고 도리어 화를 내더라고 해. 그래야 안 권해. 알았지. 그리고 적립된 포인트로 승용차 기름이나 넣어."
"왜 싫어? 나는 당신이 좋아한 줄 알았는데..."
"내가 선물안해준다고 불평한 적 있어? 없잖아. 처음했을 땐 신선해서 좋았던 거고. 진짜 안해도 돼요."
"정말? 그럼 앞으로는 안한다."
"예."
"좋아하는 줄 알았지. 그래서 계속 챙길려고 했는데... 꽃도 싫다. 선물도 싫다. 울마누라 참 특이해."
"필요하면 내가 스스로 사면 되니까 정~ 해주고 싶으면 돈많이 벌어주면 되잖아.^^ 난 그게 더 좋아."
"무드있을 것 같으면서도 전혀 없고, 돈을 더 좋아하니 아줌마 다 됐구먼^^ 내 탓인거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아녀. 아줌마라서 그런게 아니라 난 아가씨적부터 선물보단 돈을 더 좋아했어."
"이런 속물이었구나."
"속물? ㅋㅋㅋ맞아. 그래서 난 선물보다는 봉투를 선호해서 남들한테도 적던많던간에 봉투로 하는거야. 몰랐어? 내가 선물받아보니까 좀 그렇더라, 내게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낭비같기도 하고... 그래서 난 아가씨때도 무척 친한 사이로 물어보고 해줄 수 있는 상대한테만 선물했고, 말로 마음만 전하던지 꼭 해주고 싶으면 봉투로 했었어. 나 이런 여자야. 그러니까 당신하고 결혼해서 생일이나 결혼기념일때 선물타령 하지 않고 살았지. 별로 실속이 없잖아. 꼭 해주고 싶으면 금덩어리를 주던지 돈다발을 줘. 아니면 안해도 돼.ㅎㅎㅎ 나도 당신한테 안하잖아"
"그랬구나. 하긴 불평없어서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미안했는데... 그동안 우리가정 형편이 안좋아서 이해해주는 걸로 생각해서 말이야."
"안 미안해도 돼. 우리 서로 그런 날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잘 살고 있잖아.^^"
이렇게 3년을 쭈욱 챙기던 남편에게 하지말라고 말렸고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기억하고 축하하는 의미의 케익하나로.
제가 봉투를 선호한다고 했지만, 실속만 따지는 아내로 여기지 않는 남편이기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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